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 붕괴 우려가 현실화되는 가운데, 정부가 포괄2차 종합병원 육성, 의료 거버넌스 재정립 등을 중심으로 지역의료 재건에 나서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일선 의료현장에서는 환자 유출, 인력 편중, 재정 취약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법이 미흡하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2025 대한의학회 학술대회가 ‘소통과 공감,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묻다’를 주제로 13일 플렌티컨벤션에서 개최됐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실효성 있는 지역의료 발전방안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된 가운데,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 강준 과장이 지역의료 재건을 위한 정책방향에 대해 소개했다.

강 과장은 지역의료와 관련해 고민할 과제로 ▲지역 의료자원 육성 및 역량강화 ▲지역의료 특화 지원∙투자 강화 ▲지역에서 작동 가능한 협력 거버넌스라는 크게 세 가지 주제를 꼽았다.
먼저 강 과장은 “그동안 보장성 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왔지만 지역 간 격차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다”며 의료서비스 공급격차가 이용격차로 이어지고, 지역간 건강격차로 악순환되는 고리를 끊기 위해 전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강 과장은 지역의료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확충에 대해 언급하면서 “포괄2차종합병원, 국립대병원 등 지역에서 최종적으로 치료를 할 수 있는 기관들, 대부분의 의료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민관기간 육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공의료 확대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지방의료원의 육성이나 공공병원의 확충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제시되기도 했던 사안이다. 그러나 강 과장은 지역에서 환영받지 못했거나 투자가 미흡했던 과거의 공공병원을 현실을 언급하면서, 약간의 기능보강 사업만으로 공공의료를 확충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온당할지에 대해 꼬집었다.
특히 의료인력 확보에 대한 문제도 강조됐다. 단순히 양적 접근을 넘어 질적인 수준, 편재문제 등을 어떻게 해소하고 실효성 있게 대책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강 과장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의료전달체계나 병상의 문제, 지역에서 의료이용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적방안 등에 대한 해법 모색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과제로는 지역의료 특화를 위한 지원과 투자강화 방안이 제시됐다.
강 과장은 같은 병원이더라도 서울에서 개원하느냐, 지역에서 개원하느냐에 따라 의료기관의 생존 가능성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구 및 사회적 환경에서의 불리함 때문에 지역병원이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수가나 인력, 인프라 운영 등에 대해 국가가 책임지고 투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지역 완결성’에 대한 논의도 나왔다. 강 과장은 “지역완결의료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지역완결의료를 바탕으로 중앙과 지방이 협력하는 의료체계를 갖추는 것이 더 합리적일지 등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면서도 ”지역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 번째 과제로는 지역의료 거버넌스 확립이 언급됐다. 강 과장은 “지역의 의료자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지역의 준비 미비,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 등으로 실제로 작동된 적은 드물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역의료 수요 해소를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실험들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며 이러한 시도가 법령이나 규제, 견고한 체계에 막히지 않도록 시범사업 등 유연한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과장은 “새 국정과제가 수립되는 만큼 종합적, 체계적이면서도 실제 작동이 가능한 지역의료 대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숙제다. 약 6개월 내에 어떻게 답을 도출하느냐에 따라 지역의료를 살릴 수 있는 진짜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더욱 소통하고 경청하면서 지역의료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강 과장의 발표 후 대한의사협회 김창수 정책이사는 정부를 향해 장기적인 정책과 단기적인 정책을 구분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정책이사는 “국가가 지역의료를 어떻게 책임질지 명확한 틀을 만들고 그 틀 내에서 지자체와 지역의료기관이 움직일 수 있는 지원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김 정책이사는 ”지역의사제 등의 도입이 환자들을 지역의료로 유인할 수 있을지, 의료인의 특정 진료과 기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이 부족하다”면서 “의료인력이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어떻게 전문적으로 경력 관리를 할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지자체가 현실적으로 의료인력거버넌스를 운영할 수 있도록 역량을 올린 후 협력∙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로서는 지자체의 행정 경험이나 재정여력, 실행능력 등 여러 면에서 미흡한 실정이라는 판단에서다. 김 정책이사는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인건비 비중 등 구조적 한계를 타파할 수 있는 대안 없이 투자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또한 김 정책이사는 “수술을 요하는 환자는 민간의료기관에서 10~15%를 차지하는 반면, 공공의료기관에서는 5~6%로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런 부분에 대한 역량을 어떻게 끌어올릴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정적 측면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정책이사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정책은 공급자에 대한 지원이나 체계개선에만 초점이 맞춰져있고, 이용이나 환자선택 제한에 대한 고민은 배제돼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진료권을 제한하지 않으면 지역의사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환자에게 설득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고 전했다.
신경철 영남대병원 교수는 “현재 지역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수익성이 낮은 비중증, 비응급 분야 진료는 급속히 축소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치료 중심으로 재편되며, 지역 내 다른 진료과목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수익성이 있는 전문 병원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중증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능력은 낮아졌다며, 정부의 개편방향은 지역 환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엄격한 규제는 지역 내의 불균형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하는 한편 “정부가 원하는 지역포괄 2차종합병원은 수익성 유지가 거의 불가능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도권에 가중치를 둔 형태의 규제보다는 지방을 개별적으로 봐야 한다. 수도권 상황을 지역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좋은삼선병원 배장환 소장 역시 환자의 수요 흐름에 대해 강조했다. 배 소장은 “환자들이 서울의 병원으로 향하는 수요적인 측면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무한공급’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주여건은 자녀의 국제고가 아닌 ‘충분한 환자 수’”라며 ”환자가 다 서울로 가버리고 나면 의사도 결국 서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