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제약업계를 뒤흔들었던 많은 사건들 중 업계를 위축시켰던 사건들도 많았다. 급여 적정성 재평가 사태나 비대면 플랫폼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물론 ESG 경영이나 상장 폐지 위기 극복 등 긍적적인 소식도 있었지만, 오늘날 제약업계가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발전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해왔던 제약사 1세대 창업주들이 연이어 타계하면서 뒤숭숭한 한 해가 이어졌다.
◆끝난 듯 끝나지 않은 ‘급여 적정성 재평가’
급여 적용으로 희소식을 알린 약품들이 있는가 하면 급여 적정성에 대한 재평가로 천국과 지옥을 오간 약품들도 있다. 급여 적정성 재평가는 2023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올해 급여 적정성 재평가로 화두에 오른 대표적인 제품은 셀트리온제약의 ‘고덱스’가 해당된다. 고덱스는 오로트산카르니틴, 항독성간장엑스, 아데닌염산염, 피리독신염산염, 리보플라빈, 시아노코발라민, 비페닐디메틸디카르복실레이트 성분의 간장용제다.
특히 고덱스는 지난 7월 재평가에서 급여 적정성이 인정되지 않아 급여 삭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회사측이 약가 자진 인하도 불사하며 추가 자료 제출을 하는 등 갖은 노력 끝에 10월 퇴출 위기 제약사 중 최초로 급여 적정성에 대해 재인정을 받게 됐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1월 개최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고덱스를 비롯해 과거 급여 적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던 약품에 대한 약평위 결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 제기됐다.
이어 이 달 22일 개최된 건정심에서는 미뤄져왔던 역평위 평가에 대한 논의를 다시 진행하겠다고 했으나, 단순히 논의결과를 보고하는 형식으로 마무리됐다.
이에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이하 건약)를 포함한 여러 시민단체들은 보건복지부가 11월 건정심 회의결과를 전면 부정했다며, 급여 유지 결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건약 관계자는 “11월 건정심에서 다음에 다시 재평가를 논의하기로 했다.”면서 “12월 건정심서 급여적정성 재평가를 보고 안건으로 처리한 보건복지부는 분명하게 해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약계 모두가 반대하는 ’비대면 플랫폼’
비대면 시스템은 의료계뿐만 아니라 약업계에도 큰 파장을 몰고왔다.
6월 ICT 규제샌드박스 심의위원회가 약 자판기 등과 관련한 11건의 실증특례 과제를 승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1000명의 약사들이 모여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이보다 앞선 6월 15일에는 최광훈 대한약사회장을 시작으로 1인시위를 개최한 바 있다.
당시 최광훈 약사회장은 “의약품 구입불편을 해소하는 방식이 몇몇 의약품밖에 구입할 수 없는 이러한 방식으로는 국민의 의약품 구입불편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심야약국 운영을 확대해 이를 해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간 대한약사회 측은 의약품 오투약으로 인한 부작용, 지역약국 시스템 붕괴 등을 이유로 비대면 약 판매가 가능한 시스템 도입을 저지해왔으나, 이번 실증특례 과제 승인에 따라 내년부터는 시범사업이 진행될 전망이다.
화상 투약기로 구매가 가능한 의약품은 △해열∙진통∙소염제, △항히스타민제, △진해거담제, △정장제 등 11개 적응증이 해당된다.
또한 비대면 진료 앱이었던 ‘닥터나우’도 대한약사회에 의해 고발되기도 했다.
전문의약품과 약국에 대한 불법 광고, 약국 정보 미제공 등 정부가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 중개의무를 위해 규정해놓은 의무 및 준수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한편 약사법 50조 제1항에 따르면 약국 개설자 및 의약품 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는 것으로 나와있다.
◆신라젠, 코오롱티슈진…상장 폐기 위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제약사
코오롱티슈진, 신라젠 등 상장폐지의 위기에서 기적적으로 극복해낸 제약바이오회사들도 주목되고 있다. 이들 회사는 올해 10월부터 거래 재개가 이뤄지고 있다.
먼저 코오롱티슈진은 인보사 논란과 횡령 및 배임으로 2019년 5월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이에 2021년부터는 ‘TG-C’의 무릎 골관절염과 관련한 미국 임상3상에 대해 재개하는 등 신규 파이프라인 확대와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왔으며 3년 6개월만에 거래 재개에 성공했다.
신라젠 역시 임원들의 횡령 및 배임이 원인이 돼 2020년 5월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신라젠은 한국거래소로부터 1년 동안의 경영 개선기간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1월 결국 상장 폐지가 결정됐으나, 그 다음 달인 코스닥시장위원회로부터 6개월이라는 또 한번의 기회를 제공받았다.
회사측은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신규 파이프라인 확보와 함께, 새 대표이사 및 임원 선임 등 한국거래소의 요구사항을 모두 달성해냈고 그 결과 10월 13일부터 거래가 재개되고 있다.
