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조인력(PA) 문제 등 의료계 현안을 포함해 병원별 전공의 노조 설립, 수련환경평가위원회 개선 등 전공의 사회에서의 큰 현안에 대해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후보들의 입장차는 궤를 같이하면서도 미묘한 온도차를 보였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선거관리위원회는 7일 서울시의사회관에서 회장 선거 후보자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기호 1번 주예찬 후보(건양대병원 비뇨의학과 레지던트 2년차)와 기호 2번 여한솔 후보(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3년차)가 각자의 공약과 주장을 무기로 격돌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주된 쟁점이었던 것은 크게 ▲전공의 노조 ▲불법 의료보조인력(PA) 문제 ▲박지현 전 회장과 한재민 회장 회무 평가 ▲수련환경평가위원회 개선, 이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공의 노조= 수련병원별 전공의 노조 활성화를 두고 두 후보의 온도차는 미묘하게 달랐다. 두 후보의 공약에 노조 활성화가 들어있지만, ‘제1공약’으로 내세웠다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그 필요성을 강하게 피력한 주 후보와 달리 여 후보는 신중론을 펼치며 다소 미적지근한 모습이었다.
노조 활성화를 ‘대전협의 힘’이라고 표현한 주 후보는 “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가지는 실질적으로 힘 있는 전공의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각 병원별 노조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며 “이를 위해서는 현재 설립돼 운영 중인 여러 의사 노조들과의 연대, 의협으로부터의 전폭적인 지원 요구, 각 단위별 노조 결정을 위한 실무단 구성 등의 활동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반면, 여 후보는 전공의 노조 활성화보다 각 병원별 전공의협의회와의 긴밀한 소통과 전체 전공의 연락망 구축 등에 더 무게를 뒀다.
여 후보는 “24기 집행부 대의원총회 때 병원별 전공의 노조 구성을 안건으로 올렸지만 그것이 어떤 실익이 있을지 전공의 선생님들의 안타까움과 자괴감이 현실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있어 번번이 부결됐다”라며 “대의원들에게 노조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들이 힘들어하고 있어 어떻게 병원별 노조를 만들겠다는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에 그는 “대전협과 전공의 노조를 투 트랙으로 유지하고, 노조를 통해 병원과의 연봉, 휴가 등 계약조건 협상에 강점, 또한 노동3법에 의해 전공의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하겠다”라면서도 “카카오톡 채널 운영 등 긴밀하게 소통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PA 문제= 두 후보는 PA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궤를 같이 했지만, 명확한 해결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주 후보는 실제 비뇨의학과 전공의로서 PA와 함께 업무를 보고 있는 상황을 털어놓으며 “무조건 반대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선 수가 문제나 인력 부족 문제 등 다양하게 얽혀있는 의료계 문제들을 여러 단체들과 함께 풀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여 후보는 미국 PA제도와 우리나라 PA제도는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명백한 불법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해결하기 위해 의료계가 힘을 모아 의견을 취합하고 정부와 병원계를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함을 피력했다.
여 후보는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대형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고 기피과들에 대한 지원은 전무한 상태에서 병원들은 돈이 없다고 불법 PA를 뽑고 있다”며 “불법 PA는 전공의가 해야 할 술기들을 자행하고 있다. 하지만 전공의 입장에서는 내 일이 줄어들기 때문에 병원과 의료계 전체 사회에서의 간극이 있다”고 지금 현실을 지적했다.
이어 “원칙을 지켜야 한다. 불법 PA는 불법이다. 엄벌해야 한다”며 “수련하는 이유는 올바른 전문의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무면허 PA라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인턴들에게 지시한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자괴감과 모멸감은 나 역시도 공감한다. 불법 PA 문제뿐만 아니라 올바르지 않은 수련환경 개선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박지현 전 회장과 한재민 현 회장 회무 평가= 대전협 전 회장단과 현 회장단을 두고도 둘 사이의 평가가 엇갈렸다.
박 전 회장과 개인적으로 의과대학생 시절부터 알고지낸 여 후보는 그를 작년 파업이 출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며 추켜세운 반면, 한 회장 집행부는 대의원들과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았고, 대전협 회무를 경험하지 않은 탓인지 회무 추진 능력이 아쉽다고 평가했다.
여 후보는 “박 전 회장은 알고 있는 여러 의사 가운데서도 의대생과 전공의, 의료계 현장에 대해서 가장 먼저 걱정하고 힘쓰고 애쓰는 분”이었다면서 “박 전 회장이 있었기 때문에 작년 파업이 출발할 수 있었고, 뜨거운 여름에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물론 의협과 복지부, 국회 간의 갑작스러운 합의로 인해 원동력을 잃게 됐지만, 박 전 회장은 전공의 사회와 의료계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현 집행부에 대해서는 “대의원들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고 대전협 회무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이 회장, 부회장, 집행부 역할을 하도록 설정됐다”면서 “이런 탓에 회무들이 올바르게 진행되지 않았던 것 같다. 회무 능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추진력 있게 일이 진행되지 않았던 것은 상당히 아쉽다”고 꼬집었다.
반면, 주 후보는 지난해 단체행동을 기점으로 대전협에 관심을 갖는 전공의들이 많아졌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박 전 회장이 전체 전공의들의 의견 취합 없이 파업을 중단했던 것은 비판했다.
주 후보는 “파업 이후 대전협에 대한 전공의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한재민 회장이 특별히 잘한 것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동시에 (한 회장이) 박지현 전 회장처럼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행동은 안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수련환경평가위원회 개선= 주 후보와 여 후보는 수평위 개선안으로 각각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 ‘주기적 의견 수렴 장 마련 및 공개 가능한 정보 공유’를 제시했다.
주 후보는 “수련평가위원회 관련 회의에 참여해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공의 회원 보호 및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보다 확실한 해결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각 단위 병원별 수련환경의 문제점들을 취합하고 정리해 수평위에서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겠으며, 이를 통해 전공의 회원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부당한 압박에 시달리지 않는 수련환경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또한, 현재 구조적으로 전공의의 목소리를 내기에는 불합리한 수평위의 구조 개선을 요구해 수련 정책 수립에 있어 전공의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전공의 수련환경 문제를 다루는 곳에 정작 참여하는 전공의 숫자는 부족하고, 다수결 원칙에 따라 여러 현안을 판단하는 것은 일부 전공의들의 목소리가 보장되지 않을 수 있어 이를 개선하겠다는 것.
주 후보는 또 “정부는 전공의 수련에는 단 한 푼의 비용도 지원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전공의 수련 관련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필요할 때마다 전공의 인력 동원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국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전공의 수련 비용 지원과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져야 한다”고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 도입을 주장했다.
여 후보도 수평위 구조 문제를 지적하며 전체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수평위가 대기 위해서는 대통령령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 후보는 “전공의들의 진짜 목소리를 반영하는 수평위를 만들겠다”며 ▲수평위 회의 전 주기적인 의견 수렴의 장 마련 ▲회의 후 공개 가능한 범위 내 정보 공유 및 함께 대응 ▲전공의 평가위원 확대 등을 약속했다.
한편, 이번 대전협 회장 선거는 9일부터 13일까지 온라인 투표로 진행되며, 당선 결과는 13일 오후 7시경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