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의료계 이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의원은 코로나19 영향으로 경영에 큰 타격을 받았고, 공공보건의료 강화 필요성은 더 부각됐으며,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충 등 정부 정책에 반발하며 전국 의사들은 집단행동으로 맞불을 뒀다. 여기서 파생된 의과대학생 의사국가고시 미응시 사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지치지 않는 보건의료계의 헌신과 지원은 코로나19 위기 속 더 빛을 발했고, 생활치료센터와 끊임없는 선별진료소 진화 등은 K-방역의 위상을 전 세계에 드높였다. 언텍트는 위기 속 안전하고 슬기로운 방법의 하나의 좋은 모델로 자리 잡았다. 메디포뉴스가 금년 한 해 발생한 여러 이슈 중 주요 사건을 모아서 10가지로 정리했다. [편집자주]
◆ 위기 속 빛난 보건의료계 헌신과 지원
사회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는 등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빛으로서 환자들을 향한 보건의료계의 헌신과 지원이 이뤄졌다.
대구·경북지역의 코로나19 1차 대유행이 시작되자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들은 지체 없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3월 한 달간 대구·경북 의료자원봉사에 지원한 간호사 수는 3874명으로 집계됐다. 자원봉사를 신청한 간호사들은 20대 신입부터 은퇴 간호사까지 다양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가톨릭중앙의료원, 고려대의료원, 세브란스병원 등 공공병원부터 수도권 상급종합병원들까지 의료지원단을 구성해 현장에서 일손을 도왔다. 또 혈액 수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의료진을 비롯한 병원 관계자들이 너도나도 헌혈에 동참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 상황이 1년간 지속되자 적절한 휴식과 지원을 받지 못한 의료인들과 역학조사관 등 현장대응팀의 육체적·정신적 피로도가 누적됐다. 급기야 621명 중 70%에 달하는 의료·현장대응팀이 소진(번아웃)과 울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과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의 코로나19 2차 위험인식조사에 따르면, 업무강도 인식 정도가 높을수록 직무 스트레스와 번아웃도 같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보다 나은 조건의 다른 직장이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이직할 의사가 있다’고 답한 비율도 66.5%에 달했다.
11월 27일 ‘Korea Healthcare Congress(KHC) 2020’에서 유 교수는 “보건의료 인력은 급하다고 해서 기계처럼 급조할 수 없고 100% 풀가동 상태로 지속할 수 없는 것이 핵심”이라며 “따라서 정부나 사회는 보건의료인력을 마치 체스판의 장기말처럼 이리저리 필요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아서는 안 되고, 감염병 유행 대응의 핵심요소라는 점을 잘 고려해 시의적절하고, 합리적이고,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겨울철 3차 대유행이라는 악조건 속 보건의료인들의 헌신과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 전 세계로 뻗어 나간 K-방역의 위상
지난 3월 대구·경북지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해 병상이 부족해지자 확진자가 자가격리 도중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치료체계를 개편하고 세계 최초로 대구 중앙교육연수원에 생활치료센터를 구축했다. 이후 생활치료센터는 16개까지 확대돼 드라이브 스루·워킹스루 선별진료소와 함께 ‘K-방역’의 대표 모델로 꼽혔다.
슬기롭게 1차 코로나 대위기를 극복하는 데 성공한 한국의 방역 경험은 미국 유명 병원과 세계보건기구(WHO), UN 등에 전수됐다. 명지병원은 한국의 방역 노하우를 소개하는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WHO 자문위원단은 계명대학교 동산병원과 서울의료원을 직접 방문해 코로나19 진료시스템과 확진 환자 관리 방법 등을 전수받았다. 복지부는 아예 5월 4일 전 세계 보건의료 관계자를 대상으로 K-방역을 소개하는 웹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대한병원협회가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한 ‘국제병원의료산업박람회(K-Hospital Fair 2020)’에서는 병원과 의료산업계가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노하우가 공유됐으며,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이 개발한 워크스루 부스는 워싱턴포스트 등 전 세계 50여 개국 외신에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연일 대규모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데다가 고삐를 조인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도 불구하고 확산세는 계속되고 있어 내년에도 K-방역이 전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치기 위해선 전략적인 방향 재설정이 필요해 보인다.
