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질환,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상황을 고려해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졌는지, 정책 반영이 됐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6일 제1회 환자의 날 제정을 기념해 관련 유공자 표창과 함께 환자 문제에 대해 당사자와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행사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차단을 위해 최소 인원만 참석한 채 실시간 온라인 스트리밍 방식의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신경내분비종양 환자 A씨, 원발성 폐동맥고혈압 환자 B씨, 중증건선 환자 C씨는 각각 자신의 병에 대한 이야기와 의료기관과 정부에 바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먼저, A씨는 “2016년부터 4년 간 신경내분비종양 투병 중으로 지금까지 사용한 약값만 2억 9000만원”이라며 “이 병은 완치가 안 되는 병으로 많은 돈을 투자해 병을 치료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루타테라 국내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했다.
그는 “머지않아 루타테라 국내 도입이 되고 건강보험이 적용되겠지만 그중에서 제외되는 일부 신경내분비종양 환자들은 다시 해외로 나가 원정치료를 해야 하는 실정”이라며 “모든 환자들이 소외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노바티스와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루타테라는 종양 부위를 표적해 방사선량을 증가시키는 방사성 의약품으로, 지금은 노바티스에 인수된 프랑스 제약사인 어드밴스드 액셀러레이터 어플리케이션스가 개발했다. 현재 루타테라 1회 주사 가격은 2천 600만원으로 1사이클 치료에 해당하는 4회 주사를 맞으려면 1억 400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타테라는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고, 국내에서는 지난해 11월 식약처장이 긴급도입의약품으로 지정해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구입이 가능해졌다. 현재는 수입품목 허가 심사가 진행 중이다.
원발성 폐동맥고혈압을 앓는 B씨는 “국내 폐동맥고혈압 환자는 생존률 56%에 불과하지만, 일본의 폐동맥고혈압 환자 3년 생존률은 96%에 이른다”며 “한 달 약값만 180만원인데다 치료가 까다롭고 약값에 대한 환자의 부담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30년 넘게 중증건선을 앓고 있는 C씨는 “중증건선 환자는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의 시선으로 전반적인 삶의 질이 현저히 저하되고, 정신과적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갖고 있다”며 “주로 사회활동이 활발한 10~30대에서 발병률이 높다는 점에서 쉽게 간과할 수 없으며, 병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는 건선질환 자체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소치료, 약물치료 등 여러 가지 치료방법이 있지만 치료비가 만만치 않고 그 과정도 힘들다”며 “끝으로 건선은 옮지도 않고 유전된다는 법도 없다. 건선질환을 앓는 젊은이들을 배려하는 시민 여러분의 자세를 보여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세 명의 이야기를 들은 전문가들은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결정 과정에 이들을 포함시켜 함께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환자들의 목소리와 상황이 잘 고려된 상태에서 정책결정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는가 생각해봐야하고, 건강보험 적용과 급여결정의 과정에 환자들이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러한 점에서 참여와 소통이 중요하고, 앞선 상황과 같이 예외적인 경우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별도의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약값 때문에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별도의 기금 같은 것을 마련한 제도적 장치가 선진국에 있으니 이를 벤치마킹해 우리나라에도 도입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이상일 교수는 “이전부터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해오고 있고, 새 정부 들어서도 꾸준히 진행되어 왔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이 남아있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보장성 강화 정책 등에 대해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환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정책상의 문제점은 없는지 찾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중증질환의 경우 환자가 치료를 받는 도중에 경제활동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며 “상병수당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아직 도입되지 않았고, 지난 7월 발표된 한국판 뉴딜 정책 계획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여서 이와 관련된 논의들이 활발히 이루어져서 상병수당이 앞당겨 도입됐으면 하는 바람이고, 이를 위해 환자단체연합회에서도 많은 목소리 내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응급이송 상황에서 병원이 수용을 거부해 제때 응급처치를 못하고 사망한 환아의 사연도 영상으로 소개됐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응급환자 진료거부나 환자를 받아놓고 나중에 치료나 수술을 못하겠다며 전원하는 일이 흔히 벌어진다”며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이런 일이 잘 벌어지지 않는다.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거부를 하면 강한 벌칙 조항이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병원이 응급환자를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2가지 이유가 있다”며 “진료나 수술할 의사가 없기보다는 중증환자, 응급환자를 볼 당직의사를 배치하지 않는 병원의 문제다. 원래 야간당직을 서면 다음날 외래를 못 보게 돼있지만, 당직실 의사 리스트에 올려놓고 다음날에도 외래를 보게 한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이유에 대해선 “다른 환자를 이미 CPR하고 있으면 다른 환자를 못 받는 것”이라며 “전원에 대해 엄격하게 규제하는 장치가 필요하고, 야간당직 의사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병원이 제도를 충실히 지키고 운영하도록 하는 법적장치 마련과 응급의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그는 “건강보험 보상체계를 개선하면 야간당직 의사 처우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부와 병원이 소극적인 상황이어서 제도화되고 있지 못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 교수는 “전문가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게 아니라 환자의 상황을 잘 알고 환자의 절박함을 이해한 상태에서 환자나 시민단체가 대거 참여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며 “단순히 의학적인 결정이나 경제성에 기반한 것이 아닌 환자의 상황을 함께 이해해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가 개편되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