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월 3일을 결정 마감일로 먼저 못 박는 순간, 숙의는 사라지고 결정을 정당화하는 절차만 남습니다. 공개토론회는 ‘열었다’가 아니라, 자료·운영계획·검증절차를 공개해 ‘검증받았다’로 입증돼야 합니다. 감사원의 지적 취지가 있었던 사안에서 또다시 속도전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질 것입니다. 공개토론회는 형식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절차여야 합니다. 특히, 2027~2029년 의대 교육·수련 여건은 ‘추계’가 아니라 현장 운영계획으로 검증돼야 합니다. 강의·실습·수련 인프라, 지도전문의·수련병원 역량, 실습 수용능력 등 핵심 조건이 확인되지 않은 채 정원만 결론 내리면, 그 부담은 국민과 학생, 그리고 환자에게 돌아갑니다. ‘지금 공백’은 ‘정부가 지금 당장 책임지고 할 일’로 먼저 메꿔야 하며, 수가·의료사고 부담·의료전달·수련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숫자도 지역·필수 의료 공백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복지부는 실무 설명에서 3058(모집 기준)을 말하면서, 대외 메시지에서는 5058을 정상 기준처럼 두고 ‘감원’ 레토릭을 씁니다. 5058을 기준점으로 세우는 순간 작년의 비정상적 결정이 정상값처럼 고착됩니다. 정부는 감원 레
‘현재 공백’을 말하면서 ‘10년 뒤 효과’만 내세우는 것이 정책 설계입니까? 본 협의회는 어제 배포한 호소문을 통해 지역·필수의료 공백과 교육·수련 여건 악화가 ‘지금 현재’ 진행형임을 국민 여러분께 알린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현재의 공백’을 근거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효과는 최소 10년 뒤에야 나타나는 양성규모(정원) 중심 대책만 제시한다면 원인과 처방의 시간축이 맞지 않습니다. 공백은 지금인데, 그 사이의 공백은 누가 책임집니까? 정부의 추계 자료에서도 일부 시나리오에서는 단기 잉여 구간이 나타납니다. 그럼에도 공백이 지속된다면, 현재 문제는 의사 ‘총량’의 문제가 아니라 분포·유인·근무환경·법적 부담·전달체계 등 구조 요인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정부가 “오늘 회의는 정원만 논의한다”고 주장하더라도, 정원 결정을 ‘현재 공백’으로 정당화하는 순간 공백을 줄이는 조치는 ‘추후’로 미루겠다는 말이 돼 정책의 정합성이 무너집니다. 정원 논의와 별개로 정부가 지금 당장 책임지고 할 일 ▲필수의료 보상 정상화(수가) ▲의료사고 부담 구조 개선(법률·배상 지원 포함) ▲전달체계 및 수련 인프라 개선이 먼저 패키지로 추진돼야 합니다
암·희귀·난치질환 등 중증질환 환자와 가족을 대표하는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국립의학전문대학원(공공의대) 설립과 관련해, 보완해야 할 사안이 몇 가지 있어 아직은 부족하지만, 필수·중증·지역의료 회복을 위해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자 하는 출발점이라는 점에 공감하며 적극 지지하는 바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 이수진 의원이 발의한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법은, 입학부터 교육·수련·근무에 이르기까지 국가 책임 공공의료 인력 양성 체계를 제도화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는 그간 시장 논리에 맡겨져 왔던 의사 인력 배치 문제를 국가 책임의 영역으로 전환하려는 정부의 의료 개혁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특히 전액 국가 지원을 전제로 졸업 후 공공의료기관에서 일정 기간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구조는, 필수·지역의료 인력 부족의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려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며, 국립중앙의료원, 국립암센터 등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교육과 실습을 연계하는 방안은, 중증질환 치료 경험을 체계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다만 공공의대 설립이 환자에게 실제로 작동하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학부모 여러분! 우리는 평생을 대학병원에서 환자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의사이자 교수입니다. 평생 일궈온 의료 환경이 무너지는 아픔도 크지만, 그보다 더 참담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인 인재들이 거대한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의대 쏠림’이라는 집단적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유치원생부터 의대 입학을 준비하는 이 비정상적인 풍경은 국가의 미래를 좀먹는 자해 행위입니다. 1. 정부의 통계는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정부는 의사가 부족하다며 화려한 수치를 제시하지만, 그 통계에는 다가올 ‘공급의 혁명’이 빠져 있습니다. AI와 로보틱스 기술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이 보편화되면 교통사고 외상 수요는 급감할 것이며, 지능형 로봇은 의료 현장의 노동을 획기적으로 분담할 것입니다. 지금 늘려놓은 의대생들이 현장에 나올 10년 뒤, 그들은 이미 기술에 자리를 내어준 ‘유휴 인력’이 될 위험이 큽니다. 2. 대한민국을 살리는 힘은 연구실과 사유에서 나옵니다. 자원 하나 없는 우리나라가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계를 제패한 우리 제조업의 과학 인재들과 고난 속에서도