◆ 더 부각된 공공보건의료 강화 필요성
올 한해만큼 공공보건의료 강화·확대 필요성에 무게가 쏠린 적은 거의 없을 거다. 그동안 토론회나 기자회견을 통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고 모든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공공의료 강화는 이례적으로 여야 정치권이나 의료계, 대다수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국정감사 때도 공공의료와 관련된 질의들이 쏟아졌고, 시민사회단체는 공공병원 확충과 공공의료 예산 증액 등을 국회에 요구하고 나섰다.
의협은 ‘공공의료 TF’를 발족하고 4월 30일 열린 첫 회의에서 ▲공공의료 인력 확보 방안 ▲필수의료의 개념 정립 및 확대 방안 ▲의료취약지 및 의료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제공 확대 방안 ▲감염병 관련 대응 시스템 마련 방안 ▲공공의료의 참여 주체·제공범위·민간의료와의 연계 등 포괄적 공공의료 시스템 구축 방안을 주요 주제로 선정하고 논의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지방의료원은 중환자 치료 등 감염병 대응에 취약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도 어렵다는 점이 드러나 지원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됐다. 또 국립대병원이 중심이 되어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 등 취약계층에게 타 분야와의 연계가 필수적인 보건의료를 제공하고, 응급환자의 진료 외에도 민간보건의료기관이 담당하기 어려운 감염병 예방보건의료 등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렸다.
◆ 의료인 고발·구속에 분노한 의료계
여의도 총파업 이후 8월 26일부터 3일간 온라인으로 2차 총파업이 단행됐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맞서 수도권 소재 수련병원에 근무 중인 전공의·전임의를 대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발령, 28일 이를 위반한 전공의 10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그러자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 전체가 분노에 차 들끓었다. 최대집 의협회장은 복지부 발표가 있은 지 단 몇 시간 만에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공의 탄압은 부당한 일이며, 파업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제가 질 것”이라며 정부를 질타했다.
지역의사회, 학회, 대학병원 교수들까지 정면에 나서서 업무개시명령 불이행에 따른 전공의 고발조치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전공의와 전임의, 교수들이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고발당한 전공의들을 비호하며 젊은 의사들의 단체행동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BIG 병원부터 시작해 릴레이처럼 전국으로 퍼져갔다. 결국 복지부는 9월 4일 의정합의에 따라 전공의 10명에 대한 고발조치를 전원 취하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의료계 공분을 산 일이 또 있었다. 장폐색 환자에게 장 정결제를 투여 후 환자가 사망하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의사에게 법원이 금고 10개월을 선고하고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법정구속한 것. 이 의사는 대학교수 신분이자 두 아이의 엄마였다.
이에 이 의사가 소속된 병원 동료의사들을 비롯한 의료계가 조속한 석방을 요구하며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동료의사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최대집 의협회장은 서울구치소 앞에서 철야 릴레이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이 의사는 지난 9월 10일 1심에서 실형 선고와 함께 법정 구속된 지 53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
11월부터 뇌혈관질환 후유 관리, 안면신경마비, 월경통 등 3개 질환에 대해 한방첩약을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추진에 들어갔다. 이에 한의계는 환영의 뜻을 밝히며 전체 한의원 약 60%에 달하는 9000여 곳이 사업에 참여했다. 시범사업 기간은 2023년 10월까지다.
하지만 의료계와 의약계가 손잡고 시범사업 철회를 촉구하며 용인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의협은 6월 28일 청계천한빛광장에서 100명의 의사가 참여한 ‘첩약 건강보험 적용 결사반대 및 한방건강보험 분리 촉구를 위한 결의대회’를 개최, 시범사업 결사반대의 각오로 대형탕약기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의료계 주장의 요지는 첩약급여로 의료비가 경감될 수 있는지 검증되고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유효성 확인을 통해 한의약의 과학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업 설계가 완벽하게 된 후 안전성·경제성·효과성을 평가해 시범사업이 추진되는 게 타당하다는 것. 아울러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가 시범사업 시행에서 우려하는 지점은 크게 ▲명확한 표준화와 객관화가 이뤄진 국내 임상진료지침의 부재 ▲원외탕전실 인증제의 악영향 ▲한약 부작용 및 피해에 대한 관리·감독 부실, 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반면 한의계는 국민건강증진을 위해서 궁극적으로 모든 첩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쪽이라서 양측의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