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말에 의사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일말의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필수의료를 살릴 법안은 없고 오히려 의사들을 억압하는 악법들이 이어지면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결국 포기와 분노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의료계를 망가뜨릴 필수의료 패키지라는 어이없는 정책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의 미래가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부 입장에서는 2020년의 4대악법 기습통과 시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국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의사집단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필수의료의 위기’가 필요했던 것이고, 앞에서는 필수의료 살리기로 포장하면서 뒤로는 ▲의료보험 재정 위기 ▲비급여 억제 ▲원격진료 추진 ▲검사 수가 인하 ▲실손보험 문제 ▲의료민영화 등 수많은 논란이 됐던 정책들을 슬쩍 무사 통과시킴과 동시에 지금까지 정책실패는 반대한 이익집단인 의사들의 탓으로 돌려서 일거양득을 꾀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가장 먼저 필수의료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전 세계 어디에도 필수의료라는 말은 없다.
대체 무엇이 필수의료인지 의료계의 논란이 가중됐고, 여러 필수의료 법안들도 통과하지 못한 것을 보면 아마도 그 말을 처음 꺼낸 당사자들도 이게 뭔지 잘 모르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결국 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살려야 한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이어왔다.
다음 순서로는 필수의료의 위기를 정의해야 하는데, 마침 발생한 코로나 판데믹 상황에서 감염 대응 인프라 부족으로 병원을 찾지 못한 구급차가 거리를 헤매는 이른 바 ‘응급실 뺑뺑이’라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소아과의 폐업증가와 전공의 수급저하로 ‘소아과 오픈런’이라는 현상도 연일 언론을 오르내린다.
기회를 잡은 정부는 이 두 가지를 필수의료의 위기라 정의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원래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적절한 대책은 나올 수가 없었으며, 결국 최종적으로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2000명 증원이라는 경악할만한 정책을 의료계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과거에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응급치료 이후 최종치료가 필요하면 환자를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데, 이미 과거에도 응급실 환자들은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기 위해 밤새 전화로 수용 여부를 문의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119 구급대의 이송 전 수용 가능 여부 확인이라는 법률조항과 만나서 병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헤매게 된 것이다.
단지 과거에는 응급실에서 ‘병원 뺑뺑이’를 했다면, 이제는 구급차에서 ‘응급실 뺑뺑이”라고 바꿔서 부르는 것뿐이지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
가장 큰 원인은 병원간 이송체계의 병목 현상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급병원의 최종치료 인프라가 여유롭게 확보돼야 하고, 그 전제 조건은 과밀화의 해소이다.
‘소아과 오픈런’은 진료를 위한 대기줄이 길다는 뜻으로 쓴 말인데, 정부는 국민들의 편익을 위해 반드시 이 대기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보험 없이 소아과 의원이 최소한 유지하려면 최소 하루 80-100명 이상 진료를 해야 하기에 특정 시간대에는 줄을 설 수밖에 없고, 오픈런이 없는 소아과 의원은 폐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대학병원의 긴 예약 대기시간과 1분진료는 이전까지 계속 의료계 압박과 비용증가 억제에 써먹어 왔었지만, 이제는 별 효과가 없었다고 판단했는지 이제는 그것을 필수의료 위기라고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정부에서 주장하는 이 필수의료의 위기라고 하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고 오래 전부터 의료현장의 전문가들이 주장했으나 정부에서 방관했던 문제들인 것이다.
이것을 정부 스스로 필수의료가 위기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낯 뜨거운 일이며, 지금까지 고칠 수 있는 수많은 시간과 기회들이 있었음에도 책임을 방기해 왔다고 자인하는 것이다.
2000명이라는 예상을 뒤엎은 의대정원 증가 숫자는 복지부 실무담당자들도 대부분 발표 당일에 알게 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실제로 장관과 차관도 2월 초까지 확정된 것이 없다고 했으니 말이다.
만약 이 정도의 증원을 처음부터 생각했다면 최소 10년전부터 준비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정부와 복지부는 이전까지 아무런 준비도 안 해온 것이 분명하다.