2025년 12월 31일, 의사인력수급 추계위원회는 공식 브리핑을 통해 2035년에는 1535~4923명, 2040년에는 5074~1만 1136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의 근거 없는 의대 증원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의료 대란이 채 수습되지 않은 지금, 또다시 섣부른 의대 정원 확대가 반복된다면 한국 의료는 회복 불가능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에 충정의 마음으로, 의대정원을 결정하기에 앞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들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첫째, 지역의료·필수의료의 위기는 의사 수 부족이 아니라 정책 실패의 결과이다. 현재의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 붕괴는 의사 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과거 정책 실패가 누적된 결과다. 그 출발점은 1995년 8월, ‘진료 평등권’을 명분으로 진료의뢰체계를 사실상 해체한 정책이었다. 1차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진료의뢰서 한 장만 있으면 전국 어느 대학병원에서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환자 의료 수요를 조절할 제도적 장치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결과 지방에서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곧바로 서울로 이동하는 것이 일상화됐고, 여러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5~6개 진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최근 대한한의사협회가 제안한 ‘보건복지부 장관–의협회장–한의협회장 3자 공개 토론회’와 관련해, 해당 제안이 한방 난임치료의 과학적 검증이라는 본질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논의를 정치적 대립 구도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짙다는 점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특히 한의협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토론자 자격으로 특정해 지목한 것은, 장관이 과거 한방 난임치료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발언한 사실을 문제 삼아 논쟁의 초점을 의학적 근거 검증이 아닌 정치적 공방으로 이동시키려는 시도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한방 난임치료의 효과와 안전성은 장관의 발언을 두고 다툴 사안이 아니라, 객관적 연구와 임상 근거로 검증돼야 할 문제이다. 더욱이 보건복지부 장관은 난임 치료의 개별 효과를 놓고 찬반 토론에 나설 당사자가 아니며, 굳이 토론에 참석할 필요가 없는 인물을 전면에 세운 제안은 토론의 성립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구조이다. 이는 토론을 열기 위한 제안이라기보다, 토론이 무산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먼저 설정해 놓은 것이라는 의문을 낳는다.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이러한 방식이 난임 부부를 위한 정책 논의에 어떠한 실질적 도움도 되지
대구광역시의사회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의사인력 수급추계 결과와 이를 근거로 한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며, 보다 신중한 접근과 재검토를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이는 미래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과 국민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1. AI 생산성 향상에 대한 폭넓은 고려가 필요합니다. 정부 추계위원회에서 AI에 의한 의사 생산성 향상을 6%로 예측한 것은 아쉽게도 현재 기술 발전 속도와 해외 사례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국제 연구와 전문가 보고서들은 AI로 인한 의료 생산성 향상 수치를 12~30%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4년 OECD가 발간한 ‘인공지능과 보건 인력 보고서’에서도 AI가 2030년까지 전체 의료인력의 행정 업무 중 최대 30%를 자동화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미 의료 AI 도입이 활발한 미국에서는 의료기관의 90%가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그 효율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 발전을 고려할 때, 의료 생산성은 상당 부분 향상될 것이며, 이로 인해 의사 부족 인력이 최소 6000명가량 감소할 수 있다는 현장 전
