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겹고도 혼란스러운 2024년이 막을 내리고 있다. 올해 의료계와 약업계를 뜨겁게 달군 최대 이슈는 의대정원 증원 문제였다. 2000명이라는 전례 없는 증원 규모는 의료 현장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그 여파는 제약업계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특히 약업계에서는 제약사 오너 일가 간의 갈등이 한 해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며 업계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그러나 연말에는 극적으로 갈등 봉합에 나서며 희망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혼란과 갈등 속에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향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을사년(2025년)에는 혼란을 넘어 변화와 성장이 가득한 해가 되길 바라며, 메디포뉴스가 2024년 의료계의 주요 이슈들을 돌아봤다. [편집자주]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이 만들어낸 스노우볼
올해 의료계의 가장 큰 이슈는 ‘의대정원’ 증원 문제였다. 이전 정부에서도 의대정원을 증원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지난 2월 현재 정원에서 무려 ‘2000명’을 추가로 증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졌다.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 명분으로 ‘필수의료’ 인력 확충을 내세웠지만, 의료현장에서는 의대정원을 증원하는 것은 필수의료 인력 증가와 관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각종 학회 등에서도 무리한 의대정원 증원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결국 정부는 2000명 증원을 강행했다.
이 같은 정책 때문에 의대생들은 휴학을, 수련을 받던 전공의들은 사직을 택했다. 근무환경이 더욱 열악해지자 대학병원을 떠나는 교수들도 발생했으며, 병원은 의료진 보호를 위해 일시적인 휴업을 선택하기도 했다.
내년에 의대생들이 복학을 한다고 하더라도 기존보다 많은 인원을 수용해야 하기에 신입생과 기존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이 제공될지는 미지수다. 또 본과 4학년들의 휴학으로 국가고시 응시가 제한되면서 내년도 인턴 확보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계는 지금이라도 2025학년도 의과대학 신입생 모집을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수시모집을 끝내고 정시모집 원서접수가 진행되고 있는 바, 이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NS 삭제하겠습니다”…의협 회장직 1년도 못 채우고 탄핵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강행으로 인해 대한의사협회 41대 집행부(회장 이필수) 사퇴 후 후임 회장으로 임현택 후보가 당선됐다. 임현택 후보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등으로 활동하며 65% 이상의 지지를 얻어냈다.
임기는 지난 5월부터 약 3년 동안이었다. 그러나 임현택 회장은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야만 했다. SNS에 게시한 과격한 발언이 가장 큰 이유였다. 비판이 아닌 조롱과 비난이 가득했던 게시글들은 불합리한 의대정원 증원 정책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아닌, 반감만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현택 전 회장의 거친 말들은 계속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상대책위원장,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 등 젊은 의료인들마저 그를 규탄했지만, 임 전 회장의 거친 행보는 끝나지 않았다.
결국 지난 11월 임현택 전 회장에 대한 불신임 안건에 대한 임시총회가 열렸다. 임 전 회장은 전체 회원에게 사과문을 보내며 SNS 삭제까지 약속했으나 75% 이상이 그의 탄핵에 찬성하며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새로운 회장은 오는 1월 4일 선출될 예정이다.
◆한의협, “우리가 의료공백 채우겠다”
무리한 의대정원 증원 정책으로 의료공백이 발생하자 한의계에서는 자신들을 적극 활용해달라고 주장했다.
의과 공보의가 응급실로 파견을 가면서 정작 이들이 담당했던 농어촌지역의 의료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과 공보의를 긴급 활용해달라고 했다.
보건진료 전담공무원과 동일한 처방권한을 부여받아 국민 건강을 지키는 데에 기여하겠다는 주장이다.
또한 대한한의사협회는 의료인력 부족 해결 방안으로 한의사들에게 2년간의 추가 교육을 통해 지역·공공·필수의료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의사 면허를 부여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간호계 숙원사업 이뤘다…간호법 통과
지난 8월 국회에서는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됐다. 이를 두고 각 직역에서는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간호계는 수년간 고배를 마신 만큼 숙원사업이었던 간호법 제정이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간호사 권익 보호에 기여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명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간호법이 직역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전공의 수련 생태계를 파괴하는 의료악법이라며 반발했다. 간호법 중 PA 간호사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것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
간호법은 이르면 내년 6월에 시행될 예정이며, 교육과정 양성에 대한 규정은 공포일로부터 3년의 유예기간을 둘 수 있다.
◆갑작스러운 비상 계엄, 난데없는 ‘전공의 처단’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3일 갑작스러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계엄 해제가 의결됐지만, 당시 포고령에 난데없이 전공의 처단 내용이 포함돼 의료계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에 따르면 5번 사항에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의협은 “전공의 및 의사를 처단하겠다는 계엄포고문 작성자 색출 및 처벌을 요구할 것”이라고 성명을 내놨고 연세대학교 원주의대 교수들은 “전공의에 대한 탄압은 전체 의료계에 대한 탄압”이라며 “반인도적 폭력”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보건의료노조, 좋은공공병원만들기 운동본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 등 많은 의료계 종사들이 규탄의 목소리를 전했다.
