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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응급의학의사회, “을사년 공정‧상식 회복되는 모습 기대”

사상 유래 없는 정부의 의료비상사태와 의료농단이 해를 넘겨 역대 최장기간 진행되고 있습니다. 

준비도 대안도 없었던 막무가내 정책폭주로 수조원의 혈세와 미래세대 건강보험을 낭비했음에도 아직까지 해결은 고사하고 비상진료체계 유지조차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현장을 떠난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은 올해도 돌아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수험생들을 방패삼아 의대증원에 따른 정책 실패를 덮으려던 당국자들은 줄줄이 내란혐의로 수사를 받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도 어설픈 변명과 영혼 없는 사과로 일관하며 특정직역의 이익을 위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간의 의료농단 사태를 정리해 본다면,

1. 한계에 다다른 응급의료와 필수의료의 위기에 대해 의료 시스템의 개선과 발전은 의료계, 정부, 국민 모두가 원하는 바였습니다.

2. 하지만, 필수의료 지원과 인프라 개선을 요구한 의료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정부는 엉뚱하게도 의대증원과 필수의료패키지라는 잘못된 처방을 들고 나왔습니다. 반발하는 의료계와 젊은 의사들을 악마화하고 윽박지르면서 사태를 악화시켰고, 그 결과로 의료계, 정부, 국민 모두가 지금 아주 큰 희생을 치르고 있습니다.

3. 수조원을 때려 부었지만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인프라는 더욱 열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함에도 정부는 의료민영화를 위한 또다른 잘못된 정책을 국민들을 속여가며 서둘러 추진하고 있습니다.

4. 망가져버린 의과대학교육, 전문의수련 시스템으로 향후 양질의 전문의 배출이 불가능해질 것이며, 이에 따른 지속적 피해는 이후의 미래세대가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파멸한 의료시스템은 외면하면서 지금 현재까지도 자신들의 안위와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려는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의 행태에 깊은 우려와 분노를 표합니다. 지금은 망해가는 나라 곳간에서 수조원을 빼내서 본인들의 이권이 달린 숙원사업을 할 때가 아니라 서둘러 망가진 의료를 정상화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의료개혁 특별위원회라는 어용단체를 통해서 나라돈을 헐어서 상급병원 구조조정과 전문의 중심병원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하지만 현장을 전혀 모르는 공무원들의 탁상공론이고 어불성설입니다.

상급병원이 중증환자를 위한 진료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더 많은 인력, 시설, 장비가 투입돼야 합니다. 또한 경증환자의 분산을 위한 의료인프라 역시 확충되어야 함에도 아무런 준비와 대책이 없는 상황입니다. 단지 경증환자가 상급병원을 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정부가 생각하는 구조조정인 것입니다. 전문의 중심병원 또한 간호사 중심병원의 다른 이름이며 허상일 뿐입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전국 방방곡곡에 전문의들만 진료하는 의원과 병원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수련병원인 상급병원들을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모두 만들어 버리면 전공의 교육은 대체 어디에서 시킬 것이며 양질의 전문의는 어떻게 배출할 것인지 대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금은 이미 희생 없이 사태를 해결하기엔 너무도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환자들과 의료계, 이 일을 주도한 정부 또한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잘못된 정책을 중단하는 것만이 더 이상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망가져가는 의료계를 소생시킬 단 하나의 방법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지난 1년 간 정부는 사태의 해결을 위한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앞으로의 계획 또한 전무한 상태입니다. 의대증원을 강행한 윤석열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은 내란혐의로 구속의 기로에 서 있기에, 이제는 가해자는 없어지고 피해자인 의료계와 국민들만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거센 정치적 풍랑 속에 의료계의 문제들은 주요 이슈에서 밀려나 있는 상황입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대증원과 전공의복귀, 의료계혁을 분리하여 접근해야 가능합니다. 정부는 마치 의대증원이 의료개혁이며 이를 반대하는 젊은 의사들을 반개혁세력처럼 매도하고 악마화 하였습니다. 협상을 통해 일괄타결하여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현장으로 돌아오기 바라겠지만 그런 협상의 시간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 버렸습니다. 이제는 어떠한 협상으로도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을 현장으로 되돌릴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의대증원은 정부가 정치적 이해득실로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의료인의 수급은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영역이며, 국민건강과 의료시스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이기에 정치인이나 비전문가들이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되며, 국가적인 미래계획과 함께 전문가들의 연구와 합의를 통하여 정밀하고 구체적으로 계획되고 준비돼야 합니다. 의대증원이나 지역의대, 공공의대 신설 등은 비효율적으로 방만하게 건설되는 지역공항들처럼 특정지역과 이해관계자들의 욕심일 뿐 국민들의 건강증진과는 무관합니다. 

