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다가오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응급실 뺑뺑이가 증가 및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서는 응급실이 돌아갈 수 있도록 긴급히 대학병원에 파견돼 있던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를 동원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응급실이 붕괴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공중보건의사 차출 및 응급실 배치 과정이 절차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실무자이자 담당자인 공중보건의사들과의 대화도 없이 공중보건의사 차출 전날 통보하는 등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전문성 등 의료의 질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의사 ‘수’만 늘리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이에 메디포뉴스는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의료원의 응급실에 근무 예정인 공중보건의사를 만나 정부와 지자체의 절차에 어떤 문제점이 있고, 과연 높은 수준의 응급실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응급실 근무에 대해 공중보건의사들의 입장과 우려하는 점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충주의료원 공중보건의사 응급실 배치과정이 절차와 공중보건의사를 무시한 채 졸속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A. 지난 8월 건국대학교 충주병원의 응급실 전문의 7명이 단체로 사직서를 내자 당장 9월부터 응급실이 기능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충주시에서 관련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를 8월 26~27일 진행했습니다.
당시 회의에서 공중보건의사를 건국대학교 충주병원에 배치하거나 2~3차 병원에 갈 환자들이 찾아오는 충주의료원에 배치하면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전해지는데, 문제는 공중보건의사가 이 회의에 참여하지 못함은 물론, 회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후 8월 28일 아침 갑자기 제가 파견 근무 중인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타 공중보건의사로부터 전화가 오더니 9월 중순에 복귀 예정인 저와 논의도 없이 저의 복귀가 결정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고, 충주시 보건소 측에 연락해봤더니 착오일 줄 알았으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측에서 복귀 관련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이에 절차적 정당성이 무시됐다고 항의하면서 담당 과장에게 연락해봤더니 8월 26~27일에 진행된 회의 내용은 공중보건의사들을 조기 복귀를 시키자는 취지의 아이디어 차원에서 논의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으로, 복귀 날짜를 정하는 과정은 저의 의사를 존중해서 협의하겠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8월 29일 아침 파견을 나간 병원 행정팀 직원을 만나 복귀 관련 이야기를 논의하러 갔을 때, 중수본이 제가 있는 파견병원에 보낸 메일을 볼 수 있었는데, 저의 이름과 함께 저의 복귀 날짜가 8월 30일 그대로 고정돼 있었습니다.
특히, 공문 작성 시기가 8월 28일로 되어 있었던 것으로 봤을 때, 이는 저와 복귀 날짜를 협의하겠다고 보건소 담당 과장이 밝힌 시점에서는 이미 도장이 찍힌 공문이 준비돼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Q. 다른 공중보건의사들도 같은 상황인가요?
A. 제가 이번 일을 겪게 되자 다른 공중보건의사 선생님들도 계신 단톡방에 복귀 명령을 받은 사람이 없는지 한 번 확인을 해봤더니 제가 복귀 명령 여부를 묻자 그제야 다른 공중보건의사 선생님들도 자신이 모르는 상황에서 복귀 및 응급실 파견 공문이 나오고 있거나 관련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습니다.
충주시에는 저를 포함해 공중보건의사가 총 8명이 있는데, 복귀 명령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타 대학병원에서 파견 근무 중인 4명의 공중보건의사에게 8월 30일까지 복귀를 명령하는 공문이 준비·발행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응급실에 동원되는 당사자인 공중보건의사임에도 논의 과정과 날짜 협의 과정에서 모두 배제되는 등 일련의 과정들이 무례하고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원하던 결과에 맞춰서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 부당함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Q. 응급실 차출과 관련해 해당 지역의 공중보건의사들의 입장과 상황은 어떠한가요?
A. 응급실에서 파견 근무를 하더라도 저희 공중보건의사들은 보조 업무 등 제한적인 업무만 가능합니다.
애초에 보건복지부 유권 해석에 따르면 진료 거부 항목 중에는 능력이 부족하면 환자를 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응급실에서 업무 보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가 밀고 들어올 때, 유권 해석을 근거로 진료를 거부해도 면책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렵고, 설상가상으로 공중보건의사는 임기제 공무원이기 때문에 명령 복종의 의무가 있어 응급실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학병원 파견 과정에서 공중보건의사들이 다양한 술기를 요구받았을 때, 의료사고 발생 시 민·형사 책임을 각 병원의 원장이 모두 짊어지는 내용으로 서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학병원 파견이 아니라 의료원 차출이어서 같은 업무지침을 적용해 지방의료원의 요구에 따라 업무를 보던 도중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민·형사 책임을 의료원장이 져달라는 내용의 서약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서명해도 이번에 새로 생긴 서약서여서 법적인 효력이 있을지 확답을 할 수 없어 사실상 법적 효력이 있는 완전한 면책 조항은 없다고 봐야 해 제대로 교육·수련을 받지 못한 저희 공중보건의사들은 걱정이 큰 상황입니다.
