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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검증되지 않은 AI 의료기기·디지털 치료기기 건강보험 적용 반대한다

정부가 지난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디지털치료기기·인공지능 임시등재 방안'을 보고안건으로 처리했다. 

핵심 내용은 검증되지 않은 인공지능과 디지털치료기기를 건강보험에 적용해 환자진단과 치료에 시험 삼아 써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시도에 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한다. 위험천만한 신기술 무차별 도입에 환자를 마루타 삼는 행위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 행위다. 

이는 시민의 생명안전을 우습게 여기고 건강보험재정은 기업에 퍼주는 데만 혈안인 윤석열 정부의 폭거 중 하나이다. 

정부는 8월중 해당 내용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이를 강력 반대하고, 건정심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첫째,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술을 환자에게 적용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우리는 우선 혁신의료기술평가 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혁신의료기술평가제도는 안전성,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기술을 '신기술'이라는 미명 하에 우선 환자에게 적용한다는 제도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기술을 환자에게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건 상식이며, 현대의학의 근간이다. 정부는 근거가 부족하더라도 잠재가치가 높은 기술은 조건부로 승인한다는데 그 잠재가치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혁신성’ 같은 요소가 잠재가치라고 하는데 의료에서 혁신이란 안전하고 효과가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을 말한다는 점에서 혁신의료기술평가 제도 자체가 모순이고 궤변이다. 

정부와 산업계는 신기술은 검증이 어렵다고 주장하는 데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공지능 같은 신기술을 잘 검증하기 위한 방법과 절차는 이미 충분히 연구가 돼 있다.

신기술은 오히려 기존 기술들보다 더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할 영역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지난 5월 입장을 내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인공지능을 의료 분야에 활용할 때는 엄격한 검증이 필수라고 강조한 바 있다. 

검증되지 않은 인공지능이 건강을 위협하거나,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고, 그럴듯해 보이는 오류를 생성하기 쉬우며, 사용자의 민감정보를 보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또, 인공지능은 블랙박스 알고리즘을 사용하기 때문에 통제와 피드백이 어려우며 책임소재가 불분명해 의료현장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다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보건기구는 2021년 ‘인공지능 윤리 가이드라인’을 발간해 부정확한 인공지능을 코로나19 격리 안내에 활용되다가 다수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건강위해를 준 사례 등을 언급하면서 검증 안 된 인공지능은 ‘조용한 살인자(unnoticed killer)’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가 잘 모르고 경험이 적은 신기술은 더 검증할 것이 많고 엄격하게 평가한 후에 허가해야지 거꾸로 검증을 생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 인권을 무시하고 오직 기업 이윤을 뒤 봐주기 위한 정책일 뿐이다.

 
둘째, 환자 임상시험대상 삼는 '선진입-후평가'에 건강보험 적용 안 된다.

이번에 정부가 건정심에서 보고안건으로 처리한 내용의 핵심은 이렇게 '혁신의료기술'로 진입한 디지털치료기기와 인공지능을 건강보험에 최대 3년 임시등재한다는 것이다. 

의료기술은 본래 식약처에서 기술적 성능검증을 하고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해 근거가 있으면 진입시키고, 그 뒤에 심평원에서 비용효과성을 따져서 건강보험 등재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이런 기술을 무작정 허용한 뒤 건강보험 적용을 시켜서 환자한테 써보고, 효과가 있으면 그걸 근거로 정식 허가절차를 밟게 한다는 것이다. 환자를 시험대상으로 삼으면서 환자 비용과 건보재정을 활용한다는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계획이다.

정부는 이런 ‘임시등재’ 시에 건강보험을 적용할지 비급여로 할지는 업체에 선택권을 준다고 한다. 이는 정부가 얼마나 엉터리 제도를 운영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비용 효과성이 있으면 건보 적용, 부족하면 비급여라는 원칙이 있는데, 애초에 효과라는 근거 자체가 불명확한 기술을 통과시켜 놓으니 비용 효과성을 평가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니 기업이 유리한 대로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기업들한테 3년간 근거를 쌓아서 정식등재를 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3년간 이윤을 내고 먹튀할 수도 있는 기회를 주는 제도이기에 오직 기업들이 어떻게 해야 더 돈이 되고 유리할지만 중요해진 것이다. 

즉, 건보 적용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윤을 낼지, 적은 환자에게라도 비급여로 비싸게 판매할지 기업이 결정하라는 것이다. 건강보험 제도 운영을 기업에 맡기는 꼴이다.

정부는 이런 시도가 혁신을 가져올 것처럼 말하지만 그럴 가능성도 거의 없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 시장에 쏟아져 들어오는 나라의 의료기술은 웃음거리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은 줄기세포 치료제가 검증도 없이 허가되는 나라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나라다. 

이는 결국 기술혁신 보다는 단기적 이익을 바라는 국내 업체들의 주식 부풀리기 등 투기에만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는 ‘인보사 사태’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이 나쁘다면서 기존에 보험이 적용되던 필수진료에 해당하는 보험적용 항목들도 줄이는 등 ‘보장성 축소’에 나서고 있다. 

그러면서도 의료상업화를 부추길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에는 근거 없이 30%나 수가가산을 해주고 이제는 검증도 안 된 의료기술 환자 마루타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준다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게다가 이토록 중요한 안건을 건정심에서 보고안건으로 처리해서 논의와 표결조차 할 수 없게 한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내용적으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절차적 정당성도 불충분하다.

정부는 건정심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무시하고 건강보험 제도를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

*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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