◆의정사태, 제약업계까지 영향 미쳤다
의대정원 2000명 증원 선포로 국내 제약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움츠러들게 됐다. 환자들의 병원 방문조차 줄어들게 된 코로나19 감염병 유행 때보다 더한 상황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매출이 축소되자 임상시험도 직격탄을 맞았다. 제약사들이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유가 줄어들자 신약개발과 글로벌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의정사태 여파는 리베이트 문제까지 번졌다. 고려제약의 리베이트가 적발되면서, 이는 회사뿐 아니라 제약업계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미 오너일가 갈등, 약 1년만의 봉합 실마리
한미사이언스 오너일가는 OCI 통합에 대한 찬반을 시작으로 모녀측(한미약품그룹 송영숙 회장, 임주현 부회장)과 형제측(한미사이언스 임종윤 사내이사, 임종훈 대표이사)로 나뉘어 갈등을 빚었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한양정밀 신동국 회장과 소액주주들이 OCI 통합에 반대하는 형제측의 손을 들어주며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이후에도 상속세나 이사회 선임의 문제가 이어지며 서로를 향한 날 선 공격이 행해졌다. 특히 최대주주인 신동국 회장이 정기주총 이후 모녀 측의 의견을 지지하면서 ‘3자연합’이라는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11월 28일 임시주주총회에서는 신동국 기타비상무이사의 선임이 가결됐고, 12월 19일 임시주주총회에서는 박재현, 신동국 이사의 해임안이 부결됐다. 이처럼 지속된 갈등은 투자축소, 주주가치 하락 등의 우려까지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난 26일 최대주주들이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앞으로는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4인연합측에 따르면 이들은 한미사이언스 임종윤 이사의 보유지분 5%를 매입하고 임 이사와 함께 ▲경영권 분쟁 종식 ▲그룹의 거버넌스 안정화 ▲ (전문경영인 중심) 지속가능한 경영 체제 구축을 합의했다.
◆대한약사회, 권영희 후보 당선으로 첫 여성회장 탄생
2024년 대한약사회장 선거에서는 서울시약사회장을 지낸 권영희 후보가 39.2%의 득표율로 회장에 당선됐다. 임기는 내년 3월 정기총회 인준 후 3년 간이다. 특히 대한약사회 최초의 여성 회장인 만큼 색다른 리더십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권영희 당선인은 선거 당시 공약으로 권 회장은 △성분명 처방 제도화 △약사법 개정을 통한 한약사 문제 해결 △정부 주도 공적 전자처방전 구축 △주치약사제도 도입 △무분별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저지 등을 제시한 바 있다.
◆K-제약산업의 위력, 글로벌 정조준
올해부터 EGFR 비소세포폐암 1차치료에 대해 국내 급여를 획득하며 더 많은 환자들에게 치료 혜택을 전하고 있는 유한양행의 렉라자가 리브리반트와의 병용요법에 대한 FDA 허가를 받아 국내 신약 미국 진출에도 청신호를 보였다.
렉라자 외에도 FDA의 승인을 받은 국내 바이오시밀러 제품은 13종에 달한다. 이는 미국에서 승인된 제품 수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또 녹십자의 혈액제제인 ‘알리글로’, SK바이오팜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도 미국행 티켓을 끊었다.
뿐만 아니라 6건의 주요 라이선스아웃 성과도 확인돼 글로벌 기술력을 입증했다. 오름테라퓨틱과 버텍스 파마슈티컬이 약 1조 3000억원, 알테오젠, 다이이찌산쿄와 4000억원대 기술수출 등의 쾌거를 달성했다.
◆위고비, 비만 ‘치료제’인데…대중적 인기에 팔 걷은 정부
올해 가장 혁신적인 약을 꼽으라면 단연 ‘비만 치료제’다.
대표적인 GLP-1 비만치료제인 ‘위고비’는 BMI 지수 30kg/m2 이상 또는 27kg/m2 이상이면서 동반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혁신적인 체중감소 효과가 입증되면서 적응증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도 처방받기를 원했고, 결국 오남용과 불법유통 문제가 사회를 뒤흔들었다.
비만 치료제가 미용 목적을 위해 과도한 인기를 얻자 관련 기관과 학회가 “비만치료제는 적응증에 맞는 환자가 제대로 된 처방을 통해 사용해야 한다”며 제대로 된 사용을 촉구했으나 열풍은 사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정부는 지난 2일 비대면 진료를 통한 비만치료제 처방을 제한시켰다.
비만 치료제의 현재 약가가 고가라는 점, 처방 조건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정작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치료 혜택이 닿지 못하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때문에 대한비만학회나 대한당뇨병학회 등 유관 학회들은 보험적용 문제와 약가 정책 조율을 위해 정부당국과 긴밀히 협의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