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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희귀질환 극복 돕는 유전상담서비스, 활성화 첫걸음은 ‘의료행위 인정’

국내 유전상담사 배출되고 있지만 ‘행위코드’ 없어, 대학병원 진료 여건 상 급여 없인 불가능
민주당 신현영 의원·희귀질환재단, ‘유전상담서비스 활성화 방안 마련’ 토론회 개최

희귀질환지원센터 지원사업에 ‘유전상담’을 포함하는 희귀질환관리법이 지난 5월 25일 국회 본회의(국민의힘 이명수 의원 발의)를 통과한 가운데 희귀질환자들의 질환 극복을 돕기 위한 ‘유전상담’의 제도화 필요성과 그 방안이 제기됐다.


◆유전상담서비스, 의료행위 인정되지 않으면 시행되기 어려워

특히 유전상담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유전상담을 의료행위로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과 한국희귀질환재단(이사장 김현주)은 31일 오전 제7간담회의실에서 ‘국내 유전상담서비스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유전상담서비스의 제도화를 촉구했다. 

한국희귀질환재단 김현주 이사장은 “유전상담은 최소한 30분 이상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수가 없이는 우리나라에서 활성화될 수 없다”며 “우리나라도 유전상담사를 배출하고 있지만 행위코드가 없어 활성화가 어렵다보니 어렵게 배출한 상담사들이 재인증을 받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가족 내 재발되거나 대물림될 수 있는 유전성질환 극복을 위해서는 환자와 고위험군 가족이 질환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충분한 이해와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지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국내 의료 현장에서 유전상담이 의료서비스로 정착될 수 있도록 의료행위 코드를 신설해달라”고 촉구했다. 

유전상담이란 질환의 유전적 요인이 환자와 그 가족에게 미치는 의학적, 심리적 영향에 대한 이해를 돕는 과정이다. 희귀질환은 대부분 유전성 질환으로 치료제가 없을 뿐 아니라 치명적인 장애를 초래한다. 대물림으로 인해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되고 있다. 때문에 부모를 포함한 가족 중에서 그 비슷한 질환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유전상담에서는 가족력과 환자의 병력을 통해 특정 유전질환의 위험을 평가하고, 유전질환에 대한 교육과 상담을 제공함으로써 환자가 자신에게 알맞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게 된다. 

그러나 유전상담서비스는 전문성과 장시간이 소요되는 유전상담의 특성상 임상유전학 전문의 혼자 다 할 수 없다. 특히 진료시간이 3~5분 정도에 불과한 국내 대학병원의 여건 상 의사가 30분 이상 소요되는 유전상담을 급여 없이 제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의사와 유전상담사가 하나의 팀을 구성, 진단은 유전자 검사결과를 토대로 의사가 내리고 상담과 소통은 유전상담사가 하도록 한다면 환자와 가족들이 의학적, 유전학적, 심리적, 사회적 측면에서 질환을 충분히 이해하고, 힘들지만 희귀질환에 적응해 살아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이범희 교수는 ‘유전상담 활성화를 위한 운영체계 구축 방안’이라는 발제를 통해 “희귀질환은 80%가 유전질환으로 환자뿐 아니라 가족을 포함한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 연구를 진행 중인 이범희 교수는 “희귀질환자들에게는 ‘나와 같은 환자는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임신은 해도 되는가’, ‘내가 받을 수 있는 국가 지원은 무엇인가’ 등의 정보가 필요하며 이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유전상담서비스”라고 했다.

이 교수는 “연구결과 환자 가족이 요구하는 것은 30분 이상의 설명인데 (현실적으로 의사가 직접 하기는) 불가능하다”며 “때문에 팀으로 시간을 가지고 정서적인 안정까지 제공하는 유전상담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유전상담을 위해서는) 내원 전 준비, 상담, 진단검사 후 상담 등 세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이를 표준화해 프로토콜을 마련하기 위한 지원사업을 현재 진행 중”이라며 “전국 희귀질환 거점병원을 통해 유전상담 서비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하고 서비스 향상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일본은 유전상담 교육과정과 의료서비스 활성화… 한국은 수도권 교육기관 4곳 뿐

국내 유전상담 서비스를 확대하려면 교육 과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주의대 의학유전학과 정선용 교수는 이날 일본 유전상담 교육과정과 의료서비스 현황을 소개하며 한국도 유전상담 서비스 확대를 위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선용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유전상담외래’, ‘유전외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임상유전전문의와 인정유전카운슬러(유전상담사), 간호사가 팀을 이뤄 유전질환 상담·진단을 진행하고 환자를 전문적으로 관리한다. 일본 전국 127개 의료기관이 유전상담을 하고 있다.

