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보호 미비가 지속되는 가운데 외상외과 교수가 실질적인 제도적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외과학회와 대한외상학회가 주관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의료사고 안전망 확충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됐다.

허윤정 교수는 먼저 “전공의들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2016년 12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이하 전공의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근로환경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허 교수는 “법적으로 주 40시간 근무를 초과할 수 없는 일반 근로자와 달리, 전공의들은 주 80시간에 추가로 8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연속 근무시간이 최장 36시간에 달하는 점, 최저임금 적용 여부가 불분명한 점, 야간 및 휴일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경우에도 제재가 없다는 점을 주요 문제로 꼽았다.
법 위반 시 처벌 규정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면 징역형이나 벌금형이 부과되는 반면, 전공의법을 위반한 병원장은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되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것. 유급휴가 역시 일반 근로자가 연간 15일 보장받는 것과 달리, 전공의들은 평균 12일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허 교수는 “전공의법 시행 후에도 전공의들의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이유는 수련환경평가위원회(이하 수평위)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공의법 제15조에 따르면 수평위는 보건복지부 산하에서 수련환경 개선과 전공의 지위 향상을 위한 정책 및 제도를 심의하고 위반사항을 제재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해당 위원회는 대한병원협회에 위탁 운영되고 있어 사실상 병원 경영진의 입장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또한 수평위의 15명 위원 중 전공의 대표자는 단 2명에 불과해 전공의들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허 교수는 “수평위가 병원협회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하며, 전공의 대표가 과반 이상을 차지하도록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허 교수는 최근 전공의들이 의료사고 소송에서 부진정 연대채무자로 지목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필수의료 분야에서 전공의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전공의들은 법적 보호가 미비한 상태에서 민∙형사 소송의 부담까지 떠안고 있으며, 최근 데이트 폭력 관련 소송에서 전공의가 패소한 사례는 더욱 큰 공포를 불러일으켰다”고 우려했다.
과거에는 의료소송에 대한 부담이 지금보다 적었으나, 최근 1~2년 사이 전공의들이 개인 비용과 시간을 들여 법적 대응을 해야 하는 경우가 급증했다. 허 교수는 한국의 형사 기소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점과 과도한 배상액 문제를 지적하며, 의료사고 방지를 위한 예방책과 법률 지원 조항이 전공의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의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사회적, 법적 인식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허 교수는 “환자가 대학병원에 입원하면 담당 교수에게 배정되며, 교수는 환자 치료뿐만 아니라 전공의 교육과 관리·감독까지 책임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환자들에게 전공의가 ‘주치의’로 불리면서 교수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고, 법원에서도 이러한 혼동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최근 판결을 살펴보면, 전공의가 혼자 시행해도 되는 술기를 진행하다가 의료 과실을 일으킨 경우뿐만 아니라, 하위 연차 전공의나 간호사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독 법적 책임을 지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에 대해 허 교수는 “전공의는 피교육자이자 수련생이며, 대학병원 내에서 단독 의료행위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법적 책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법적보호 강화를 위해 크게 네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주 80시간 근무 제한을 현실적으로 조정하고, 수당 지급 및 유급휴가 보장을 강화하는 등 근로기준법에 준하는 전공의 근무환경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수평위를 독립적인 기구로 운영하고 전공의 대표 비율을 과반 이상으로 조정하는 등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전공의가 단독으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감형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등 의료사고로 인한 민형사 책임을 경감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한편 전공의를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하는 관행을 개선하고, 교수진의 관리·감독 의무를 법적으로 명확히 함으로써 수련병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허 교수는 “전공의를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피교육자로 인식하고, 정부가 진정성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러한 개선이 이뤄져야만 젊은 의사들이 의료사고의 부담에서 벗어나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국민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