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구매제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던 쌍벌제가 의외로 쉽게 국회 통과되면서 제약계도 적잖이 당황스런 분위기다.
지난해 연말만 해도 복지부가 시장형실거래가상환제(저가구매제) 발표를 연기시키자 제약계는 불안해하면서도 한편 이대로 제도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복지부의 제도 시행의지는 강경했고 이에 제약협회는 회장 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 조직, 회장직대체제까지 끌고 가면서 투쟁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공정위, 국세청조사에 이어 경찰까지 나서서 전국적으로 제약사 리베이트 조사가 진행되면서 제약계는 점점 지치고 있는 상황이다.
대외적으로 나서서 투쟁하는 제약사들은 우선적으로 리베이트 조사를 받기도 했으며 지금같이 어려운 시국에 제약사 대표들은 제약협회 수장으로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몇몇 일간지에 저가구매제를 반대하는 의견 광고를 게재한 것에 대해 복지부가 조목조목 반박하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제약협회는 “유감”의 뜻까지 공식적으로 표현하며 한발 물러서는 입장을 보였다.
처음 정부가 저가구매제를 들고 나왔을때와 지금의 제약계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강경한 반대”에서 “눈치보기”로 돌아섰다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의료계의 반발로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던 쌍벌제 시행까지 현실로 다가온 상황에서 더 이상 저가구매제를 묶어둘 대안이 지금으로선 나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4월부터 시행된 공정경쟁규약은 기부행위에 대해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지만 쌍벌제는 강력히 규제하고 있어 무조건 반길수만도 없는 상황.
얼마전에는 쌍벌제 시행과 관련해 모 의사회에서 제약사 영업사원 출입금지까지 공표하면서 제약계와 의료계간 불편한 관계를 예고하고 있다.
마케팅이 위축되다보니 원외처방액은 기대에 못미치고 매출 성장률도 줄어들고 있다. 성장동력에 새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전략적 제휴 등을 맺기도 하는데 이조차도 시장 전반적으로 위축돼 있다보니 소극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정부 제도는 제도대로, 시장은 시장대로 위축된 상황에서 제약사들은 저가구매제에 대한 강한 투쟁 의지는 자연스럽게 줄어들면서 나서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제약계의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저가구매제를 계속 반대할 것인가, 반대한다면 정부를 꼼짝못하게할 카드를 내놓아야 하는데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시장 순응형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건지 노선을 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