유전상담이 의료서비스로 인정받기 때문에 비급여로 진료비 청구도 가능하다. 유전질환 교육과 진료에 공들이고 있는 교토대학병원은 임상유전전문의 등 의사 10명과 인정유전카운슬러 5명이 유전외래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초진은 1시간에 9,900엔(약 9만3,400원)에서 시작해 30분마다 4,950엔(약 4만6,700원)이 추가된다. 재진은 15분당 2,530엔(2만3,800원)이다.

도쿄대학병원이나 오사카대학병원, 규슈대학병원 등 전국 주요 대학병원이 비슷한 규모로 유전외래 관련 진료팀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임상유전전문의와 인정유전카운슬러도 전국적으로 양성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 2002년 임상유전전문의제도위원회에서 임상유전전문의 인정제도를 시작해 올해 3월 기준 총 1,727명이 임상유전전문의로 인증받아 활동하고 있다.

비의사인 유전카운슬러(유전상담사) 양성도 한국보다 활성화돼 있다. 지난 2005년 인정유전카운슬러제도를 시작해 올해 5월 기준 총 356명이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활동하고 있다. 처음 2개 대학에서 시작한 교육과정도 전국 25개 대학 대학원에 설치됐다.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시기인 지난 2006년 아주대가 대학원에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설치하고 유전상담사 양성을 시작했지만 현재 대한의학유전학회 인증 유전상담사는 62명에 그친다. 유전상담 교육기관도 아주대, 울산대, 건양대, 이화여대 등 4개 대학 대학원이고 그나마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에 정 교수는 “지방의 대학원도 유전상담 교육과정을 설치할 수 있도록 수도권에 집중된 유전상담 교육 과정을 전국으로 확대해야 하며, 의료기관이 비 급여로라도 유전상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병원 내분비외과 간호사이면서 유전상담사인 강혜인 씨는 “희귀질환 및 유전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이 적절한 유전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유전상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접근성 및 가용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며 “전문적인 유전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인증된 유전상담사를 교육하고 채용해 전문적인 유전상담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순전남대병원 전남권역희귀질환거점센터 이화윤 유전상담사는 “유전상담 과정은 1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검사 전 상담과 검사 후 결과 상담, 가족을 대상으로 한 추가 검사와 교육, 분과 간 협력 진료가 필요한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유전상담을 전담하는 유전상담사가 희귀질환센터에 근무하게 된다면 환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함께 근무하는 동료 의료인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화윤 유전상담사는 간호사로 근무하다 유전상담사 자격을 취득한 후 전남권역희귀질환거점센터에서 유전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정부도 필요성 공감… 올해부터 ‘유전상담체계 운영지원사업’ 시작

정부도 희귀질환자들을 위해 유전상담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질병관리청 이지원 희귀질환관리과장은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유전상담 필요성에 공감하고 희귀질환자와 가족에게 유전상담이 여전히 미충족 수요여서 관련 지원 요구가 크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질병청은 적극적인 국가 지원을 위해 올해부터 유전상담체계 운영지원사업을 시작했다”며 “희귀질환자 거주지 중심으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사업을 확대, 고도화해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 정성훈 보험급여과장은 “토론회를 통해 유전상담 제도화에 대한 많은 요구를 듣고 이해했다”며 “유전상담 서비스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제도화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제도 특성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이 발의해 국회를 통과한 희귀질환관리법을 통해 유전상담 지원 관련 법적 근거가 마련돼 서비스 제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제도권 진입을 위해 고민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한편, 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한 신현영 의원은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은 질환의 정확한 증상, 경과 과정, 유전 경로 등에 대한 의학적, 유전학적 사실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안정과 재발 위험 방지를 위한 명확하고 현실적인 안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현영 의원은 "유전상담은 환자와 가족에게 의학적, 심리적 이해를 돕는 소통의 과정"이라며 "국제 표준에 맞춰 희귀질환 유전상담서비스가 활성화되고,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유전상담서비스의 제도적 안착을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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