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백신이 오는 날 약사들이 점심도 안 먹으려고 했다. 분명히 약은 늦게 올 것이고 그때까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들을 끌고 가서 점심을 먹였던 기억이 난다. 이날 저녁에 병원장님께서 백신이 오기 전에 먹으라고 도시락을 보내주셨는데, 도저히 못 먹겠다고 했다. 밤늦게 백신이 입고되고 뒷정리까지 다 하고 나니 9시가 넘어서 차가워진 도시락을 겨우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양산부산대병원 황은정 약제부장은 10일 한국병원약사회가 주관한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통해 당시 영남권역 예방접종센터에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이 처음으로 입고된 날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황 부장의 일과는 백신으로 시작해서 백신으로 끝난다.
황 부장은 “아침에 출근하면 백신들이 밤중에 잘 있었는지 확인하고, 퇴근하면서도 내일 아침까지 무사히 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며 “온도 관리, 비품 관리, 주사기, 희석액 등 남는 재고가 없게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황 부장은 간호사에게 무균 생물안전작업대(BSC, Bio Safety Cabinet)에서 희석액을 섞어 백신을 조제하는 법을 교육하는 것이나, 콜드체인 유지, 백신 이상반응에 대비해 약을 얼마나 어떤 방법으로 구비하고, 점검하고, 비치할 것인지 등을 간호부와 응급의학과, 알레르기내과 전문가와 의논해서 결정하는 것도 약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백신뿐만 아니라 접종에 필요한 희석액이나 주자기 등의 관리도 거의 마약류 관리에 준하는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황 부장은 “질병관리청에서는 백신뿐만 아니라 접종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이 마약류 관리에 준하는 재고관리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며 “잔량, 사고, 폐기 등을 다 보고해야 하는데, 약사들은 마약류 관리를 하면서 생활화돼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런 것에 있어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부터 권역예방접종센터에서 백신 초도물량 소분 작업이 시작됐다. 화이자 백신은 제조사에서 제조된 순간에서부터 6개월간 쓸 수 있지만, 해동해서 냉장하는 순간부터 온전하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120시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제한시간 내의 신속한 접종이 중요하다.
이에 대해 황 부장은 “접종 시간을 준수하라는 의미에서 해동시간과 접종 마감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라벨을 앞뒤로 붙여 백신을 인계했다”며 “접종기관에서 잘 접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한편, 9일부터 방역당국은 4개의 권역예방접종센터(중앙-국립중앙의료원, 중부권역-순천향대 천안병원, 호남권역-조선대병원, 영남권역-양산부산대병)의 초도물량 소분을 위해 센터별 약사 1~2명이 근무하도록 했다. 영남권역 센터는 4명의 약사가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50개 이상의 설치가 예정된 지역예방접종센터는 아직 약사 참여가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국병원약사회 손현아 사무국장은 “지난 2월 22일 질병관리청과 대한약사회, 병원약사회가 회의를 한 번 했고, 백신 관리에 있어서 병원약사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에 최소한 1인 이상의 인원을 배치할 것을 정부 측에 요구, 3월 4일 관련 공문을 질병청에 보내 답을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지역예방접종센터 지정 목록을 달라고도 했는데, 지자체별로 아직 다 체크를 못 했는지 목록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 준비 중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 국장은 “지역예방접종센터 인력 구성에 약사가 들어간다면 일련의 약품 관리 과정을 책임지고, 간호사들이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우며 교육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황 부장도 이에 동조했다. 그는 “체육관 등에서 접종이 이뤄지면 안전상의 문제가 더 많이 발생할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을 민감하게 인지하고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약사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백신 접종을 해보니까 이 약(화이자 백신)이 너무 불안정하고 사소한 행동으로 약의 효과가 달라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안전하고 최대한의 효과를 가진 백신을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약사의 필요성이 중요한 상황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한국병원약사회 김재송 홍보이사는 중앙 및 권역과 지역예방접종센터 간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김 이사는 “권역이나 중앙에서 접종하시는 분들은 약사가 제대로 관리하는 환경에서 백신을 맞을 수 있겠지만, 병원약사가 없는 지역 센터에서 접종받는 분들은 백신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맞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형평성이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안전한 상태에서 백신을 맞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맞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공평한 환경에서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