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일 전북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주취환자의 의사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의사는 뇌진탕 경추부염좌 비골골절 치아골절 등 전치4주의 상해를 입었다. 주취환자는 출소 이후 살해하겠다는 협박도 했다. 7월29일 전주 완산 소재 병원 응급실에서 주취환자의 응급구조사 간호사 폭행상해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7월31일 경북 구미차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주취자가 전공의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술에 취해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리던 주취자가 철제 소재의 혈액샘플트레이로 전공의의 머리를 가격했다. 정공의는 동맥파열로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없다. 이런 사례 외에도 응급실에서 크고 작은 의료인 등에 대한 폭행사건이 전국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다.
참다 못한 의료계 의사 종주단체인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는 전국 42개 상급종합병원, 대한응급의학회 등이 지난 14일 저녁 용산 드레콘시티호텔에서 모여 응급실과 의료기관 진료실 폭력근절 대책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대한응급의학회 홍은석 이사장은 "의사가 느끼는 허탈감과 분노는 우연이거나 드문 현상이 아니다. 20여년 전부터 꾸준히 발생한 일상적 일이었다.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을 위한 조치가 적절히 시행되지 못했다. 국민적 관심이 지나면 미봉책으로 마무리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상당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일이다."라고 언급했다. 앞서 지난 7월13일 대한응급의학회가 국회에서 개최한 '응급의료현장 폭력 추방을 위한 긴급 정책 토론회'에서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김호중 교수가 "응급실에 오면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해야 한다. 일정 수치를 넘길 시 결박 치료, 격리 치료, 진료 거부 등이 가능해야 한다."면서, "뉴욕 병원에는 복도에 격리 침상이 존재한다. 이 같은 침상이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도입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현실적인 대응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단순히 토론의 장으로만 끝나지 않을까 싶다."라고 우려했다.
왜 이 처럼 응급실에서 주취자에 의한 의료인 폭행이 일상적으로 일어 나는 걸까?
먼저 우리나라의 술취한 자에 관대한 문화가 문제인 걸로 보인다. 기자가 초년병 시절인 80년대 후반에 취재원을 만나면 의례적으로 담배를 차대신 권했고, 저녁에는 술자리였다. 그 당시를 기억해 보면 술고래가 마치 대단한 능력자인 것처럼 대우 받던 시절이었다. 저녁에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동료기자를 택시에 태워보내면, 다음날 아침에 기사 마감 중인데 어김없이 그 동료기자로부터 "나 여기 경찰서인데 어제 저녁에 무슨일이 있었냐?"는 전화를 받기 일수 였다. 술취한 동료기자가 애끗은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해서 경찰서 임시구치소에 갇힌 것이다. 또 다른 기자는 1차에 2차 3차까지 민패를 끼치는 경우가 다반사 였다. 그 기자가 이민을 가자 취재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마치 무용담으로 호도됐다는 거다. 이런 문화는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걸쳐 존재해 왔다. 이런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 주취자가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생각해 보면 취하도록 술먹는 자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술 먹은 후 자신의 그간의 행적을 성찰의 기회로 삼아 울면서 슬퍼하고 반성하는 경우는 존경할 만하다. 기자는 80년대 중반 해군본부가 대방동에 있던 시절에 출퇴근하면서 근무했다. 선임방위병이 꼭 포장마차나 시장통에서 술을 먹으면 울었다. 마음이 참 따뜻한 선임병이었다. 또 다른 착한 부류는 술을 먹어 필름이 끊겨도 난동을 부리지 않고 얌전히 집에 귀가하는 부류이거나, 술자리 한 구석에서 잠자는 부류 들이다. 이들은 집에 가다가 무의식 중에 가족이나 아는 사람을 위한 물건을 사서 다음 날 주기도 하는 마음 따뜻한 술꾼이다. 그런데 술을 먹으면 사람이 가진 이성적 본성이 뒤로 물러 나고, 파충류같은 동물적 본성이 앞으로 나서는 부류가 문제를 일으킨다. 이들이 응급실에서 의료인이나 환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난동을 부린다.
이런 술취한 응급실 난동자들은 곤드레만드레가 되도록 술을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 생각의 수준도 '내가 술에 취하면 또 다시 예전처럼 사고를 치거나 난동을 부릴 수 있을 것이다.'라는 미필적 고의를 가지고 술을 먹게 된다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 높은 층에서 아령을 던지면 지나가던 행인이 머리를 맞아 사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법적 책임이 있는 정상적 성인이 아령을 던지는 행위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술취한 자의 행위도 미필적 고의이기 때문에 술취해 인지판단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관대하게 처벌해서는 안되겠다.
대한개원의협의회가 지난 8월2일 ‘응급실 주취자의 폭력행위를 가중 처벌하는 것이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드는 길이다.’라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우리나라에는 술로 인한 범죄에 대해 관대하여 술에 만취하면 돌아다니는 폭탄이 될 수 있음을 망각하고 있다. 술을 먹고 저지르는 범죄는 관용보다는 주취자의 예측할 수 없는 위험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는 알콜 중독을 조장하고 술을 먹으면 어떤 범죄도 면죄부를 주는 이상한 사회가 되었다. 오히려 가중 처벌하는 것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마침 국회에서도 박인숙 의원(발의일자 7월13일), 윤종필 의원(7월18일), 홍철호 의원(7월26일), 이명수 의원(7월31일), 신상진 의원(8월9일), 김승희 의원(8월13일), 김경진 의원(8월13일) 등이 응급실이나 의료기관에서의 폭력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특히 홍철호 의원은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형법상 각칙 본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심신장애에 대한 형의면제 또는 감경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하며, 각 죄에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에 2배까지 가중하도록 하고, 이 경우 상습 등의 이유로 각칙 본조에 따른 형의 가중이 적용될 때에 해당 가중 규정을 기준으로 2배까지 추가 가중하고자 한다'는 취지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명수 의원은 의료법일부개정법률안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에서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상태에서 폭행할 경우 형을 감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처벌을 강화하여 병원 내 폭행을 방지하고자 한다.'는 취지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참에 국회는 이러한 법률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최근의 지속된 응급실이나 의료기관에서의 술취한 자에 의한 의료인 등에 대한 폭행사건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 감정도 응급실 등에서의 진료 중인 의료인 등에 폭행을, 술취한 자의 심신미약상태로 볼 것이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위한 폭행으로 보아 무관용주의로 일벌백계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지금이 주취자의 응급실 의사 폭행을 근절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