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이 의대정원 증원·배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면서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에 힘이 붙게 됐다.
이에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들도 의료대란 해소를 위해 의료계를 향해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법원 판결이 전적으로 정부에 유리하게 내려지지 않은 것에 희망을 걸고 항고를 준비하고 있어 의료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는 지난 16일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배분 처분을 멈춰달라는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그 이유로는 우선 의대 교수와 전공의 및 수험생들은 의대정원 증원과 관련해 제3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면서 각하했다.
다만, 의대생들에 대해서는 동등하게 교육시설에 참가할 기회를 제한받을 수 있음을 거론하면서 신청인 자격이 적격하며, 의대 정원이 과다하게 증원돼 의대 교육이 부실화 될 경우 의대생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최종 판단에서는 의대생들의 요구마저도 기각됐는데, 이는 증원 결정 효력을 정지하면 필수·지역의료 회복 등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기 때문임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환자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은 모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우선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와 국민들은 이번 의료사태로 인해 계속해서 피해를 입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환자들은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조속한 의료 정상화를 바랄 뿐”이라면서 “3달간의 의료 공백 장기화 사태 속에서 어렵게 치료받고 있는 중증·희귀 난치성 질환 환자들은 이번 법원 판결을 계기로 의료 정상화 조치가 빠르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판결로 사실상 확정된 의대 증원이 환자 중심의 의료환경을 조성하는 발판이 될 수 있도록, 현재의 의료인력은 물론 앞으로 배출될 의료인력이 ▲필수의료 ▲중증의료 ▲지역 의료 ▲공공의료에 적절히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도 “지금의 의료 공백 사태는 옳고 그릇됨을 논하는 주제가 아니라 단지 대한민국에서 환자만 죽음의 고통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 핵심 주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의대정원 문제로 지난 3개월간 기나긴 강대강 대치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가 이번 사법부 판단을 기점으로 더 이상의 논쟁과 갈등은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법부 판단을 요청한 의료계는 본인들이 원하는 결론이 아니라고 하여 스스로 부정하고 다시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지 않길 바라며, 즉각 사직한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은 의료 현장으로 복귀한 후 정부와 협상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정부를 향해서는 환자들의 건강권을 방치돼 있음을 강조해 환자 치료권이 가장 핵심과제임을 의료계에 전달하기 바라며, 사직한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에게 의료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과 방법을 준비해 선결과제임을 설득해 줄 것을 촉구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의대정원 확대는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한 ▲응급실 뺑뺑이 사망사고 ▲소아과 오픈런 ▲지방환자들의 원정진료 등 붕괴 상태의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를 살리고, 국민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할 국가적 과제이며, 절대 다수 국민들의 절박한 요구이므로 의대 정원 확대는 공공복리에 부합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더불어 이번 법원의 판결이 조속한 진료 정상화의 전환점이 되고, 올바른 의료개혁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부는 의사들과 의사단체들을 악마화하거나 굴복의 대상으로 압박하지 말고 의료개혁의 동반자로 존중해야 하며, 조속한 진료 정상화와 올바른 의료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진솔한 대화와 협상 국면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으며, 의료개혁에 대한 국민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나갈 사회적 대화체를 구성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환자·시민단체들의 외침과 다르게 의료계는 재판에서 정부의 2000명 증원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는 것을 비롯해 석연치 않은 점을 꼬집으면서 법원 판결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우선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재판부의 결정은 오히려 필수의료에 종사하게 될 의대생과 전공의 및 의대 교수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필수의료 현장을 떠나게 만듦으로써 공공복리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며, “이는 환자와 의료진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심각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번 재판에서 ‘2000’이 선포된 날의 회의록 이외에는 극비 처리 내지 편집본 외에는 제출하지 않았음을 주장하면서 정부가 실제로 제출한 증거는 없다고 비판하면서 의료계는 수요 조사 당시 ▲교육부와 학교 ▲학장과 대학본부 ▲교수협의회에서 일어났던 모든 소통 내용과 공문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의학교육 점검의 평가 및 실사 과정과 보고서 전체 ▲배정위원회 위원의 전문성과 이해관계 상충 여부 및 배정 과정 회의록 ▲정원 배정 후 각 학교 학칙 개정 과정과 결과 ▲교육부로부터 받은 학칙 개정 관련 공문 ▲최소 수업 일수 변경 여부 공개를 촉구했다.
더불어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17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항고장을 제출했으며, 이와 별개로 서울고등법원에 충북의대를 포함한 전국 32개 의대와 의대생 1.3만명의 즉시항고 3개 사건에 대해 ‘신속한 결정 신청서’를 제출했음을 밝혔다.
특히, ‘의대생3개사건’과 관련해 헌법상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해야 하므로 이번에 나온 기각결정과는 다른 인용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있으며, 충북대의 경우에는 배정위에서 충북도청 보건복지국장이 참석함으로써 배정위 구성에 위법무효사유가 발생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있는 바, 증원 처분의 효력 정지 인용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피력했다.
즉, 충북대에 대한 증원처분의 효력이 정지되면, 이번에 서울고등법원의 결정문이 판시한 것처럼 이 사건의 핵심은 ‘2000명 증원처분’이므로, 결국 ‘2000명 증원처분’의 효력 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내비치었다.
이외에도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이번 판결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구회근 재판장이 지난 4월 30일 심문기일 당시 정부 측에 “2000명이 어떻게 나왔는지 설명해야 한다”면서 최초로 2000명을 결정한 회의자료와 과학적 근거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3대보고서는 저자도 부인했으니 근거가 되지 않으므로 직접 용역을 발주하고 나온 보고서 같은 것을 제출할 것을 요구한 바 있음을 밝혔다.
또, 현장실사자료를 비롯해 구체적 배정기준과 각 대학의 인적·물적 여건 검토자료 등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번 판결 결정문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과 지적 전혀 없고, 정부 주장에 동조하는 취지의 기재만 있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