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널들은 병원의 위기를 ‘인력난’으로 표현했다. 지역 병원들은 이미 의사를 구하기 어렵고, 수도권 대학병원에서도 전임교원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환자의 생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바이탈 진료과, 이른바 ‘필수의료’에는 사람이 없고, 많은 의사들이 미용·성형으로 빠지는 현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11월 29일 진행된 병원협회 학술대회의 토론 세션에서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한국 병원의 위기를 극복할 로드맵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이날 토론에는 박민수 제2차관 외에도 구미차병원 김재화 병원장, 고대구로병원 정희진 병원장, 대한외과학회 신웅진 이사장, 연세대 보건대학원 이상규 위원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구미차병원 김재화 병원장은 지역병원의 현 상황에 대해 “제일 큰 문제는 인력난이다. 기본 4과조차도 운영하기 어렵고, 돈으로도 해결하기 어렵다. 매달, 매년 적자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래도 지역병원이 살기 위해 인건비를 최대한으로 올렸다”고 설명했다.
김재화 병원장은 “분당차병원에서도 병원장을 역임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다. 수도권은 비교적 인력 확보가 수월한 편이지만, 이대로라면 그것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고대구로병원 정희진 병원장은 ‘대학병원의 위기’에 대해 전임교원의 진입은 줄고, 이탈이 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진료 외에도 연구와 후학 양성이 대학병원 의사의 역할인데, 진료에만 매여 있으며 이를 버티지 못해 떠나간다는 것이다.
정희진 병원장은 “생명과 직결된 분야, 중증과 응급을 포함하는 분야는 점점 더 주야와 주말 구분이 없는 3D 업종이 돼 가고 있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해당 전공을 할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입원전담전문의, 초빙교수 등으로 빈 자리를 메우다 보니 인건비의 인플레이션이 나타난다. 계속해서 적자가 나는 대학병원,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병원 등 악순환이 이어지지 않을까 전망된다”고 말했다.
대한외과학회 신웅진 이사장은 “학회의 세분화가 전문화와 발전의 계기가 되긴 헀지만, 이로 인해 충원되지 못하는 분과가 생겼다. 대학병원은 어떻게든 충원을 하지만 종합병원은 인력을 구하지 못하기도 하고, 제한된 인력에서 병원끼리 경쟁적으로 도입하려다 보니 급여 폭이 올라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이상규 보건대학원장은 “피부·미용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인력이 이동하는 것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미용 시장이 수요가 커지는 만큼 의원들이 안정적인 공급을 얻고, 관련 산업이 발달하니 우수 인력이 모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로 인해 가치 혁신과 가격 저하가 이뤄지기도 한다”는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존의 의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위기의식에 대해서는 모든 패널이 공감하는 바, 이상규 원장도 이에 대해 “우리나라 의료 속에서 불공정한 경쟁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정책적인 해결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은 “대한민국은 세계 7위의 선진국이며, 의료 분야에서도 앞서 있지만 지금은 큰 위기다. 그동안의 성취에 취한 끓는 물 속 개구리가 아닌가 싶고, 국가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민수 차관은 “기존 의료체계를 병원, 의원(개원가), 미용 시장으로 나눈다면 필수의료의 위기는 ‘병원의 위기’라며, 사법 문제나 수가, 복지부의 인력 및 사업 규제로 병원의 균형이 깨진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체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가 쉽게 할 수 있는 일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을 구분해 쉬운 것부터 처리하겠다“는 계획인데, 첫 번째로 사법 부담을 완화하고 환자의 피해를 보상하는 필수의료 사법부담 완화를 먼저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박 차관은 ”자동차 보험처럼, 일정 범위 형사소송을 면책하는 쪽으로 큰틀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서로에게 필요한 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로 수가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단편적인 제도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의료행위의 리스크, 숙련도, 시간적인 대기를 고려하는 측면에서 내년부터 수가체계 근본에 대해 재설계에 들어갈 계획이다. 매년 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당분간 2년에 1번이라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를 계획으로 포함한 필수의료 해결 패키지를 정리하고 있으며 곧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박민수 차관은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계획을 갖고, 전방위적으로 고민을 하고 있다. 10년 후 의료체계가 새로운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전반적인 매뉴얼을 만드려는 생각이다. 수가와 관련해서도 심평원장과 현재 최고 전문가를 통해 평가 기준을 만들고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달라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공공정책수가라는 권한을 위임받고 올해 분만수가 지역가산제도, 소아과 전문의 가산, 어린이병원 사후보상제도 등 돈을 많이 썼다. 내년 1월부터 체감이 될텐데, 국민들이 달라진 의료서비스를 체감하면 추가 재원 확보도 공감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대학병원의 상황에 대해서도 ”간담회를 하면서 보면 전임교원들이 일에 치여 살고, 99%의 힘을 진료에 사용하며 행복하지 않아보인다“며 ”인력을 최소 2배는 늘리고,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가며 R&D 허가를 따면 원장들이 환영하고, 신약과 의료기기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의사 증원에 대해서는 ”필수의료 문제 해결책으로서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그 인력이 좋은 일자리에, 병원에 자리잡을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가겠다“며 ”현재 진행중인 논의가 끝나는대로 2025년에 적용할 증원 규모에 대해 결정할 것이다. 교육의 질에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결정하고, 공공의대 신설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