지난 12월 30일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는 ‘2040년 의사인력 부족이 5704명∼1만 1136명’이라는 결과를 공식 발표하고 이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 상정했다. 이번에 발표된 추계 결과는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검증과정을 거친 데이터가 아니라 의대 정원 확대라는 정치적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에 맞춰 수치를 끼워 맞춘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추계’에 불과하다. 이는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결정짓는 사안을 탁상행정의 도구로 전락시킨 정부의 일방적 폭거이다. 추계위는 대한민국 의료 현실의 급격한 변화를 거의 반영하지 않았다. 이미 간호법 제정을 통해 PA 제도가 제도권으로 편입됐고, 비대면 진료 확대, 요양병원 구조조정, 돌봄·재가의료 정책 확대로 입원·외래·요양 영역 전반에서 의사 1인당 실제 노동량은 구조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에도 이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AI 기반 진료 지원, 업무 자동화, 근무 형태 변화 등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핵심 변수들 역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추계위는 직접 연구를 수행하는 기구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해 판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위원 구성 단계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한 채 자신들의
옆구리 두 개의 신장은 어제 먹고 마신 탁한 국물들을 밤새도록 애써 걸러내었다. 짙은 호박 빛깔의 고농축 오줌은 요관을 통해 방광까지 흘려 내려갔다. 덜 깬 눈을 게슴츠레 뜨고 정신을 집중하자 방광 근육이 수축하면서 밤새 고였던 소변은 줄기차게 떨어져 내렸다. 열 손실을 만회하고자 온 몸이 한바탕 부르르 떨렸다. 어제 요관을 잘라내고 소장으로 갈아 끼우는 수술을 했다. 암은 이겨내었으나 치료 과정에서 요관이 막혀 힘들어 했던 환자였다. 오래 걸렸던 수술 탓인지 허리가 쑤셨지만 뜨거운 커피 한 잔과 컴퓨터 유튜브 창에 열어 놓은 7080 음악만으로도 흡족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J 난 너를 못 잊어 J 난 너를 사랑해' 노랫말 속에 반복되는 J를 듣다 보니 요관 속을 지나가는 오줌의 흐름이 떠올랐다. 사람 몸은 온갖 복잡한 구멍과 관들의 집합체다. 현대 의학의 발달은 몸 밖에서 이 구멍이나 관에 접근하여 막힌 곳을 뚫고 새는 곳은 막으려는 눈물겨운 노력과 함께해 왔다. 요관이 막혔을 때 방광내시경을 통해 신장까지 삽입하는 요관 스텐트는 양쪽 끝이 J 모양으로 구부러져 '더블 제이' 간단히 그냥 'J' 라 불린다. 삽입된 J를 통해 소변은 다시 흐를 수 있다.
맑은 하늘이 파랗게 열렸다. 설레는 기분으로 길을 나선다. 오늘은 어떤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볼까? 진료 대기실에 들어서니 교복을 입은 아이가 가방을 둘러멘 채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옆자리 어머니의 얼굴엔 오만가지 걱정이 서려 있다. 시험이 코앞인데 힘들더라고 좀 참고 묵묵히 달려주면 좋으련만. 전력으로 질주해도 경쟁에서 이길까 말까 한 이때, 왜 또 아프다고 하냐는 표정이다. “저 괜찮을까요?” 내 앞에 앉은 아이가 묻는다. 공부할 때가 되면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고,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면서 아이는 힘든 낯빛이 영력하다. 어머니는 ‘더는 듣고 싶지 않은 언사를 늘어놓는다’면서 아픈 자식을 원망한다. 책상엔 잠시도 앉아 있지 않으면서 머리 아프다고 하다가도, 놀 때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말짱한 얼굴로 기분이 좋아지니 꾀병이 분명하지 않느냐며 아이에게 눈을 흘겨댄다. 배불리 먹고 공부만 하면 되는데, 이제 조금만 더 하면 고생도 끝이 날 것인데, 그것이 무에 그리 힘들어서 저리도 고통스러워하는지 모르겠단다. 진찰대 위에 누워 있는 아이가 듣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슴 속 레퍼토리를 다 내어 보이는 어머니, 하소연하다
민준의 나이가 벌써 열아홉 살, 청년이 되었다. 출생 25일 만에 보송보송한 우윳빛 피부로 평화롭게 누워 첫 진찰을 받을 때가 생생한데 세월은 공평한 것인가. 그날... 그의 신체 계측 백분위 수치는 표준이었다. 그러나 아기 포대기를 홀랑 벗기고 진찰대에 옮길 때 내 손으로 느껴지는 그의 중량감은, 직감적으로 뇌신경 계통에 문제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척주와 사지의 근무력(筋無力)과 경직성이 뇌성마비 중증이었다. 내 표정만 살피던 젊은 부부는 마치 공판을 기다리는 피고인처럼 불안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상태를 묻는 아기 아빠는 거의 울상이었다. 신생아 운동반사 반응 등을 정밀 진찰하면서, 난 이 결과가 젊은 부부에게 줄 수 있는 충격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하고 내심 걱정을 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흔히 있는 경우인 것처럼 사무적으로 설명했다. “운동신경에 장애가 있으니 종합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군요.” 집에서도 갓난아이의 행동과 반응에 뭔가 이상해 했던 부부 역시 낙담의 기색이 역력했다. 이때부터 민준의 성장은 내 인생의 고리가 되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 민준이 예방주사 맞으러 왔습니다.” 늘 밝은 미소로 민준이 아버지가 진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