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21일 정부와 의사단체에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을 촉구했다.
이날 나순자 위원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은 연봉 3~4억원을 제시해도 공공병원에 근무할 의사가 없어 필수 진료과가 문을 닫는 공공의료 붕괴 현실과 의사 인력이 부족해 무면허·불법 의료가 횡행하는 부끄러운 현실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의사 인력 확충은 이제 전 국민적 관심사이자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면서 지금 당장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세웠지만, ▲얼마나 늘릴 것인지 ▲어디에 얼마나 배치할 것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추진할 것인지 등에 대한 계획이 불투명한 것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나 위원장은 “의대 정원 확충은 의과대학의 수요 조사만으로 결정할 일도, 의협의 눈치 보면서 결정할 일도 아님을 강조하며, 국민들의 수요와 의사 공급 현실을 계산해 필수의료와 공공의료 및 지역의료 개선에 필요한 의사 인력 규모를 따져 의사 인력 확충에 적정 규모를 내놓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의사 인력을 어디에 얼마만큼 배치하겠다는 계획 없이 의과대학 정원만 확대하면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과 피부과·성형외과 등 고수익 진료과 쏠림을 막을 수 없음을 덧붙이며, 의대 정원 확대는 반드시 공공의대 신설과 지역 의사제 도입 정책 패키지와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나 위원장은 최근 진행한 국민여론조사 결과에서 각각 찬성 비율이 ▲의대정원 확대 82.7% ▲지역의사제 실시 77% ▲공공의대 설립 83.4% 등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음을 근거로 보건복지부는 의협의 눈치 보지 말고 시민사회노동단체와 국민과 함께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의사협회에게는 이러한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지 말고, 인력 부족으로 고통받는 동료와 아픈 국민을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보건의료노조는 ‘의사 인력확충 관련 TF팀’을 구성해 의사 인력 부족으로 인한 ▲의료 붕괴 실상 ▲환자 안전 위협 사례 ▲불법 의료 현실 ▲과도한 의사 임금 상승과 타 직종과 임금 격차 등을 조사하고, 전문가 논의를 거쳐 국민과 언론에 널리 알리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보건의료 현장에서 뛰는 의료인력들을 중심으로 의사인력 확충과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설립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현장 발언도 이어졌다.
먼저 국립중앙의료원 민지 간호사는 “공공병원에서는 의사 인력 부족으로 진료과가 폐쇄되고, 응급실이 제한적으로 운영되며, 장기간 진료 대기해야 잠깐 의사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도 모자라 의사가 아닌 사람이 처방·처치·수술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의료기관 종별로 법적 정원 충족 비율은 전국적으로 70%에 그치고 있고,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58%에 불과할 정도로 의료인력이 저조해 지역의 책임의료기관과 보건소까지 의사 부족으로 필수의료 기능조차 수행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임을 전했다.
특히, 국립중앙의료원의 경우에는 필수진료과인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전공의 부재로 주말이나 밤에 환자가 아프면 적절한 시간에 치료를 받지 못할까봐 불안하게 보내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아는 직원들은 지인들에게 다른 병원으로 향하도록 이야기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민 간호사는 공공의대를 설립해서 공공의료기관에서 필수의료·지역의료를 책임질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의료원일수록 지역의사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효준 보건의료노조 포천의료원지부장은 “현재 감염병 전담병원이 없어진 지가 4년이 됐지만, 환자들이 돌아오지 않아 병원은 비어있으며,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 수행 외에도 본인이 감당할 업무에 한계를 느껴 퇴사했던 의사들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라고 현재 지방의료원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지방의료원들이 정상화를 고군분투를 하고 있지만, 유입 환자 부족과 어려워진 의사 수급으로 인해 의사 연봉은 끝없이 높아져 직원들의 임금 체불을 걱정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음을 전하며, 지방의료원은 지역의사제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김 지부장은 “지역과 진료과목 간 의사 부족과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려면 지역 의사 선발과 특별전형으로 뽑힌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 지급 및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공공 필수 의료 분야의 10년간 의무 복무 등을 규정하고 있는 ‘지역의사제’야말로 현재 지역 현장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의사 인력 확대도 중요하지만, 소외된 의료 취약 지역에서 헌신할 수 있는 지역 의사 확보 정책도 병행돼야 함을 제언했다.
지방의 국립대병원 질 향상과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의대 정원 확충 등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왔다.
김민 보건의료노조 충남대병원지부 부지부장은 충남대병원은 대전·충남지역의 유일한 상급종합병원이자 지역 책임의료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의사 부족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이 나빠지고 여전히 불법 의료행위가 일어나는 등 부족한 의사 인력 상황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현실을 폭로했다.
특히, 2019년 46명이던 PA 수가 2023년 76명으로 증가했으며, 충분한 의료진 충원 없이 개원한 세종충남대병원은 PA가 2020년 79명에서 2023년 102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 꼬집었으며, PA가 증가한다는 것은 의사가 없어서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PA를 채용해서 의사 업무를 전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강 부지부장은 “윤석열 정부가 공공의료기관인 국립대학교병원의 권한을 확대하고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권한과 역할을 맡을 의사가 부족한 사실에 대해서는 명확한 대책이 없다”라면서 “의사가 없어서 국립대병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진다면 이는 허울뿐인 정책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서울대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 국립대병원은 전공의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으며, 수도권의 대형병원과 국립대병원 분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의대 정원 동결은 지방 국립대병원들부터 환자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분노를 표했다.
그러면서 강 부지부장은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시행은 의료인력 불균형을 완화하고 환자가 마음 놓고 치료받고, 보건의료인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필요한 제도임을 알아줄 것을 호소했다.
이밖에도 의사 증원은 공공적 인력을 양성해 배치하는 원칙 하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은 “의사 수가 적은 상황에서 의사 몸값은 뛰고 상업화된 개원가에서 지나친 수익을 창출하다보니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대학병원의 의사들도 너도나도 개원가로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라면서 “이로 인해 공공병원은 필수과 의사를 구할 수가 없어 종합병원 기준조차 맞출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즉 지금 논란이 되는 의대 블랙홀 현상의 바탕엔 바로 상업적 의료 블랙홀이 있다는 것이다.
최 사무국장은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양적 확대만 해서는 이런 왜곡된 상업적 의료행태가 되풀이되거나 심지어 더 과열될 수도 있다”라고 우려하며, 행위별 수가제와 실손보험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다시 추진되는 의사 증원은 공공적 양성과 배치라는 원칙을 철저히 준수해 나가야만 하며, 국가가 책임지고 의사 양성 및 의사가 부족한 지역과 및 공공의료에 우선 배치하는 설계하에서 의대 증원 정책이 추진되고, 공공적 의사 양성과 배치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공공병원을 확충해야 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