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권고되지 않는 검사가 다수 진행되는 우리나라 건강검진의 과다한 측면을 살펴보고, 개선 방향을 모색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원장 왕규창)과 국립암센터(원장 서홍관)은 9월 7일, 국립암센터 8층 국제회의장에서 제23회 보건의료포럼 ‘우리나라 건강검진, 이대로 좋은가?’를 개최했다.
우리나라는 국가 검진을 포함해 건강검진 수검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거의 모든 종합병원에 건강검진센터를 보유하고 있어 이례적이다. 하지만 의학적 근거가 낮은 검진도 많이 수행되고 있어 점검이 필요하다.
의학한림원 왕규창 원장은 “질병의 조기발견을 위한 노력은 의미있지만 100% 발견을 위해 너무 많은 검사를 시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후속 조치로 인한 위해가 발생할 수도 있고, 사회의료자원 또한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더욱 슬기로운 건강 검진이 진행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 서홍관 원장도 “현대 의료에 들어오면서 생겨난 건강 검진은 암 생존율 향상에 큰 도움이 됐지만, 불필요한 의료비용을 낭비하고 불필요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야기하는 부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의료기관의 상업적 검진을 위해 확대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포럼은 1,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국가 검진과 민간 검진의 현황과 발전방향을 살펴봤고, 2부에서는 작년 한림원에서 개발한 ‘슬기로운 건강 검진을 위한 권고문’을 바탕으로 암 검진과 일반 건강검진에서 권고하지 않는 내용에 대해 발표했다. 마지막에는 지정토론이 진행됐다.
1부에서 국립암센터 서민아 암검진사업부 책임연구원은 ‘국가암검진의 현황과 발전방향’을 발표했다. 서민아 부장은 검토중인 각 암 검진의 개선 방안을 소개하고, “국가암검진이 그동안은 보편적 검진으로 제공돼 왔지만, 필요한 분들에게 집중적 검진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 강은교 암검진사업부 선임연구원은 건강검진을 받은 경험이 있는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7,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민간검진의 불필요한 검진에 대한 인식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PET-CT, 전신 MRI/CT, 종양 표지자 검진, 암 유전자검사 검진, 뇌 MRI/MRA 검진은 효과가 떨어져 검진에서 권고하지 않는 검사들인데, 우리나라 10명 중 3명은 패키지에 포함돼 있어서, 또 10명 중 2명은 의료진의 권고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검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은교 선임연구원은 ”일부 수검자들이 더 자주, 더 많은 검진을 받으면 좋을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과도한 검진은 과다진단과 과다치료로 인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건강검진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부작용에 대한 인식 부족은 불필요한 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2부에서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이재호 교수는 ‘대한민국 건강검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제목으로 한림원에서 개발한 ‘슬기로운 건강검진을 위한 권고문’을 발표했다.
이재호 교수는 ”건강검진의 문제를 바로 보려면 근간이 되는 보건의료체계를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민간병원 중심으로 공공성이 매우 떨어진다. 주치의를 두지 않고 건강관리, 의료이용을 하는 것이 그대로 건강검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병원의 경우 건강검진 센터를 두고 있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병원이 검진 센터를 두고 있는 기형적인 형태다. 공공의료 취약/일차의료 부재라는 보건의료 취약성이 건강검진 영역에서 시장의 영향력과 함께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호 교수는 주치의와의 만남을 생략한 채 묻지마 검진을 받고 있는 현실을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선장 없는 배’에 비유하기도 했다. 국내 검진의 문제점 8가지를 들며, 그중 선진국에서 권고하지 않는 생애전환기 치매 선별검사 시행과 갑상선 암 검진으로 인한 과잉 진단과 치료 등을 지적했다.
또 국립암센터의 암예방검진센터나 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도 권고 등급이 낮은 췌장암, 난소암, 갑상선암, 경동맥 협착 등의 ‘Grade D’ 항목을 검진 항목에 포함해 진행해왔다며, 이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이재호 교수 등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작년 7차례 회의를 통해 ‘슬기로운 건강검진을 위한 권고문’을 개발했으며, 암 관련 건강검진 권고문 5항목, 일반질환 관련 건강검진 권고문 5항목을 선정했다.
