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료·건강정보 민영보험사와 기업에 넘겨주는 ‘디지털헬스케어법안’ 폐기하라!”
오는 22일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디지털헬스케어법’ 법안이 논의될 예정인 가운데, 해당 법안에 대해 노동·시민사회단체들과 환자단체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결사 반대를 표명했다.
이날 ‘디지털헬스케어법’ 반대 의사를 표명한 단체로는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를 비롯해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폐섬유화환우회, 한국루게릭연맹회,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등이 참여했다.
이날 환자·노동·시민단체들은 개인 동의 없는 가명처리 의료·건강정보의 상업적 활용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가명정보의 경우에는 추가 정보가 있으면 재식별이 가능한 정보로, 특히 의료·건강정보는 다른 정보와 결합될 경우 그가 누구인지 찾아내기가 쉬운 정보이자 가장 민감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은 민감한 의료·건강 정보를 개인 동의도 없이 기업들이 교류·구매·판매·결합해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으로, ▲알츠하이머나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 ▲성매개 감염 ▲임신과 분만 ▲자연유산과 인공유산 ▲성폭력 피해 정보 등이 마음대로 활용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디지털헬스케어법이 허용된 미래는 2011~2014년까지 국민의 88%인 4399만명의 가명 의료정보 47억건을 사들여 재가공한 후 국내 제약사에 되팔아 막대한 수익을 챙긴 사건인 ‘IMS헬스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IMS헬스 측에서는 가명처리해서 안전하다고 주장했으나, 2015년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이 IMS에 제공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암호화된 한국인 처방전 데이터의 주민번호를 손쉽게 전부 해제해서 논문으로 발표될 정도로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환자·노동·시민단체들은 의료·건강정보를 가장 탐내는 기업은 바로 민영보험사라면서 보험사들이 가명정보를 수집하려는 이유는 기저질환자들의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보장을 거부하거나, 보험가입 자체를 거절하는 등 소위 저위험군만 가입시키고 고위험군을 배제해 ‘단물 빨기(cream skimming)’를 하기 위함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특히, 지금도 민영보험사들은 데이터3법 통과를 법적 근거로 공공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있는 국민의 의료·건강정보를 수집해 오고 있는데, 그나마 지금까지는 법적 근거가 미흡했었지만, 디지털헬스케어법안이 통과되면 ‘합법’ 영역으로 들어오는 비극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환자·노동·시민단체들은 이미 가명정보를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게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됐지만, 민간보험사 같은 기업들은 디지털헬스케어법이 있어야 그 적용 범위를 보건의료로 넓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현행 의료법에서는 ▲제19조 의료기관·의료진의 환자 정보 누설을 ▲제21조는 제3자 기록열람을 각각 금지하고 있으며, 국민건강보험법 제102조도 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 등이 직무상 목적 외 용도로 제3자에게 정보제공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었지만, 디지털헬스케어법안은 이런 최소한의 정보인권 보호를 위한 규제를 무너뜨리는 발판임을 강조했다.
둘째로 환자·노동·시민단체들은 개인의료정보 기업 등 제3자 전송 허용(마이데이터)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디지털헬스케어법에 민간 기업이 의료기관에 쌓여있는 진료기록·상담기록·의료영상 등의 진료정보,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수집되는 개인건강정보, 질병청과 건강보험공단·심평원 등 공공기관 정보를 통째로 전송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있으며, 정보 주체의 동의에 기반한다.
하지만 환자·노동·시민단체들은 “누구나 알다시피 기업과 개인 간 정보와 권력 격차가 큰 사회에서 ‘개인의 동의’는 매우 취약하다”라면서 “클릭 한 번에 무심코 수많은 개인정보가 넘어가선 안 된다”라고 밝혔다.
같은 이유로 의료법 제21조와 약사법 제30조 등 현행 의료 관련 법률들은 아무리 환자가 동의해도 민간기업이 의료기관 등으로부터 건강‧의료정보를 바로 건네받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음을 전하며, 디지털헬스케어법이 통과된다면 이 안전장치가 무력화됨을 강조했다.
애초에 환자·노동·시민단체들은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로 잘못 알려진 보험업법 개정안이 커다란 환자·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에 부딪쳤던 이유는 보험금 청구 편의를 빌미로 의료기관 개인정보를 민간보험사에게 데이터베이스화된 형태로 자동전송하는 내용 때문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디지털헬스케어법은 차원이 다른 규제 완화 법안으로, 실손보험금 청구에 그치지 않고 모든 의료와 건강 관련 정보들을 기업에 자동전송 가능케 하는 내용으로 훨씬 더 방대한 문제와 정보인권 침해를 낳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아울러 환자·노동·시민단체들은 정부에서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를 민영보험사들에게 허용하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것의 핵심은 민영보험사가 직접 만성질환 관리와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리기업의 의료행위를 사실상 합법화하는 것으로, 영리병원 허용과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며, 건강관리서비스를 위한 전제조건이 바로 ‘마이데이터’라면서 환자 편의가 아니라 민영보험사를 위한 미국식 의료 민영화를 위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환자·노동·시민단체들은 의료 규제샌드박스는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있는 규제샌드박스는 제품 출시 전 기존 법규에 따른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우선 출시를 허용하고 사후에 규제하겠다는 나쁜 정책이자 사실상 정부가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환자·노동·시민단체들은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기업이 스스로 판단해서 허가 법령에 기준·규격·요건이 없거나 적용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보면 ‘임시허가’를 신청할 수 있고, 임시허가가 되면 최대 4년간 제품을 의료 현장에 적용할 수 있게 되며, 기업이 현장 직접 성능 검증을 하기 위해서 규제의 전부나 일부를 적용하지 않는 ‘실증특례’를 신청할 수 있게 된다고 성토했다.
기업에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으로 4년 동안 이윤을 창출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규제샌드박스가 허용되면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술이 ‘진료’의 이름으로 환자에게 쓰이고, 환자들은 실험 대상이 되면서도 비용을 부담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끝으로 환자·노동·시민단체들은 디지털헬스케어법안은 주로 민영보험사 등 기업의 돈벌이를 위해 내 의료·건강정보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악법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국민의 정보인권에는 눈감고 오로지 기업들의 의료·건강정보 활용에만 중점을 두는 이 법안은 폐기돼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