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위해성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파기환송심 주심 판사가 결정된 것에 부쳐, 판결의 부당함을 기자회견을 통해 다시 한 번 알렸다.
지난 12월 22일, 대법원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행위에 대해 위해성이 없다고 판결하며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파기환송했고 아직 파기환송심은 열리지 않았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 단체들은 그동안 이번 판결에 대해 1인 시위 등을 통해 규탄해왔다. 대한의사협회는 2월 22일 대한의사협회 4층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 결과가 국민 건강에 위해를 끼칠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대한산부인과학회 이근영 회장, 대한영상의학회 이정민 회장,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박형욱 교수 겸 변호사가 자리해 학계 차원에서의 판결 결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먼저 대한산부인과학회 이근영 회장은 “한의사 A씨가 2년간 총 68회에 걸쳐 초음파 검사를 시행했지만, 자궁내막암 확진을 위한 추가 검사 필요 여부를 판단하지 못하고 자궁내막암 진단을 놓친 것은 환자에게 명백하게 위해를 가한 행위”라고 말했다.
특히 해당 환자의 경우 추후 자궁내막암 2기로 진단돼 당시 초음파를 통해 진단이 가능한 환자였으며, 이상소견이 보일 때 자궁내막조직검사로 확진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2년이 넘는 추적관찰 기간동안 한번도 이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초음파 검사를 제대로 수행하고 판독하는 능력이 없으며, 자궁내막암의 정상적인 진단과정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법원 재판에 앞서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 A씨가 운영하는 한의원이 제시한 사례에 대해 초음파 사진과 한의사가 내린 추정 진단이 일치하지 않고, 촬영 각도도 매번 달라지는 등 초음파에 대한 해석이 잘못 내려졌을 개연성이 있다는 검토 결과를 대한의사협회를 통해 제출했지만 판결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한영상의학회 이정민 회장은 “대법원이 초음파 진단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하더라도 공중보건에 위해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매우 그릇된 판단”이라며 “의학적 용도의 진단 장비 사용의 위험성은 장비 자체의 위해도가 아닌 ‘정확한 진단’의 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민 회장은 “초음파 검사는 단순히 탐촉자를 환자의 신체에 접촉해 육안상 보이는 구조물의 이상 소견 추정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초음파 검사는 타 의료영상과 같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사용은 쉬우나 시행과 결과 해석은 영상의학의 영역에서도 최고 난이도의 검사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의사들이 한의과대학에서 받는 진단장비 교육의 정확성과 깊이가 보장되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한의학 이론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현행 의료법상 현대의학과 한의학이 이원화돼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의료행위는 해당 의학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민 회장은 “현대의학의 임상현장에서는 새로운 의료기술이 충분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재현 가능한 과학적 근거 하에서 입증돼야 비로소 제도권에 적용될 수 있다. 이 기준에 대해서는 현대의학과 한의학에 같은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이번 판결에서는 기존 판례와 다르게 의료기기의 개발, 제작, 사용이 한의학적 원리에 기초했는지 여부에 따라 사용이 결정됐다는 점을 최소화했다는 점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판결대로라면 한의학적인 모든 검사, 시술을 현대의학 입장에서도 ‘현대의학과 무관한 게 명백한지’ 밝히지 못한다면 사실 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이와 같은 결정 하에서 의료이원화가 어떻게 지속가능한지, 의료법을 넘어서는 결정이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단국대 의과대학 박형욱 교수 겸 변호사는 환자단체연합회의 보도자료를 인용해 판결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대법원 판결이 허구적 상상에 기초해 있다”고 말했다.
박형욱 교수는 “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1월 19일 대법원이 초음파 진단기기를 혈압계나 체온계와 비슷한 진단기기로 판단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한의대 교육과정 만으로도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별 문제가 없다는 판결문 취지를 비판했다. 이는 국민, 의료소비자, 환자의 눈높이에서 제기할 수 있는 상식적인 의문이다”고 말했다.
박형욱 교수는 “대법원 판결은 자궁내막암이라는 사건 자체의 오진으로 발생한 위해에 대해 완전히 눈을 감고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한의사가 초음파를 사용해도 이를 부정적으로 볼만한 유의미한 통계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논거는 무면허자가 유면허자보다 운전사고를 더 일으킨다는 유의미한 통계가 없다며, 무면허자의 운전을 정당화하는 것과 같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의사도 오진을 하지만, 현대의학과 전혀 다른 전통의학을 배운 한의사의 오진과 같을 수는 없다. 한의사에게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허용한다면 사전에 근거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의사는 신의료기술을 사용하기 전 안전성, 유효성이 확인된 이후에 사용해야 한다. 의사들에게 늘 요구하던 원칙을 어느날 갑자기 외면해버린 대법원의 판결이 놀랍다”고 말했다.
박형욱 교수는 “대법원이 사법적극주의의 이념에 따라 사회를 선도하는 판결을 내릴 수는 있겠지만, 그런 판결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대법원은 상상력에 의존해 판결하지 말고, 판결의 전제가 된 한의사가 한의학적 진단방법으로 자궁내막증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다는 사실관계를 검증해주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판결의 부작용은 오로지 국민이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최청희 법제이사 겸 보험이사는 “대법원 다수의견은 초음파 진단기기를 ‘보조적으로’ 사용했다고 판단했지만, 초음파 영상과 한의학적 변증 사이에 어떠한 논리적 상관관계가 있고, 검증됐는지에 대한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보조적으로 사용했는지에 따라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의 범위가 달라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2020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인용하지 않은, 논거를 취사선택한 판결이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며, 이원적 의료체계의 틀을 깨는 ‘사법부에 의한 입법권 침해적 판결’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발표 이후 대한의사협회는 사건 당시인 2012년 한의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시행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 서울 소재 3곳 한의원에서 초음파를 사용해 진단을 내리는 내용의 영상이었으며, 대법원 판결문에 언급된 ‘한의학적 진단 방법’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에 대한 깊은 유감을 재차 표하며, 향후 직접적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공판 절차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참고인의 위치에서 여러 의견을 검토하고 법률 대리인 선임을 통해 재판부에 입장을 밝히겠다며, 국회와 정부가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과 함께 무면허의료행위에 대한 강력한 관리·감독을 통해 국민의 안전을 지킬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