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월 필수의료 패키지를 발표한 해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의대정원 확대를 중심으로 의·정 사태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는 등 정부에서는 의료개혁을 강한 의지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강한 의지와 달리 의료현장에서는 여전히 필수의료 패키지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는 시선이 있으며, 이대로 진행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목소리들이 제기됐다.
제43차 2024년도 대한신경과학회 추계학술대회가 11월 9일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개최됐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의료현안과 신경과의 미래’를 주제로 대한신경과학회 수련위원회와 정책위원회가 마련한 정책세션이 진행됐다.
고상배 대한신경과학회 정책이사(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정부가 ‘필수의료 혁신’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화두가 되기 시작한 ‘필수의료’의 정의가 모호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경과가 필수의료에 포함되는지와 신경과 질환 중 어떤 질환이 필수의료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부분들이 모호해 신경을 써서 살펴야만 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고 이사는 의료개혁이 초반에는 의료전달시스템을 개선하자는 내용이어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는데, 필수의료에 대해 지원해 준다는 내용보다 의사 수 부족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모양새가 나타나더니 의대 정원이 의료개혁의 첫 번째 과제로 올라오고, 다른 사안들은 뒤로 밀려나는 모습을 보였으며, 그렇게 마련한 개혁안도 준비가 잘 된 상태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막 던져놓고 끼워 맞추기식의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의료사고 소송 대책 관련해서는 “현재까지는 분만과 관련된 무과실 쪽에만 강화됐고, 나머지 질환들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조차 없는 상황이며, 공공정책수가를 도입해 어떻게 필수의료를 보완해 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전했으며, 보장성 강화도 대부분 적저가 발생하면 사후 보전해주겠다는 내용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공의 교육·수련 관련해서는 “지도 전문의를 배치하고 임상 교육 훈련센터를 늘리겠다고 하는데, 전공의 교육을 진행하면서 나오는 술기 등을 임상훈련센터 등에서 2~3주 동안 배워오라고 하지 않으며, 수련이 어려워지면 야간·휴일에 공동 수련을 진행하겠다는 내용도 있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면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책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방 의료인력 확보 관련해서는 ‘큰 병원 → 아래 병원’으로 전문의를 파견해서 운영하는 방안이 포함됐는데, 고 이사는 “유사한 구조의 ‘공공임상교수제’가 있으며, 2023년 9월 기준 정원이 150명인 반면, 실제 인원은 24명만 지원하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은 부분을 다시 반영한 정책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더불어 개원가 전문의를 초빙해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에서 시술·진료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진료한 의사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병원이 책임을 지는 것인지 법적인 판단이 미비한 상황에서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외에도 중증도 분류체계인 KTAS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1998년도 처음 TPA가 나오던 시기에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모델을 토대로 만들어 2015년도에 공표한 KTAS를 사용하고 있는데, 뇌졸중 발생 3시간이 지나면 비중증으로 분류하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2021년도 기존의 KTAS의 문제를 개선 및 내용을 업그레이드한 KPS라는 분류도구가 개발됐음에도 보건복지부에서 응급실에 적용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어 아직도 2015년도에 만들어진 분류체계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며, 소방청에서 내년부터 적용하겠다는 새로운 KTAS가 더 현실에 맞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음을 밝히면서 한탄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을 통한 ‘전문의 중심 병원’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송태진 이화의대 서울병원 교수는 “전문의만 있는 경우는 가능할 수 없다”며, 전공의들이 담당하던 업무를 전문의들이 수행하도록 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전문의를 고용해야 하는데, 비용적인 측면에서 수가로 보전되기가 어려워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전공의들이 강의를 듣거나 VR로 연습한다고 해서 환자를 잘 살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직접 누가 계속 가르쳐야 하는데, 전문의가 아주 많다면 가능하겠지만, 이대서울병원처럼 의사 수가 적고 다른 병원으로 이직하겠다는 상황에서는 전공의 교육·수련 업무를 하기가 굉장히 벅차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PA와 전문간호사들이 모든 의사 업무를 대신할 수 없으며, PA간호사가 전공의 업무 등을 맡을 수 있도록 하려면 결국 교육도 의사가 담당해야 하나, 이렇게 되면 100명이 넘는 전문의가 필요하게 되는 바, 충원이 불가능한 병원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남아있는 전문의마저 이직·사직하는 것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송 교수는 “애초에 사직률이 늘면 안 되는데도 계속 늘고 있으며, 전공의들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전망이 불투명하고 부정적”이라면서 “현 상황이 지속되면 지방에 계신 교수들이 서울 또는 더 좋은 병원으로 이직하면서 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밝히며, 내년·내후년까지 의·정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필수의료 패키지 등의 의료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는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