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과 관련된 논의는 반대 의견이 있지만 2025년부터 확대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문제는 늘어난 정원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에도 있다.
최근 정부는 의과대학을 상대로 증원 수요조사를 한 결과, 2025년 기준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 2030년에는 2,738명에서 3,953명까지 생각보다 많은 증원 수요가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참고치로, 실제 증원 규모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하지만 2025년부터 의대의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모든 대학에서 양질의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지, 증원을 통해 과연 필수의료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주제로 서울의대 건강사회개발원(원장 조비룡)이 제5회 SNU MEDICINE FORUM ‘의사인력양성정책과 의학교육’을 11월 29일, 서울의대 행정관 3층 대강당에서 개최했다.
서울의대 건강사회개발원 조비룡 원장은 개회사에서 “최근 의사인력 증원 논의가 뜨겁게 진행되기 전부터 해당 주제로 포럼을 준비했었다”며, “작년부터 알차게 준비한 만큼 의미있는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포럼의 주제발표는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휴먼시스템의학과 홍윤철 교수와 KAMC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인제의대 이종태 교수가 각각 진행했다.
홍윤철 교수는 ‘한국의 의사인력양성정책의 논점과 혁신방안’ 발표에서 “의사 수 증가를 몇 명으로 정해야 하느냐 부분에 몰입하면 논의는 미궁에 빠질 것”이라며, “의료비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본질적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의 외래·입원 이용 그래프를 통해 75세를 기점으로 외래 이용이 감소하고 입원이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것을 보이며,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 고령화로 인해 이 부분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료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의사인력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의료수요량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고, 이에 2021년부터 의사인력을 늘린다고 가정해도 2067년까지 의사인력 수급 부족이 발생한다는 시뮬레이션도 있었다. 다만 어떤 가정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과학적 근거로 정교한 의사 수 산출을 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의사 수를 증가시키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실제로 의사가 많은 서울에서도 과도한 경쟁으로 필수의료의 붕괴가 나타나고 있다.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가 같이 이뤄져야 한다는 정부의 방향성에 동의하며, 의료격차를 해소하고 민간과 공공의료가 같이 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기존의 전공의 과정에 대한 전공의협의회의 인식을 바탕으로 한 전공의 과정에서 지역의료 인재 양성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수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네트워크 교육수련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이는 통합 3년 교육수련 전공을 신설해 중앙수련센터에서 책임 관리하며, 다양한 교육수련 트랙을 자율선택하고 2인 이상의 지도전문의가 코칭 및 멘토링해 지역완결형 의료 리더를 양성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교육수련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발표에서 인제의대 이종태 교수도 ‘의학교육의 변화 : 다가올 도전과 기회’라는 제목으로 의학교육의 개선 방향에 대해 제시했다.
이종태 교수는 “그동안 의과대학의 사회적 책무성에 대한 진정성이 부족했다. 기본의학교육과 졸업 후 교육은 각각 독립된 교육과정이 아니라 연속체로서 준비돼야 하며, 학생의 요구에 맞춘 개별화 교육,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는 의사 양성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회적 책무성’이란 보건의료 시스템의 변화 주도자로서 나아가는 것을 포함한다”며, “의사가 의료 시스템의 변화 주도자가 될 수 있도록 의료시스템과학 교육이 이뤄지고, 지역사회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25년부터 적용되는 통합 6년제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홍콩의대의 ‘enrichment year’를 참고하거나 미국과 일본의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 등의 도입 또한 가능하다고 말했다.
패널토의에서는 ‘의사인력양성정책과 의학교육’에서의 현실적인 논의들이 추가됐다. 한국개발연구원 권정현 연구위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문석균 부원장, 서울의대 의학교육실 박완범 실장,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박재일 회장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권정현 연구위원은 “수련과정에서의 다양한 경험 만큼 의사들이 졸업 이후에 지역과 필수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경제적 유인이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 단순히 돈을 많이 받는 것보다도 자신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고용 전망 등 비금전적인 요인에서의 보상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석균 부원장은 “지역완결적 의료체계가 중요하지만, 국민이 병원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에서 서울의 큰 병원 선호는 쉽게 바뀌지 않을 수 있다. 서울 내에서도 큰 병원을 선호하는 인식이 있다”며 지적하기도 했다.
문 부원장은 “저는 통합 6년제를 찬성하는 입장이다. 의사를 치료하는 기계로 만들지 말고, 문학·철학 등 깊이 있는 고민을 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키울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대 박완범 실장은 “의학교육을 하는 사람이지만, 의학교육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지역의료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국민의 인식 변화가 포함돼야 하고, 교육보다 먼저 해결해야 하는 사회 시스템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는 경험을 갖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또 의대 정원을 확대할 경우 단순한 강의실과 교수진의 확대가 아니라 교육 방법과 평가 시스템이 전혀 달라지게 되는데 그런 부분에서 대학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박재일 회장은 “가장 최근에 대학교육을 받은 입장으로서 그동안 의과대학에서 공공의료 측면의 교육이 부족했다는 것에 동감한다. 통합 6년제를 통해 이것이 보완되고, 수련과 근로를 병행하는 현행 전공의 수련제도에서도 수련 측면이 더욱 강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