Q. 일방적인 차출에 의한 경제적 피해 또는 응급실 근무에 따른 보상 관련해 우려에 대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1~2일 만에 짐 빼고 하는 것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이사와 배치 과정에서 돈이 들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나온 비용을 나중에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자비로 많은 돈을 들여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또한, 전국적으로 공중보건의사·군의관을 막대하게 투입하고 있는 것 대비 인건비를 똑바로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1~2개월 정도는 체납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월급 및 파견 수당도 7월 일부 날짜에 대해 파견 나간 것은 일부만 받은 상황이며, 제가 8월에 일한 월급을 언제 받을 수 있을지도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저희 공중보건의사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일반 근로자가 아니라 공무원이기 때문에 국가·기관에서 체납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할 방법이 없어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Q. 이번 사태에 대해 기존의 파견병원과 파견될 예정지인 충주의료원 및 건국대 충주병원 등은 어떤 입장 및 반응을 보이고 있나요?
A. 각 병원별로 사정 등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파견병원(대학병원) 측에서는 공중보건의사는 월급을 주지 않아도 되는 정부가 제공한 공짜 인력이어서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으면 계속 데리고 있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중수본 측에서 압박이 들어오면 굳이 차출되는 공중보건의사 선생님을 끝까지 잡아둘 생각은 없으며, 대체 인력이나 정부에서 빨리 보내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이 파견병원(대학병원) 측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공중보건의사들이 파견될 응급실이 있는 병원 입장과 관련해 말씀을 드리면, 우선 건국대 충주병원은 사직을 제출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7명 중 2명이 사직을 철회함에 따라 그분들을 파트타임으로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방향으로 결정되면서 공중보건의사들이 건국대 충주병원에는 투입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 대신에 충주의료원 응급실에 투입되는 것으로 정해졌는데, 충주의료원 측은 업무 범위 초안으로 다른 전문의의 백업 없이 환자를 공중보건의사 2명이서 12시간 응급실을 봐줄 것을 제시했으며, 충주시 측에서 해당 조건에 맞는 인력을 제공한다고 해서 응급실에 파견되는 공중보건의사와 다 논의가 끝난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충주의료원 측의 초기 조건은 의사와 환자 모두 의료사고 등으로 큰일날 수 있는 사항이기에 현재 업무 범위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명령 주체인 충주시나 충청북도 측에서 투입하는 공중보건의사의 업무 능력 산정을 전혀 하지 않은 채 공중보건의사들에게 업무 범위를 명확히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의료원은 현실적인 수준의 보조 업무로 업무 범위를 조정하기로 협의했습니다,
가장 빠르게 배치되는 공중보건의사들의 경험과 의견 등을 바탕으로 업무 범위가 조정·확정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정부, 지자체, 의료계 등을 향해 하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먼저 정부를 향해서는 공중보건의사 취지를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쓴소리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공중보건의사 취지 자체가 의료 취약지에서 보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함인 만큼, 공중보건의사는 도서 지역에서 본인 역량에 맞게 만성질환을 보는 일반적인 업무를 하며 환자들을 돌봐줄 때, 가장 빛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공중보건의사들을 끌어모아 대학병원에 다 투입해버리면 적절한 기능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본래 공중보건의사들이 있던 지역의 환자들이 소외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이번 차출 과정에서 중수본은 전화를 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전화를 아예 받지를 않으며, 저희가 받아야 할 정보조차 받지 못하거나 기사로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등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중수본의 모든 부서에 연락을 시도해도 전화가 연결되지 않고, 담당 부서 직원은 2주에 한 번씩 바뀌다보니 어찌해서 전화가 연결돼도 업무 인수인계 중이라는 답변만 받을 수 있는 등 실질적인 업무를 처리할 의지조차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만큼 개선이 필요합니다.
지자체를 향해서는 공중보건의사를 장기 말 다루듯이 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협조 관계를 유지해야 근원적으로 환자한테 최종적으로 좋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관계임에도 공중보건의사를 패싱하고 계획을 수립하거나 아니면 공문을 작성해놓고도 이를 보여주지 않고 진행하고 있던 것은 굉장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복귀 명령인데도 도장이 찍혔다고 그냥 하라고 요구하거나, 실무진을 배제한 채로 업무 범위를 설정해 복귀 명령을 내리는 것은 결국 잘못된 응급실 인력 배치가 이뤄져 예상치 못할 큰 피해가 환자에게 돌아가게 되는 무책임한 행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Q. 이밖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지금 추석을 앞둔 의료대란이 걱정돼서 황급하게 이제 급한 불을 끄려고 이것저것 시도하는 상황으로 보이는데, 추석을 앞둔 의료대란이라는 건 제 생각에는 이미 산적한 문제에 대한 결과 값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논하지 않은 채 미봉책으로 이제 부적합한 공중보건의사 인력을 아랫돌 빼서 윗돌 개듯이 옮겨 배치하게 되면 결국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도서 지역 환자들과 근무상 취약 관계에 놓여 있는 공중보건의사들만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응급의료 진료에 필요한 수련이나 적합한 교육을 받지 않고도 진료를 보아야 하는 의사들과 응급실 진료가 있기를 기대하고 오는 응급실 환자들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이것은 어렵게 만들어낸 문제를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쉽게 풀어가려고 하니까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바, 실무진하고 좀 잘 얘기하면서 문제 해결 방식을 논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