이재호 교수는 발표를 마무리하며 ▲검진 전 주치의 선정, ▲근거에 바탕을 둔 건강검진 시행, ▲검진 항목 근거 등급 표시 의무화, ▲검진 결과 설명은 주치의가 시행, ▲공인인증 건강정보망을 통한 건강검진 결과 공유 를 제언했다.
이어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최윤정 교수와 명승권 대학원장이 이후의 발표에서 각각 ‘건강검진 권고문’의 암 관련, 일반질환 관련 항목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지정토론에서는 정부 부처, 소비자단체 등에서 건강검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다뤘다. 발표 내용처럼 검진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부분이 있음에도,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건강검진이 발생하고 차지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김한숙 질병정책과장은 ”워낙에 건강검진 이해관계가 많다. 개원가에서나 병원에서도 정부 통제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건강검진밖에 없다. 과학적 측면의 이야기도 좋지만, 정책적 측면 등 다양한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논의 시 건강검진의 목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발표에서 다룬 권고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내용은 정책으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박지민 건강증진과 사무관은 ”건강검진에 대해 개원가 뿐만 아니라 학회별로도 입장이 많이 다르다. 조기에 특정 질환을 발견하기 위해 검진에 한시적으로 도입해달라는 제안도 많이 받는다. 검진이 너무 많다는 의견과 검진이 더 필요하다는 내용이 반반이다. 정책적으로 제언하고 권고하는 부분들을 많이 고민하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 권상희 만성질환예방과 과장은 ”근거를 검토하고, 평가 및 시행하는 기준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재호 교수 발표 내용에 공감이 많이 됐다. 건강검진 검사 이후에 사후관리가 안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검진을 시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결과를 이해하고 진료나 건강증진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적 근거 뿐만 아니라 정책적 의미,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건강검진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공공성의 측면에서 평가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검진의학회 김원중 회장은 ”15년 전 공단 검진이 시작되면서 학회를 창립하고, 보건복지부, 공단, 암센터와 함께 검진 진행의 한 축을 맡고 있다.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한림원 권고문의 내용 중 크게 해당없는 내용도 있었다. 고령 환자, 만성질환 환자가 증가하는 시점에서는 검진 주기를 적절하게 시행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국가암검진 대장내시경 도입과 관련해 ‘질관리 및 평가’가 복잡한 부분이 있다“며, ”의원에서는 의사와 간호사가 행정 업무를 다 감당하기 어려워 행정직원을 채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행정 업무의 간소화를 신경써달라“고 말했다.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박수경 교수는 ”미국의 경우 전문가 집단이 자발적으로 검진을 운영하고, 국가기관은 배포, 홍보, 관리 지원 등의 역할을 한다. 이런 과정에서 비용효과편익을 따져 비싼 검사들이 제외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권고문에서 대부분이 하지 말아야 될 것에 대한 발표였는데, 자정 퇴출이 안 되는 경우 의료기관 질 평가 항목을 시행할 수 있을 것 같고, 특히 고령의 경우 암 검진을 권장하지 않는 권고를 시행하기 위해 암 검진 최고 연령 제한을 만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소비자연맹 강정화 회장은 ”기관에서 낮은 효과의 서비스를 높은 가격에 전달하고 있는데, 소비자가 선택에 앞서 확인할 정보가 부족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건강에 대한 관심이 있고 비용 지불 의사가 있으니 건강 검진이 증가하고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정화 회장은 ”일례로 PET-CT를 이용하지 말라는 가정의학회 권고를 찾아보려고 홈페이지를 들어갔는데 그런 내용이 없었다. 일반 의료소비자들에게 정보제공이 잘 안되고 있다. 연구 결과가 소비자들에게 알려져 충분히 고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에서는 건강검진을 상담할 주치의 제도와 관련해 현재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는 이를 논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여러 번 제기됐다. 상담료도 그렇고, 만성질환을 관리해주는 의사는 있지만 주치의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의학한림원 왕규창 원장은 포럼을 마무리하며 ”건강 검진 개선 관련해 관련 당사자들과 긴밀한 대화가 필요한 부분이 많이 있다. 한림원에서도 이런 부분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국민들이 수준과 주기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공급자들과도 대화를 통해 개선하겠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