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와 국립중앙의료원이 그간 함께 공공보건의료 발전 중장기 정책과제 발굴을 위한 관련 연구를 수행한 끝에 야심차게 마련한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안’을 놓고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질타와 혹평이 쏟아졌다.
그간의 논의를 통해 진행됐던 대책의 깊이에 비해서 이번 계획안은 다소 후퇴했고, 전체적으로 구체성이 떨어지면서 지금 당장에 필요한 공공보건의료 강화 실천방안이 충분히 담겼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보건복지부와 국립중앙의료원은 26일 온라인으로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안’ 공청회를 개최하고 국립중앙의료원 주영수 공공보건의료본부장을 좌장으로 관련 전문가와 단체 등이 함께 계획안에 대해 토론했다.
이번 2차 기본계획안은 ▲필수의료 제공체계 확충 ▲공공보건의료 역량 강화 ▲공공보건의료 제도 기반 강화 등 3개 분야를 중심으로 추진된다.
구체적으로, 필수의료 제공체계 확충 방안에는 ▲지역 공공병원 20개소 이상 신·증축 및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추진 ▲공공적 역할을 하는 민간의료기관((가칭)지역책임병원)과 공공전문진료센터 확대 및 강화 ▲공공보건의료기관별 역할 정립 ▲중증응급·중증외상·중증심뇌혈관질환 대응 역량 강화 및 인프라 구축 ▲모자보건의료 전달체계 구축 및 소외계층 의료안전망 강화 ▲지역 기반 감염병 대응 협력체계 구축 및 통합정보지원시스템 내실화를 통한 체계적 관리·연계 강화 등이 포함돼 있다.
공공보건의료 역량 강화 방안에는 ▲관련 단체 협의 및 법 근거 마련 등을 통한 필수의료 의사인력 확충 ▲공공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및 통합지원관리체계 마련 ▲전문적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 확대한 (가칭)공공보건의료개발원 개편 추진 ▲국립중앙의료원 이전·신축 통한 국가중앙병원 기능 강화 및 스마트 공공병원 혁신 등이 담겼다.
공공보건의료 제도 기반 강화를 위해서는 ▲공공보건정책심의위원회 및 공공보건의료지원단 확대·강화 ▲책임의료기관 지정·육성 및 협력사업 분야 확대 ▲공공보건의료 재원 총괄 점검체계 마련 ▲필수의료 제공·협력 관련 건강보험 수가 개선 등을 추진한다.
하지만 토론자들은 이번 계획안에 대해 1차 계획안의 재탕 수준에 불과하며, 새로운 개념 마련이나 도전 없이 과거의 것을 답습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절하 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재수 정책실장은 모든 국민에게 필수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안의 목표에 대해 의료 취약지·계층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 대책에 충실히 담겨있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특히 공공의료 확충 문제와 양적 부족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미흡하다고 했다.
또 정 실장은 지역공공병원 20개소 이상 신·증축 계획을 두고도 신축 3개소(서부산, 대전의료원, 진주권 등)를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확충계획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 실장은 “이전·신축하겠다는 6개 의료기관은 쥐가 나올 정도로 낙후된 시설이어서 이미 이전부터 신·증축이 이뤄졌어야 했다”며 “마치 전체 20개소를 새로 신·증축하는 계획처럼 보이지만, 신축 3개를 제외하고 기존 공공병원에서 필요했던 현대화 수준에 국한돼 있다. 의료자원이 얼마나 필요하고 언제까지 확대해나갈 것인지 구체적 목표를 제시해야 했던 것이 바람직했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정 실장은 “의사들의 많은 주장들 중에서도 보건의료 인력이 지역의료의 막중한 역할을 수행할만한 마땅한 공공병원이 없다는 지적은 대단히 뼈아프게 들어야 했다”며 “여전히 공공병원과 공공병상만을 확충한다는 인색함이 계획에 반영돼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당선인 인수위원회 이무열 수석대변인(중앙의대 생리학 교수)은 정부와 의료계 간의 상호합의를 통한 협력체계 구축을 강조했다.
이 대변인은 “의료에서 공공적으로 책임질 부분은 어떤 것이고, 민간이 해야 될 일은 어떤 것인지 정부와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며 “복지부 정책에서 협력이 필요한 부분들은 협력하겠지만, 만약 의사를 공공재 내지는 공공의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안 된다. 서로간의 합의가 잘 이뤄져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건국의대 예방의학교실 이건세 교수도 1차 계획안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이 이번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꼬집으며, 새로운 계획이 추가되지 않는 이상 이번 계획안도 슬쩍 넘어가듯 끝날 것 같다고 실효성의 의문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현 정부가 1년도 안 남았고, 코로나19 대처로 복지부도 정신없을뿐더러, 예산도 없는데 공공의료 문제까지 자꾸 들고 나와서 복잡하게 하고 괜히 문제 일으키지 말자는 것이 복지부 내부 입장인지 너무 몸조심하고 문제 일으키지 않고 슬쩍 넘어가려 하는 느낌이 전반적으로 든다”며 “과연 이렇게 슬쩍 넘어가서 해결될 일인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태현 교수는 제도 계획을 할 때 공공의료기관을 운영하면서 겪는 많은 어려움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공공의료기관이 갖는 문제점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며 “공공의료기관의 제도적 기반이 미흡하다기 보다는 이를 옥죄는 여러 제도가 있고, 갖춰야 될 사항들이 많은데 정작 책임성이나 자율성은 부족하기 때문에 공공의료기관을 운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조승연 회장은 감염병전문병원을 지역공공병원에 우선적으로 유치해 지역의료원들을 훨씬 더 규모 있게 키울 것과 일차의료 강화 필요성을 제시했다.
조 회장은 “감염병전문병원들이 민간대학병원에 위탁될 가능성이 높아서 질병관리청과의 소통을 통해 감염병전문병원을 지역공공병원에 우선적으로 유치하고, 지역의료원들을 훨씬 더 규모 있는 병원으로 키우는 정책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며 “특히 공공보건의료의 가장 중심적인 일차의료 강화와 관련한 부분이 이번 계획안에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국립중앙의료원 정기현 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지금의 공공보건의료 계획안은 상황이 터지면 하루살이에 머무를 뿐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계획에 불과하다고 작심한 듯 복지부를 비판했다.
정 원장은 “지금 세워진 공공보건의료 2차 기본계획안도 어떤 면에서 보면 좁은 이해도에 바탕을 둔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며 “판데믹 상황에서도 우리는 정부에 비상한 대책을 요구해왔지만 비상함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지만 여러 계획이 발표됐음에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것은 다 아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 원장은 “국민의 이해와 요구의 시기를 놓치고 난 뒤 정책이 마련돼서는 안 되고, 보건의료체계의 작동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정책이 지금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쏟아지는 지적과 의견을 종합해 계획안을 보완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노정훈 공공의료과장은 “2차 기본계획안이 소극적이지 않았나 하는 지적과 함께 이 정도하면 되지 않았나 하는 복지부 내부 인식이 작동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린다. 공공보건의료 확충 계획안 마련을 위해 여러 과정을 거치고 의견을 모아서 작업했지만, 여전히 가야될 길은 많은 것 같다”며 “지적하신 부분들을 보완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안은 5월 중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 상정돼 심의를 거쳐 최종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