물리적인 강의실이야 어떻게 늘린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학생이 60% 늘려면 교수도 60% 늘어야 하는데, 교수 양성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본다면 단기간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인체 해부 실습은 지금까지 10명이 1조로 실습한다면 앞으로는 16명이 해야 하는 것이다. 질 저하도 없고 2-3개월 안에 준비도 가능하다는 복지부의 설명은 국민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인 것이다.
의사들과 공무원의 의대 증원 근거에 대한 논란을 생각해보면 이 두 집단이 서로에 대해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의학이라는 특수성을 생각해보면 의료계가 요구하는 강력한 근거 수준은 매우 높고 완고한 결과여야 하며 이것이 증원에 대한 이해의 필수조건이다.
복지부는 처음에 의정협의체에서는 마치 본인들의 근거가 매우 과학적인 여러 연구들인 것처럼 홍보해 왔었다.
그러나 막상 이야기하는 근거들은 정부의 입맛에 맞을 특정집단의 연구용역이었고, 그것 마저도 공개하지 못하고 이제는 그냥 참고만 했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
최소한 의대증원이라는 중대한 사안에는 당연히 보다 높은 수준의 근거와 합의가 필요하다. 최소한 장기간의 과학적 연구와 절차로 의료계를 이해시키려 노력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이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 차이를 무시한 복지부는 의료계를 이해하지 못했다기 보다는 동등한 협상의 대상자로 애당초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무리한 정책에 묵묵히 따르지 않는 의료계의 결정을 강제로 진압하려는 과정에서 서로의 감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처음부터 의료계가 극한투쟁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의정협상의 와중에 총선을 앞두고 명절 바로 전 기습적으로 무슨 군사작전 하듯이 발표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여기에 대한 정당한 항의를 마치 일부 적폐세력의 과격한 행동처럼 취급하며 강력한 처벌을 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유래가 없는 사직서 제출금지와 수리금지, 이제는 단체행동 교사금지 명령까지 도대체 복지부 장·차관의 권한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강제명령들을 남발하다가 악어의 눈물을 보인 감성편지에 이르러서는 젊은 의사들의 마지막 남은 참을성마저 거두게 되었다.
정말로 아쉬운 점은 최소한 의료계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함께 하고자 했다면 이러한 파국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의료계는 절대 파국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처럼 많은 전공의와 전문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거리에서 부르짖고 있는 이유는 어떻게든 의료계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지 의료계를 망가뜨리기 위함이 아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정부의 정책 폭주에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아무 죄가 없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이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원칙이 있다. 서서히 나빠지는 만성질환은 오랜 치료기간이 필요하다.
이른바 정부가 말하는 이른바 필수의료의 위기는 오랜 기간 우리나라 의료계의 문제들이 누적된 결과이며 절대로 한 두 가지 정책으로 단기간에 해결이 불가능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필수의료 문제를 자기들이 단기에 해결하겠다고 저마다 무리한 정책을 추진한다면 해결은 고사하고 문제들을 양산하며 의료계의 왜곡만 더욱 심해질 것이다.
환자와 의사는 믿음의 계약으로 의료행위가 이뤄진다. 이들을 갈라치기 하여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얄팍한 시도는 진실이 드러나면 결국 국민들의 강력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의사들을 믿지 못할 나쁜 집단으로 만들어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 결국 그에 띠른 모든 피해는 국민들이 지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복지부는 눈앞의 정치적 계산이 아닌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한 백년지대계 의료정책을 당사자인 의료계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이며, 그 시작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필수의료가 아직도 뭔지 모르겠지만 의료를 진정으로 살리고 싶다면, 적절한 대책부터 함께 논의하자.
강압적 협박으로 의료계를 굴복시켜 설령 정부가 이긴다고 한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문성을 존중하고 동반자의 입장으로 처음부터 다시 논의를 시작할 것을 진심으로 촉구한다.
지금껏 매번 정부의 정책은 현장을 무시한 탁상공론으로 비판 받아왔다. 이러한 비합리성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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