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지역의사제가 단순한 인력 배치 정책에 머물러서는 지역의료 공백을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배상보험에 있어서도 보다 폭 넓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한성존, 이하 대전협)가 27일 가톨릭대학교 성의회관에서 보건복지부와의 정책간담회를 개최하고 ▲전공의 배상보험 ▲지역의사제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논의를 진행했다.

이번 간담회에서 대전협 박창용 정책이사는 전공의 배상보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방안을 공유했다.
박 정책이사에 따르면 전공의 민사소송은 정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산부인과 등 특정 과목에 국한되지 않고 발생하고 있으며, 배상액도 현행 보장기준인 3억원을 넘는다.
이에 박 정책이사는 “전공의 배상 보험은 특정과목(8개 필수과)이 아닌 전체 전공의 대상으로 확대하고 보장범위도 다층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위험도에 따라 기본 5000만원에서 고위험군 5억원까지 한도를 차등 적용하고, 최근 판결액이 고액으로 상승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해당 과는 10억원 규모의 초과배상 특약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 정책이사는 이와 함께 형사특약의 중요성을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꼽았다. 그는 “수사 단계부터 변호사 선임 비용을 지원하고, 전문가의 법률 가이드를 제공해 초기대응부터 의료사고 안전망 내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전공의들이 느끼는 형사고발에 대한 공포를 실질적으로 낮춰주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정이 열악한 수련병원의 전공의들이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수련병원 지정 요건에 전공의 배상보험 의무 가입도 명시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보험료 부담이 전공의 개인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급여 공제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다음 순서로 대전협 송보근 수련이사(충청지역협의회장)는 지역전공의가 바라본 지역의사제도에 대해 발표했다.
송 수련이사는 지역의사제 출신의 인력이 졸업 후 해외로 진출하거나, 졸업하자마자 미용의원으로 취직하거나, 거듭된 시험을 거쳐 비필수과에 지원하는 경우에 대해 우려하며 중장기적으로는 지역의사제 정원 자체가 미달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 의전원 사례를 언급하며 “다양한 전공자 유입을 통해 의대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기초의학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필수의료 기피현상이 가속화됐고, 의사과학자 생태계는 초토화됐다”며 “지역의사제를 통한 인력 보충은 보조적 수단”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거점병원 경쟁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새기만 하는 자원이 될 것”l라고 지적했다.
암 등 중증질환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서울로 몰리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에서는 그 대안으로 국립대병원 육성 등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결국 재원은 한정돼있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송 수련이사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유연한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에서 받을 수 없는 진료를 지방에서 받을 수 있다면, 환자들이 굳이 서울로 가지 않고 지역의 병원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역의사제를 효율적으로 순환시킬 수 있는 구조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송 수련이사는 “위수지역의 이중등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대전의 의사가 충남 서산의료원에서 주 1회 정도 일할 수 있도록 인력을 순환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이공계 분야의 사례를 들며 대통령 전공의 장학생 제도 등 우수 인재를 유인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패널토론을 통해 보건복지부 강준 의료개혁총괄과장은 지역의사제에 대해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지역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핵심”이라며 “지역의사제 도입 자체를 원툴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제도 도입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과장은 “일본의 지역의사제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자체의 과감한 지원과 정부의 노력들, 복무인력에 대해 가치있는 인력으로 인정해주는 여러 노력들이 따랐기 때문”이라면서 “안착할 수 있는 제도로 만드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제도“라고 했다.
보건복지부 신현두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전공의 배상보험 지원 현황과 관련해 “전문의의 경우 분만이나 소아 관련 외과 계열에 대해서 보험료를 지원해왔고, 전공의는 내외산소 및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신경과, 신경외과 레지던트를 위주로 지원했다”며 “내년도 사업 시에는 전공의의 특수성을 고려해 전 과목으로 확대하는 부분을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
의료인력정책과 안웅식 서기관 역시 지역의사제가 ‘보조적’ 수단이라는 점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지역의사제 도입이 문제 해결을 위한 국면 전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어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서는 하위법령 제정 작업을 검토하고 있으며, 지역의사제협의체(가칭)를 구성해 구체적인 방안들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대전협 박찬우 광주∙전남협의회장(전북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는 지역의사제에 대해 응급실 복부손상 환자 진료에 비유했다. 복부손상으로 출혈이 발생하면 수혈이 필요하지만, 수혈만으로 출혈이 멈추지 않는 경우에는 신속한 수술이 필요한 것과 같다는 설명이다.
박 협의회장은 “수혈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결국은 수술을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더 집중을 해야 한다. 수술이 늦어지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는 만큼 이 점에 대해 충분히 고려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전협 오지인 대구∙경북지역협의회장(경북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은 현행 지역의사제 법안은 ‘숫자’ 자체에 집중이 돼있다고 지적했다. 오 협의회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사가 어디에 얼마나 부족해 진료지연이 생기는지, 지역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분석이 안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대전협 주병욱 부산∙울산∙경남지역협의회장(양산부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은 배상보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주 협의회장은 “배상보험이 ‘경제적인 부담’은 줄여줄 수는 있지만 ‘리스크’를 낮춰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며 “배상보험이 생김으로써 소송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장될 수 있다”며 우려했다.
단국대학교병원 외상학과 허윤정 교수는 지방에는 환자 수가 부족하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지역의사제’를 하기에 앞서 ‘지역환자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 수 부족으로 허 교수 역시 정든 단국대병원을 떠나 수도권으로 거처를 옮긴다.
허 교수는 “본질적인 문제는 지역에 환자가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라며 “환자들이 자신들의 지역에서 치료를 받았을 때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중증의료나 응급의료는 단기간에 개선되지 않는다. 해당 분과의 의사들이 그 지역에서 충분히 진료를 해야 그 실력과 인프라가 유지된다. 환자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 지역의 병원에는 의사를 다수 고용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지역에 일자리가 없게 된다”며 악순환의 반복을 지적했다.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은 “배상보험과 관련해 오히려 소송이 조장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며 “’의료는 사람이 하는 일이자, 더 나빠질 것을 덜 나쁘게 해주는 행위’라는 점을 초점으로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전공의 배상보험에 대해서는 소송기간이 긴 만큼 구상권 문제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