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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호남권 의사회 “전 정부와 다를 바 없다”

호남 응급이송 시범사업 즉각 중단 촉구

광주 전남북의사회는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와 소방청에서 추진하는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 추진 계획(안)’(이하 시범사업안)이 탁상공론의 결정체로 전국에서 가장 취약한 호남지역 응급의료체계의 붕괴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확신하며, 시범사업안에 강력히 반대하는 바이다.

복지체계라는 것이 작동하는 국가에 사는 시민에게, 국가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권리 중 하나가 건강권이다. 응급의료가 필요한 환자가 적시에 치료받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일, 소위 말하는 ‘응급실 뺑뺑이’는 이러한 복지체계를 와해하고 국민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문제이며 이의 해결이 필수불가결함은 의료계를 포함한 직역과 지역을 불문하고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문제이기에, 사태의 원인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에 기반한 기획안으로 섣부른 사업을 시행했을 때 그 여파가 그 어떤 정책·사업보다 심각할 것임도 자명하다. 전(前) 정부의 ‘의대증원정책’이 어떻게 수립됐고, 정권 내부에서 반대했음에도 밀어붙인 결과가 어떤지는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이번 시범사업안도 그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의 사업안이다. 

이번 시범사업안에는 왜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고민과 원인 파악을 위한 노력이 일절 보이지 않고, 현상에만 집중해 전(前) 정부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의 우격다짐으로 압박해 정부의 치적으로 삼으려는 의도 밖에 보이지 않는다. 

먼저 지자체, 소방본부, 광역상황실, 응급의료기관 간 합의를 도출해 그에 기반한 지침을 정비·적용한다고 하나, 이미 지침은 정해진 상태로 발표됐다. 실제 응급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응급의료 담당 의사들은 이러한 지침이 결정되기 전까지 숙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반발 성명까지 발표했으나, 시범사업안은 변화가 없고, 사업의 주체인 복지부와 소방청은 요지부동이다. 중앙정부기관과 지자체끼리만 논의해 합의란 이름아래 밀어붙이는 것이 전(前) 정부와 다를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또한 이송 병원을 선정하고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실제 환자를 볼 의료진과의 협의를 최소화하는 것도 모자라서 최종 치료를 제공하는 전원 가능 병원까지 의료진과의 협의를 최소화하고 광역상황실에서 지정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응급실 뺑뺑이’의 실제 원인을 도외시하고, 수용을 거부한 의사가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라는 저열한 여론몰이의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응급실 뺑뺑이’의 가장 큰 원인은 사법 리스크이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 의해 의료 사고가 발생해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했다면, 환자는 보호를 받아야하고, 해당 의료인은 그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작금의 의료 소송이 정말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 의한 사고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고 있는지 묻고 싶다. 

가까운 일본은 연간 형사 입건·송치 건수는 100건 미만에, 검찰이 실제 기소도 거의 하지 않고, 민사소송 승소율도 20% 미만이다. 미국은 의료 소송의 천국이라고는 하나 이는 민사에 한정될 뿐, 의사에 대한 형사 책임은 거의 묻지 않으며, 지난 172년간 항소심까지 간 의료 과실 형사사건이 15건에 불과하다. 유럽도 대체로 중대한 과실이 아닌 이상 형사 책임을 제한적으로 적용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형사 입건·송치는 물론이고, 실제 기소에 형사적 책임과 민사적 배상 책임을 묻는 판결까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 가속화의 터닝 포인트가 된 소아 외과 10억 배상 판결 사건을 보라. 환자를 살리기 위해 소아외과세부전문의(이하 소아외과전문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았고, 외과전문의가 수술을 했지만, 환자에게 후유장애가 발생한 것이 소아외과전문의가 수술을 하지 않아서라는 판단하에, 수술한 외과 전문의와 그 외과 의사에게 수술을 의뢰한 당직의까지 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 

응급환자를 살리고 싶지 않은 의사는 응급실 의사는 없다. 하지만, 환자에게 안좋은 결과가 발생했을 때, 본인의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것 하나 때문에 여러 가지 트집을 잡아 어떻게든 긴 시간의 소송으로 고통받고, 형사 처벌로 낙인찍히고, 민사 배상으로 경제적인 곤궁함까지 겪게 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의사가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 

비응급환자를 보는 외래와 일반 병동에서도 완벽히 준비되고, 모든 것이 통제되고 설명되고 동의된 상태에서 진료를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물며,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로 넘쳐나는 응급실에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불가피한 악결과의 책임을, 치료했다는 이유로 의사에게 모두 떠넘기는 것이 합당한가? 

최종 치료를, 적절한 자격을 가진 전문의(혹은 세부전문의)가,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비를 가지고, 충분한 설명과 동의하에 진료를 하지 않아서 악결과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든 의사와 병원에 책임을 묻겠다는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기조가 계속되는 한, ‘응급실 뺑뺑이’는 절대 해결될 수가 없다.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대책은 먼지 한톨만큼의 고민도 없이, 실제 의료진과의 실질적 합이도 없이 응급환자를 강제로 수용시키겠다는 금번 시범사업안이 시행된다면, 응급의료시설부터 권역응급의료센터까지의 모든 단계에 걸쳐 의료진의 이탈이 발생할 것이며, 원래도 과밀화에 몸살을 앓던 일부 지역응급의료센터와 권역응급의료센터의 경우, 과밀화의 심화로 인해 응급 환자의 처치가 오히려 지연되는 사태도 발생할 것이다.

이번 시범사업안이 강행될 경우 뇌사 상태에 있는 응급의료전달체계에 사망 선언이 될 것이다. 특히나 타 지자체에 비해 격오지, 의료취약지가 많아, 중증 환자가 적시에 발견되지 못하는 호남지역의 시범사업은, 지역 응급의료체계에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남기게 될 것이다.

이에 광주 전남북의사회는 다시한번 본 시범사업안에 반대를 표명하는 바이다. 

현재의 시범사업안을 백지화하고, 실제 의료진, 수사기관 및 사법기관을 포함한 행정부가 모두 참여한 상태에서 원점 재검토해 근본적인 사태의 원인 파악과 제대로된 사업·정책을 수립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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