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약제비 환수와 관련한 서울지방법원의 판결은 귀책사유와 위법성의 구별에 유의하지 않는 이론적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18일 제11회 심평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심평포럼은 지난해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원외처방 약제비 관련 법적쟁점’을 다루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이날 발제자로 나선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명순구 법학과 교수는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의 법적 타당성 검토’라는 발표를 통해 서울지방법원의 판결에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나섰다.
먼저, 명순구 교수는 지난해 서울지방법원 판결의 사안에서 문제되는 논점으로 원고의 처방행위가 피고에 대해 불법행위를 구성하는가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논점에 대한 판단에 있어 원고의 가입자에 대한 진료행위가 주의의무에 위배됐는가 여부가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명순구 교수는 “결론부터 말한다면, 원고의 가입자에 대한 진료행위가 주의의무에 위배됐는가 여부는 원고의 피고에 대한 불법행위 성립 여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면서, “지난해 서울지방법원의 판결은 두 가지 관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첫째, 서울지방법원 판결은 불법행위 성립요건으로서 귀책사유와 위법성의 구별에 유의하지 않는 이론적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명순구 교수는 “민법은 불법행위 책임의 성립요건으로서 귀책사유와 별도로 가해행위의 위법성을 요구하고 있다”며, “귀책사유와 위법성 요건의 관계에 대해 학설상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두 요건은 독립된 별개의 요건으로 관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원고의 가입자에 대한 의료행위가 주의의무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원고의 행위가 피고에 대해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명교수는 “주의의무 위반 여부는 귀책사유인 과실의 판단기준일 뿐이다. 그렇다면 법의 판결은 귀책사유의 판단기준을 들어 위법성을 판단한 셈이다. 이는 중대한 이론적 결함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둘째, 법원의 판결은 손해배상 책임관계의 당사자 설정에 있어 혼선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판결의 사안에서 책임법적 문제가 발생한 당사자는 원고 의료기관과 피고 건강보험공단으로, 피고가 원고에 대해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에 의한 상계의 항변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명순구 교수는 “법원으로서는 원고의 행위가 피고에 대해 불법행위를 구성하는가 여부를 판단해야 하며, 이때 판단해야 할 사항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서의 귀책사유와 위법성”이라며, “법원은 원고와 보험가입자 사이의 의료행위에 있어서 주의의무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판결당시 법원이 인용한 대법원 판결들은 모두 의료기관과 환자가 소송당사자인 사안으로서 의료고가실로 인한 의료기관이 미사살의 손해배상책임 또는 의사의 업무과실로 인한 형사책임에 관한 것이다.
명순구 교수는 “법원이 인용하고 있는 대법원 판결들은 의료기관과 건강보험공단의 불법행위 책임관계에 관한 사안이 아니다. 의료기관과 환자 사이에서 발생하게 되는 의료과실의 문제는 건강보험체계와 직접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며 판결에 문제가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또,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해 처방전을 발행한 원고의 행위는 피고와의 관계에서 귀책사유와 위법성 요건 등을 비롯해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면서 공단의 항변은 법적으로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