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사회가 9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문가평가제(이하 전평제) 시범사업 출범식을 가졌다. 이어 10일 오후에는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보건복지부와 전평제 업무협약식을 갖고, 기자회견도 하면서 무게를 싣는 모양새다.
이번 전평제 시범사업은 2차다. 앞서 재작년과 작년에 진행된 1차 시범사업은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실패한 시범사업이라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의료계에서도 1차 사업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난 3월11일 가진 서울시의사회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시의사회 박명하 전문가평가단 단장도 “그간 1차 전평제 시범사업은 광주 울산 경기 3곳 지역의사회가 했다. 그나마 경기는 중도 포기했다. 1차 시범사업 결과를 보면 광주 울산의 작년 실적이 없었다. 재작년에는 3건, 4건이었다. 제가 보기에도 미흡한 시범사업이었다.”고 지적했었다.
1차 시범사업은 지난 2016년 11월21일 경기도·광주·울산지역 3개 의사회가 시작, 수행했다. 하지만 경기도의사회는 작년 4월 시범사업에서 빠진 바 있다.
그런 만큼 의협 서울시의사회 등이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연이어 공식 행사를 갖는 등 이번 2차 시범사업의 성공을 위해 무게를 싣고 있는 것이다.
금년 5월부터 시작되는 2차 전평제 시범사업은 성공을 위한 조건에 관심도 많다. 9일 열린 서울시의사회 전평제 시범사업 선포식에 25개구 보건소장과 25개구 의사회장이 전원 빠짐없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간담회에서도 많은 우려와 제안이 있었다.
대별해 보면 ▲2차 전평제 시범사업의 성공지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 ▲이 사업의 목적이 의협이 자율 면허관리권, 즉 자율징계권을 복지부로부터 가져오는 것인데 담보되는 것인지? ▲면허관리권을 행사하려면 변호사법처럼 의사법을 단독법으로 제정해야 하는데 가능한 것인지? 3가지다.
9일 서울시의사회 전평제 시범사업 선포식에 참석한 A구의사회 회장은 "복지부가 1차 시범사업을 건수가 적다며 실패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단순히 건수만으로 성공 여부를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성공지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건수지표 외에도 노력지표 등 성공지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성공지표를 개선해서 2차 전평제 시범사업이 성공했다고 평가된다고 해도 궁극의 목표인 면허관리권을 의협이 가질 수 있다는 당국의 담보가 있냐는 의문이 남는다.
B구의사회 회장은 "(그간 구의사회에서 어찌 됐든 회원을 보호했다. 그런데 구의사회가 시범사업을 하면 회원을 보호할 수 있을까?) 회원들이 많이 걱정한다."면서 "하지만 시작했으니 (성공해야 한다.) 잘하면 의협이 자율 면허관리권을 얻을 수 있나?"라고 질의했다.
이어 "이 자리에 (복지부 면허관리 주무과의 손호준 의료자원정책과 과장) 계시니까 말씀드린다. 왜냐면 예전에 의협이 의사면허신고 업무를 복지부로부터 위임받으면서, (이와 동시에) 의협이 회비를 걷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복지부가 불허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손호준 과장은 확답보다는 전평제의 취지가 그런 목적이라고 중립적으로 답했다.
손 과장은 "변호사법은 아예 징계법으로 변호사협회에 위임하고 있다. 그런데 의사의 경우는 징계를 의사법이 아닌 의료법으로 하고 있다."면서 "외국도 하나의 법으로 면허 직역에 징계권을 부여한다."고 했다.
이어 "자율징계권을 준다는 확답은 어렵지만 (전평제 2차 시범사업은) 그런(의협에 자율징계권을 준다는) 취지로 하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손 과장의 말 중 행간을 읽어 보면 결국 의협이 면허관리를 포함하는 자율징계권을 가져오려면 의료법에서 의사법으로 단독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사안은 최근 간호법 물리치료사법 등이 단독법 제정안으로 국회에 발의되고 있어 의협으로서는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될 전망이다.
장기적으로 의료법에서 의사법 단독법 제정으로 자율징계권을 가져오느냐 아니면 타 직역의 의사 직역 침범을 막기 위해 타 직역의 단독법 제정을 막아야 하느냐의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타 직역의 단독법 제정은 직능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취지에서 막을 수 없다면 의사법 단독법 제정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현실적인 문제의식으로도 이어지는 사안이다.
이 고민은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미 여러 의협 관련 공식 행사에서 저변에 흘렀던 고민이다.
앞서 지난 1월24일 의협 주관으로 열린 '의사면허관리기구 설립을 위한 의료계 토론회'에서도 이런 고민이 있었다.
박형욱 교수(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대한의학회 법제이사)가 '의사면허관리기구의 법적 측면'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의사만 면허관리기구를 도입할 수 있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박 교수는 "의료법 제2조 의료인 규정에서 '이 법에서 의료인 이란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를 말한다.'라고 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의료인을 모두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의 특징과 관련된 것이다.
현재 의협의 입장은 의료법에서 안경사법 간호법 물리치료사법 분리 반대다.
이우용 의협 학술이사는 "의료법 2조에 의료인으로 의사 간호사 등이 규정돼 있어 의사만의 면허관리기구 설립이 어렵다며 분리를 애기했다. 하지만 의협의 기본입장은 분리 반대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얘기는 의료인을 분리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각 의료인의 단독법 제정으로 귀결되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16년 의협 39대 추무진 집행부 당시에도 직역 다툼을 법으로 해결하고자 했으나, 이런 부작용으로 포기했다.
그해 7월21일과 8월29일 연이은 대법원의 ‘치과의사의 보톡스와 레이저 시술은 의료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환송 및 무죄확정 판결 이후 의과 한의과 치과 등 의료인간 영역다툼이 확산될 조짐이었다. 이에 의협은 의료법에 직역간 영역을 규정하는 의료법 개정을 검토했으나, 오히려 단독법 제정 등 문제가 더 복잡해 질 것을 우려해 포기했다.
결국 의협은 안경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이 의료법에서 떨어져 나가 단독법을 만들면 의사 면허권을 제대로 방어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 막 출범한 의협의 전평제 2차 시범사업이 성공하려면 이러한 여러 난제를 잘 극복해야 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