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0월 14일(화) 국정감사에서 “필수의료 확충을 위한 로드맵 종합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역의료 강화의 핵심 전략은 국립대병원의 치료 역량을 빅5 병원 수준까지 높여, 지역 내에서 중증·응급진료를 완결적으로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지역 네트워크를 구축해 자체 진료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은경 장관의 이 같은 발언에도 불구하고, 정작 광역시·도 단위에서 책임의료기관 역할을 해야 할 국립대병원들은 여전히 이관을 거부하고 있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국감장에서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견을 내기까지 했다. 국립대병원들은 겉으로는 “공공의료의 최전선”임을 자처하면서도,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의 이관 문제에는 한사코 반대하고 있으며, 국정과제를 집행해야 할 교육부 장관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듯 얘기하는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최희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는 2021년, 공공의료 강화와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요구하며 정부와 9.2 노정합의를 체결했다. 당시 코로나19 한복판에서 국무총리가 직접 중재하고, 국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보건복지부와 국립대병원의 보건복지부 이관을 공식 합의했다. 동시에 보건의료노조는 지역소멸과 초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전면 확대를 요구했고, 이에 대한 합의도 이끌어냈다.
지난 7월 22일, 보건의료노조는 이러한 합의를 재확인하며 새 정부와 함께 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공공의료체계 구축에 다시 합의했다. 노조는 광역 단위에서 국립대를 중심으로 지방의료원과 보건소가 나무의 줄기와 뿌리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민간의료기관과도 협력체계를 구축해 국가가 총력으로 지역소멸과 초고령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민간을 막론하고 이러한 시대적 과제에 복무할 수 있도록 의료전달체계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요구해 왔다. 보건의료노조는 병상 확대 경쟁으로 수익만을 추구해온 기존 의료체계를 종식해야 한다며 병상총량제 도입을 주장했고, 수도권 병상팽창 경쟁 중단을 요구하는 여론을 형성하는 데에도 앞장서 왔다.
그러나 병상 확대 경쟁을 멈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은 병상·환자·의료인 확보를 둘러싼 경쟁을 중단하고, 협력적 지역 네트워크를 구축해 초유의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국립대병원에서 지방의료원, 보건소에 이르기까지 끊어진 지역 공공의료체계의 줄기를 다시 잇고, 민간의료기관까지 공공의료의 책무를 공유해야만 지역의료가 회생할 수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러한 절박한 현실을 호소하며 국민을 설득해 왔다.
이러한 노력은 필수의료특별법 제정, 필수의료특별기금 설치, 공공보건의료법 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스스로 필수의료법 대안을 제시하고 여야정 합의를 도출했음에도, 정은경 장관은 국정감사장에서 국립대병원의 보건복지부 이관 필요성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필수의료 로드맵 수립 과정에서 선결돼야 할 국립대병원 이관 문제에 대해,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대병원들이 여전히 공적 관리체계로 전환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국민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국립대병원들이 말로는 교육역량의 저하라고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지역의료를 책임져야 할 자신들의 책무와 역할을 방기하는 관료주의의 극치에 다름아니다.
며칠 전 우리나라에서 70대 인구가 20대 인구를 추월했다는 충격적인 통계를 발표됐다. 초고령화는 더 이상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역시 의료수요 증가와 재정 부담이라는 거대한 파고를 피할 수 없다. 부산 등 대도시권에서도 고령화에 따른 의료체계의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위기 속에서 공공과 민간, 의사와 간호사, 수도권과 비수도권,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것은 한가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지금은 부처 간 칸막이와 영역 다툼을 끝내야 할 시점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의료비 증가 속도는 이미 OECD 평균을 넘어섰다. 추가 재정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효율적이고 공익적인 의료재정 운용이 절실하다. 공공·민간 의료기관 간 불필요한 환자 쟁탈전을 중단시키고, 확보된 재정이 공익적 의료서비스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건의료노조는 필수의료특별법 제정과 필수의료기금 확보를 일관되게 요구해 왔다.
우리는 수차례 “불필요한 아스팔트 포장비용 대신 지역 공공의료체계 혁신에 예산을 투입하라”고 외쳤으며, 공공병원 체불 문제로 의료인이 지역을 떠나지 않도록 단식투쟁까지 벌였다. 또한 담배세를 활용한 필수의료 재정 확보를 수년 전부터 제안해 왔다.
국회는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립대 이관법을 즉각 통과시켜야 한다. 아울러 필수의료특별법 제정과 공공의료 강화 법 개정에도 나서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더 이상 발목을 잡지 말라. 불필요한 아스팔트 포장비용만 줄여도 지역 보건의료인력 유치는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보건의료체계의 위기이자 국가의 위기다. 국립대병원의 지역의료 역할을 확립하기 위한 보건복지부 이관을 즉각 시행하고,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지원체계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이 같은 위기의 시대에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한다면, 책임의료기관으로서의 지위를 박탈하라! 국립대병원은 지역과 시민,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서 본연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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