또다시 이번의 의대증원과 같이 잘못된 정책이 무책임하게 반복되지 않도록 확고한 수급관리대책과 재발방지를 위한 법적인 조치들이 강구되어야 합니다.

전공의 복귀의 문제는 전공의들이 복귀할만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미 젊은 의사집단은 정치적으로 각성했고, 불합리한 제도와 희생강요를 거부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근무시간을 줄여 편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닌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고 하는 일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미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을 통한 복귀는 불가능하고, 아예 처음부터 새로운 패러다임과 수련시스템 개혁을 통해 시간을 두고 해결해 나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의료개혁은 온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의료계도 원하는 바입니다.

의대증원은 의료개혁이 아닙니다. 의료민영화도 의료개혁이 아닙니다. 정부가 말하는 의료개혁은 실체가 없으며 이대로는 실패할 것이 분명합니다. 의료개혁의 주체는 의료계입니다. 정부가 망쳐놓은 의료농단을 뒷수습할 사람들도 역시 의료계가 될 것입니다. 진정한 의료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먼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어떤 의료계를 만들어갈지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고 거기에 따른 구체적인 계획을 다듬어가야 합니다. 저렴한 양질의 의료라는 것은 허상입니다. 지금껏 버텨온 신뢰라는 카드를 잃어버린 지금은 더 많은 비용으로도 회복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 12.3 계엄사태 당시 전공의들을 처단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의료계는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의료계를 지금껏 대화의 상대가 아닌 반국가세력으로 생각해왔던 정부의 민낯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어떠한 논리도 대화도 통하지 않고 이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그런 기본적인 의료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었으며 이는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입니다. 이미 상황은 의료계가 어떤 대책을 마련해도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 일을 해결해야 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정부입니다.

가장 먼저, 의료대란을 야기한 정책책임자인 보건복지부 장관, 차관은 즉각 경질해야 합니다. 잘못된 정책시행으로 혼란과 피해를 입은 의료계와 국민들에 머리숙여 사죄해야 합니다. 의과대학생들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방안과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합니다. 전공의들이 제대로 수련받을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마련해야 합니다. 향후 정부가 마음대로 의료농단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입법과 관리통제 방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의료계엄과 마찬가지인 의료비상사태 선포 이후 1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수 조원의 혈세를 투입했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최소한 정부가 의대증원을 추진한 노력의 절반만이라도 응급의료에 지원했더라면 우리 국민들은 아마도 훨씬 더 좋은 응급의료서비스를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도, 의료계가 바라는 것도 비상진료체계가 아니라 정상진료체계입니다. 응급의료체계가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유지되고 회복될 가능성이 있는가 역시 정부의 선택에 따라 달라집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응급의료는 축소소멸의 길로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정부는 아직도 열린 마음으로 의료계가 대화에 나설 것을 주장하지만, 지금껏 닫혀 있었던 것은 정부이며, 신의를 저버린 것 또한 정부입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반성하고 전향적인 태도변화를 보이지 못한다면 올해도 해결은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비상식적인 지도자의 선택이 어떻게 한 번에 나라를 망가뜨리는지 똑똑히 목도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극찬한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 회복력처럼 의료계도 국민들의 도움으로 회복될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의료계와 국민은 한 편이며, 정부에게 양질의 의료를 요구하는 공동의 목표를 함께 달성해 나아가야 합니다. 모두가 바라는 공정과 상식이 의료인들과 의료계에도 마땅히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최우선순위는 의료계를 정상화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올바른 의료개혁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젊은 의사들의 선도적 투쟁과 희생을 적극 지지하며, 끝까지 올바른 의료를 되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투쟁할 것입니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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