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강북삼성병원에서 발생한 故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피살 사건과 관련하여 의료계 추모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의료계 신년하례회에서도 참석자 모두가 故 임 교수 애도에 입을 모았다.
이날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은 축사에서 "지난해 의료현장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이 무려 9백 건이 넘었다고 한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의사로 20년간 진료하면서 故 임 교수와 같은 여러 사례를 겪었다. 폭행 경험은 의료인 모두가 가지고 있다. 많은 사고가 병원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병원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폭행 · 폭언이 발생하며, 지난해 집계된 폭행 건수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승희 의원이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응급의료기관에서 기물 파손 및 의료인 폭행 · 협박으로 신고 · 고소된 사고 건수는 893건으로 확인됐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3일 메디포뉴스와의 통화에서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이 지난해 9백 건가량의 의료진 폭행이 발생했다고 말했으나 사실 그건 정확한 통계치가 아니다. 실제 폭행 건수는 집계가 안 된다. 협회 차원에서 통계를 내보려고 했지만 신고 자체가 안 되고 중재로 무마된 사건이 많아서 정확한 집계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도 동일한 의견을 냈다. 간협 관계자는 "의료진 폭행 사건이 발생해도 병원에서는 이미지 하락을 우려하여 쉬쉬하기 때문에 협회 차원에서 집계를 못 한다. 병원에서는 사건을 신고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 · 묵인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치과계의 경우 2011년 경기도 오산에서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치과의사가 찔려 사망했으며 2016년 광주 광역시에서는 치과 내원 후 우울증 증세가 시작됐다는 환자가 흉기로 치과의사를 수차례 찌르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충청북도 청주에서는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환자가 치과의사에게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대한치과의사협회 이재윤 홍보이사는 "지난해 치료에 불만을 가진 환자가 만취 상태로 내가 근무하는 치과에 방문해 기물을 부수고 위협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결국 경찰이 환자를 데리고 갔으나 두 시간 만에 술을 더 마신 상태로 다시 치과에 나타났다. 여러 죄명이 있지만, 주취자이기 때문에 경찰이 훈방 조치한 것이다. 법대로 처리해달라고 요청하니 경찰이 진짜 처리할 거냐고 물었다."며, "당시 경찰은 조용히 넘어가기를 원했다. 나는 그런 대응이 너무 아쉬웠다. 이 같은 일을 한 번 겪으면 다음에는 신고를 쉽게 못 한다. 경찰이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고, 보복도 두렵기 때문이다."고 토로했다.
이 홍보이사는 故 임 교수 사건을 계기로 의료진 폭행을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며, "치과의 경우 폭행 사례가 수도 없이 많다. 재발을 막는 방안을 고민하고, 폭행이 일어났을 때 어떤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할지 여론을 형성하여 안전한 진료실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이상훈 회장은 △보안요원 배치 △의원급 내 비상벨 설치 △사법입원제도 도입 △의료법 ·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등을 주장했다.
2017년 5월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에서는 정신질환자의 비자의적 입원 절차를 서로 다른 의료기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인의 진단 등으로 규정하고 있어 개정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회장은 "의원급은 인건비 때문에 보안요원을 고용할 수 없어 병원보다도 더 취약한 상황이다."라면서, "학회에서 주장하는 것은 사법입원 도입이다. 사법으로 입원을 시키면 의사는 치료만 하면 된다. 그래야 故 임 교수와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의사가 입원을 시키면 환자는 해당 의사를 자기를 가두는 나쁜 의사라고 낙인을 찍는다. 적대감을 가진 환자가 욱하게 되면 결국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다. 법 ·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한의원에서는 발생하는 폭행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며, "이번 故 임 교수 사건을 비롯하여 의료기관 내 발생하는 폭력 · 폭언 행위는 엄단해야 한다. 반드시 없어져야 할 것이며, 이는 모든 이가 바라는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2일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임 교수의 빈소에는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용익 이사장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 △대한치과의사협회 김철수 회장 △대한간호협회 신경림 회장 등 수많은 정부 · 의료계 인사가 방문하여 애도의 뜻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