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토교통부가 입법예고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과 관련해, 대한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의계가 연이어 강경한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강원·경기·인천권역에서 열린 궐기대회에서는 ‘한의사 죽이기’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했고, 한의사 면허 반납과 한의대 폐지 운동까지 예고했으며, 삭발식을 감행하는 극단적 항의가 반복됐다. 이러한 일련의 행태는 환자의 건강권을 진정성 있게 대변하기보다는 한의사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이기적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개정안의 내용은 행정적 부담과 시간적·정신적 고통을 환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써, 이는 국민이 가입한 자동차보험의 본래 목적을 훼손하고 공공보험인 건강보험 재정에까지 부담을 떠넘길 수 있는 제도적 결함을 갖고 있으므로 충분히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명분 삼아 면허 반납을 언급하고, 삭발과 단체행동으로 국민 여론을 자극하는 방식은 전문가 단체로서의 품격과 책임성을 저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한의계가 이번 개정안을 계기로 내세우는 ‘한의사 죽이기’ 주장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자동차보험 진료와 관련해 수년간 꾸준히 제기돼 온 한방 의료기관의 과잉진료와 입원 유도, 비급여 시술 남용 등 문제는 국민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의 신뢰를 훼손하고 있는 실정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공개한 2024년 자동차보험 진료비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자동차보험 총진료비는 2조 7276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6.48% 증가했는데, 그 중 한방 분야의 총진료비는 1조 6151억원으로 전년보다 8.48% 증가했다.
이는 의과 진료비에 비해 약 5100억원이 더 많은 수치이며, 전체 자동차보험 진료비의 약 60%를 차지한다. 아울러, 종별 환자 수도 한의원이 약 86만명으로 가장 많으며, 한방병원이 약 79만명으로 다음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보험 진료에서 한방 환자가 의과 환자를 역전하고 가파르게 상승하는 현상은 단순한 수요 증가로 해석하기 어려우며, 의료기관의 구조적 진료 왜곡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것이다. 실제 일부 한방 의료기관에서는 환자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치료보다 반복적인 첩약, 불필요한 입원을 유도하는 등 보험금 청구를 극대화하는 방식의 진료를 해 사회적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이는 환자의 회복을 우선해야 할 의료기관이 오히려 환자를 ‘수익 수단’으로 전락시킨 행태로, 의료윤리에 반하는 중대한 문제다. 이러한 불건전한 진료 관행은 단순한 윤리적 문제를 넘어, 보험재정에 부담을 주고 환자에게 불필요한 의료를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 전체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자정의 노력보다 정치적 공격과 피해자 프레임을 자처하는 한의계의 대응 방식은, 진정 환자 권익을 우선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한의계 내에서 자율적으로 정화하고 개혁해 나가야 할 문제를 외부 책임으로 돌리며 단체행동에만 집중하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다.
한의계가 진정 환자 중심의 의료를 지향한다면, 궐기대회와 삭발, 면허 반납과 같은 선동적 수단보다는, 의료기관 내 비정상적 진료 관행에 대한 구조적 정비와 자정 노력을 선행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환자의 권리 보호와 보건의료정책 개선에 있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단연’)는 그동안 의료계의 단체행동에 대해서 일관되게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온 바, 환자중심의 보건의료 환경 조성과 국민의 건강보호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한의계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우리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환단연이 이번 한의계 대응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공개적으로 질의할 것이며, 그에 대한 입장 발표와 회신을 기다릴 것이다.
지금 한의계가 필요한 것은 자극적 집단행동이 아닌, 한의계 스스로의 성찰과 개혁이다.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정부의 정책이 환자의 권익과 의료인의 자율성이 충분히 고려되도록 지속적인 논의를 요구하는 한편, 이번 사안에 대한 한의계의 대응이 의료인의 책임성과 윤리의식, 자정 능력을 바탕으로 한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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