이 밖에도 지난 해 5월 실적 부진으로 주식거래가 정지된 큐리언트와 작년 말 재무팀장의 회사 자금 횡령으로 올해 초 주식거래가 정지된 오스템임플란트 등도 이번 10월 거래 재개에 성공했다.
◆약업계는 지금 ESG 경영이 대세
많은 기업들의 경영 트랜드에 맞춰서 제약바이오 업계도 ESG 경영에 몰두했다. 매년 해오던 ESG 경영이지만 특히 예년과 구분되는 점은 보다 구체적이며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관점의 활동들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나눔이나 기부 등 1차원적인 활동이 위주였다면 최근에는 직접적으로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활동들이 진행됐다.
가장 최근에는 종근당홀딩스가 3월부터 실시한 ‘종근당 알지 캠페인’ 성료 소식을 전했다. 종근당 및 계열사 임직원이 참여한 이번 환경보호 활동에서는 다회용품 사용 장려, 잔반 Zero 음식물 다이어트, 물 절약, 자원순환 캠페인 등 총 10개의 챌린지를 진행했다.
이러한 제약바이오 업계의 노력은 각 제약사들이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고스란히 담겨있으며, ISO 인증을 통해 증명되기도 했다.
한편 보완점들도 존재한다. 지난 23일 제약바이오협회가 발간한 정책보고서에 의하면 9월 기준으로 제약바이오업계 ESG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폐의약품 등의 폐기물 처리, 공급망 관리 등이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한편 기업 내부에 ESG 경영을 내재화시키지는 못했던 것으로 나타나면서 내년의 ESG 경영 과제로 남게 됐다.
◆1세대 창업주들, 제약업계의 별로 남다
경영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서 각 제약사를 지켜온 1세대 창업주들의 별세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면서 제약업계는 비통함이 감돌기도 했다.
올해 가장 먼저 타계한 창업주는 4월 20일 별세한 허억 삼아제약 명예회장(향년 87세)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전 대한약품공업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허 명예회장은, 국내 최초로 주 5일 근무 도입 및 1972년 사내 건강 복지금 제도를 도입해 직원 복지를 위해 힘써왔다.
이에 1977년에는 근로복지 최우수 업체로 선정, 1982년 제21회 약의 상(현 동암 약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어 1984년에는 국민훈장 노력장 수훈을, 1999년에는 27회 보건의 날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다.
7월 6일에는 이영수 신신제약 명예회장(향년 96세)이 별세했다. 이 명예회장은 1959년 신신제약을 설립해 대한민국 최초 파스인 ‘신신파스’를 만들고 60여년간 활발하게 기술개발 및 경영활동을 병행했다.
1960년대부터 수출에 힘써 1983년 100만달러 수출의 탑을 달성했으며,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 2009년 한국창업대상을 수상했다.
어준선 안국약품 명예회장(향년 85세)은 8월 4일 별세했다. 어 명예회장은 안국약품 대표이사 재임과 함께 대한약품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제약협회 이사장, 제약협회 회장은 물론 제15대 국회의원까지 역임했다.
과거 동아일보 광고 탄압 당시 중앙정보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기업광고의 당위성을 설파했으며, 대한약품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재임 시향남제약공단을 개발해 중소제약회사의 GMP 공장건립 문제를 해결했다. 또 2009년 한미FTA, 생동시험 파문, 포지티브 리스트 등 제약산업이 3중고를 겪고 있을 때 제약협회 회장을 맡아 산업을 보호했다.
국회의원 재직 때는 IMF 외환위기 상황서 국내기업이 외국에 헐값에 팔리는 것을 막는 ‘자산재평가법’ 개정안을 발의해 통과시켰고, 의약 분업 1년 연기 시행 등 사회적 혼란 방지에 앞장섰다. 정부는 2001년 고인에게 대한민국 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어준선 명예회장 타계 후 보름이 지난 8월 20일에는 윤영환 대웅제약 명예회장(향년 88세)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윤 명예 회장은 특히 신약 개발에 전력을 다했다. 우루사는 물론 소화제 ‘베아제’, 당뇨병성 족부궤양 치료제 ‘EGF’, 고혈압-이상지질혈증 치료제 ‘올로스타’,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 등을 출시하며 매출의 20% 내외를 연구개발에 쏟았다.
뿐만 아니라 2014년에는 보유 주식을 모두 출연해 ‘석천나눔재단’을 설립해 대웅재단의 장학사업을 확대하고 사내근로복지기금을 확충해 직원들의 복지, 처우를 개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9월 1일에는 윤병강 일성신약 명예회장(향년 92세)이 별세했다. 윤 명예회장은 페니실린 계열의 항생제 ‘오구멘틴’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으며 동양증권을 창립해 증권에도 능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