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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부조리극 연상시키는 응급실 폭행 방지 대안

7월 1일 전북 익산시 소재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 이 씨(36)가 만취한 임 씨(46)에게 폭행 · 협박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른손 손가락 골절을 당해 응급실을 찾은 임 씨는 입원시켜달라는 자신의 요구에 이 씨가 웃음을 보이자 안면을 팔꿈치로 가격하고 머리채를 잡았다 놓으면서 얼굴을 발로 찼다. 임 씨는 경찰이 왔음에도 감옥에 다녀오면 칼을 가져와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산 사건은 수면 위로 솟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나 응급실 폭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태로 자리 잡아 사회적 이슈화에 성공했다. 국민 공감대 형성에도 성공해 이를 계기로 각종 토론회가 개최되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며 대안을 고민했고, 신상진 · 이명수 의원 등이 가해자 처벌을 강화할 법안을 발의했다. 이 밖에도 청와대 국민 청원과 캠페인, 규탄 집회 등이 진행됐다.

대한응급의학회가 실시한 2018 응급실 폭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급의료인의 97%가 폭언을 경험했고 △63%는 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응급실 폭행은 전국 병원에서 거의 매일 발생하고 있다. 응급실 폭행 원인으로는 경찰의 미온적 대응, 사법부의 온정적 판결, 반의사불벌죄 · 주취 감경 등 허술한 법 · 제도적 뒷받침, 의료진 · 환자 간 원활하지 않은 소통 등이 지적됐다.

그런데 폭행의 주요 원인으로 대기 시간이 길고 입원이 안 되는 것에 대한 불만 등이 지목되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은 "응급실은 대기시간이 길며 중증도 분류 체계가 불분명하고, 의료인 부족으로 환자 · 보호자 불만이 발생하여 결국 폭행 · 폭언으로 이어진다."면서, "환자가 어떤 경우에 응급실을 이용해야 하며, 응급실 내에서는 어떻게 환자를 분류해 치료하는지 사전에 잘 설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박재찬 응급의료과장도 "응급실에서는 중증도에 따라 진료 순서가 분류된다. 경증 환자의 경우 의료진 지시에 따라 대기해 진료받는 자세가 필요하며,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 응급실 이용 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응급실 이용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 오래 기다리는 이유를 환자 · 보호자가 충분히 이해하면 의료인에 대한 불만도 사라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같은 분석 · 대안 도출은 가해자 입장부터 헤아리는 우리나라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즉, 환자 · 보호자가 소통에 불친절한 의료진 · 병원에 불만을 가져 폭행을 저지를 수 있으니, 불만을 가지지 않도록 먼저 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진에 대한 큰 불만으로 폭행 충동이 일어나도 이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아니 드물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유년기 시절 유치원에서 폭력이 나쁘다는 것을 반복 학습을 통해 인지했다. 만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주먹으로 해결하는 인간 군상이 있다면, 그는 원체 생겨 먹길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위험 소지군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여 응급실 문화를 이해시킨다 한들, 들인 노력에 비해 유의미한 성과는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TV드라마 · 영화에서 이따금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응급실 폭언 · 폭행 장면과 관련한 대책도 다소 어처구니없다. 국민 인식 전환을 위해서는 의료진이 폭행을 당하는 장면과 더불어 해당 가해자가 벌을 받는 장면도 함께 나와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와 유사하게 살인 소재의 게임 · 영화를 접한 이용자가 실제 살인범으로 변모하여 신문 일 면을 장식하는 일은 극소 사례로, 드라마에 나오는 폭행 장면을 보고서 '저래도 문제없다'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그 나라 국민 수준을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편,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웹 브라우저로 검색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쉽고 간편하게 얻을 수 있다. 이 같은 유비쿼터스 시대에서 응급실 중증도 분류 체계, 응급실 이용 문화 등의 정보는 누구든 약간의 노력을 들여 간단한 검색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부 · 의료계는 가해자가 될지 모를 이들을 위해 밥상까지 차려서 손수 떠먹여 준다고 한다. 무슨 유치원생인지?

지금 이 시각에도 폭언 · 폭행 피해자는 각종 고통 속에서 시달리며 숨죽여 울고 있다. 만일 이러한 대안들이 잘 먹혀들어 재발 방지에 있어 큰 결실을 본다고 해도 폭행 가해자를 향한 씁쓸한 마음은 지울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지만, 여전히 미성숙한 국민성의 민낯은 이번 일련의 폭행 사건들로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부디 가해자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피해자 입장부터 헤아리는 최선의 대안이 조속히 도출되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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