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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전공의에게 의료위기 책임 묻는 것은 비양심적

의료 거버넌스의 문제점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매년 뉴스위크는 전 세계 최고의 병원을 선정한다. 2025년 기준으로 세계 최고 병원 250개 중 우리나라 병원은 16개가 선정됐다. 이 중 서울대학교병원을 제외하면 모두 수도권에 있는 민간 사립대학병원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아시아 최고 시설의 병원이자 우리나라 최고 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이었다.

그렇다면 개혁의 대상은 누구인가? 67년 전 이름조차 없던 병원들을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발전시킨 민간 의사들과 민간 의료기관인가? 아니면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조차 상대적으로 낙후시킨 보건복지부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국가와 의사 간의 관계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는 표현보다는 ‘전근대적이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헌법재판소도 인정하듯, 대부분의 나라들은 계약을 통해 보험의사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의 부역처럼 민간 의사와 의료기관을 강제로 건강보험에 동원해 왔다.

2024년, 정부는 추석 연휴 동안 문을 여는 동네 의원을 강제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 개원의는 “직원이 추석 근무를 거부할 경우 강제로 출근시키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보건소는 엉뚱한 답변을 했고, 보건복지부는 고용노동부에 문의하라고 했으며, 고용노동부는 의료법에 따라 판단하라고 답변했다.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는 정부가 공언한 공권력 행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추석 연휴처럼 일시적으로 근로자에게 강제근로를 시키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인데, 보건복지부는 전공의들에게 사직서 수리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고 무려 4개월 동안 퇴직의 자유를 박탈했다. 더 나아가 보건복지부는 수련기관이 전공의에게 월급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내용의 공문까지 발송했다. ‘일하지 않으면 월급을 받을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문제는 보건복지부가 다른 의료기관에 취업할 수도 없게 만든 상태에서 월급 지급 의무가 없다고 선언했다는 점이다. 형사사건으로 기소돼 직위가 해제된 공무원조차도 봉급의 50%는 지급받는다. 정부가 전공의에게 행사한 권력은 명백히 전근대적인 공권력이다.

Physician Dual Practice란,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사가 근무 외 시간에 민간 병원에서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공공의료체계와는 독립된 민간의료체계가 존재해야 한다.

서구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생명이 소중하다는 이유로 의료서비스 가격을 억지로 낮추지 않는다. 오히려 의료보장을 위해 충분한 재정을 투입하고, 가난한 국민을 지원한다. 

반면 대한민국은 생명이 소중하다는 이유로 의료서비스를 강제로 싸게 만들고 있다. 요양기관을 강제로 지정해 모든 의료기관에 이를 적용하고 있으며, 병원들은 박리다매나 비급여 창출 같은 교차보조 방식으로 운영된다. 대학병원 응급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전공의들은 국민으로서 기본권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의료 민·형사 책임까지 가중되면서 필수의료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비교제도론적 시각에서 바라본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근본적인 모순이다.

발제문은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현행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자동차 사고 이후, 보험 가입자와 보험자가 각각 1표씩 행사하고 피해자가 1표를 행사하는 구조라면 공정한 합의가 어렵다. 보험자가 가입자를 대리하는 구조라면, 피해자와 1:1로 합의하는 것이 공정한 절차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응급복부 수술 및 마취료 수가를 200% 가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수가를 200% 올리는 것은 정상적인 행정이 아니다. 이는 수가를 올리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왜 합당한 수가가 산정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구조적인 반성과 점검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건정심은 보험가입자와 보험자가 이중으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불공정한 구조다. 더욱이 의사의 수가를 결정하는데 다른 직역의 의료인들에게 표결권을 부여하고, 의사 대표는 극소수만 참여하게 되어 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다.

우리나라 의료 거버넌스를 개선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먼저 공정한 제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기원전 3세기 로마법인 Lex Aquilia는 고객이 세공인에게 도자기를 수리 맡겼다가 도중에 도자기가 깨졌을 때의 책임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 법의 핵심은, 세공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리는 계약서에 명시해 거부할 수 있고, 그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고객도 보호받아야 하지만, 세공인도 보호받아야 한다.

만약 고객 보호를 명분으로 세공인이 비싼 도자기 수리를 거부할 수 없고, 수리비용은 정부가 강제로 정하며, 수리 중 깨지면 손해배상해야 하고, 심지어 감옥에 갈 수도 있다면, 아무도 세공인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의사뿐 아니라 위험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 일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거버넌스를 개선할 때는 위원회의 남용도 방지해야 한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라는 숫자는 정부 발표 한 시간 전, 처음으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등장했다. 위원회를 이런 식으로 운영한다면 차라리 없애는 것이 낫다.

앞으로 운영될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허수아비 위원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합당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존중하는 거버넌스가 만들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의료 접근성, 국민 의료비에 미치는 영향, 의사의 지역 분포와 생산성, AI 등 의료기술의 발달 등을 고려해 의료인력을 추계해야 하며, 그 기준에 따라 운영되는 위원회가 되어야 한다.

거버넌스를 개선하려면 현재의 의료위기가 의사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중증 응급의료의 공급 부족이 시장 실패 때문이라고 말하고, 필수의료의 문제는 실손보험과 미용의료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필수의료 위기를 의사의 이기심 때문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실패란 자유방임 시장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수가는 정부가 결정한다. 그렇다면 필수의료 파탄은 명백한 정부 실패다.

또한 정부는 의료위기의 책임을 전공의에게 전가해 왔다. 마치 삼성전자에 위기가 왔을 때 경영진이 그 책임을 6개월 전 퇴사한 인턴사원에게 돌리는 것과 같다.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외국인 근로자조차 주당 52시간 초과 근로를 제한받으며 보호받는 나라에서, 주당 80시간 넘게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 전공의에게 의료위기의 책임을 묻는 것은 비양심적인 일이다.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수련생인 전공의가 현장을 비웠다고 의료에 혼란이 생기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이 맞다. 현재의 의료위기는 전공의 탓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의 문제다.

마지막으로, 의료 거버넌스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에 대한 거시적 관점이 필요하다. 의료보장은 중요하다. 하지만 환자의 선택권, 의학의 발전 또한 중요한 가치다.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이 모든 요소를 함께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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