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불필요한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18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5개월, 현장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환자의 의사추정,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로 주제발표를 맡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 허대석 교수가 이 같이 말했다.
환자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해 인간의 존엄 ·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인 호스피스 ·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은 2016년 초 거의 만장일치에 가깝게 국회를 통과했다.
허 교수는 "당시 의원들이 법의 내용을 전부 이해하고 찬성을 했을지 의문이지만, 그 누구도 고통스러운 임종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이 표결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7월 2일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34,089명이며,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는 6,042명이다. 허 교수는 "제도 시행일부터 147일간 이 법을 지키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추정해봤다. 2016년 기준 1년 28만여 명이 사망하는데, 이를 1일로 환산하면 5백 명 정도가 사망한다. 즉,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사람은 시범기관을 포함해도 8.1% 수준이며, 이행서는 5월 28일 기준 13.9%,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7월 2일 기준 0.49%이다."라고 언급했다.
연명의료결정 이행 통계를 살펴보면, 법정 서식을 본인이 직접 작성한 비율은 34.6%로, 3분의 1이다. 나머지는 가족 2인 이상 추정이나 가족 전원에 의해 작성된다. 서울대학교병원의 경우 15.1%가 본인이 직접 법정 서식을 작성했고, 3분의 2는 가족이 작성하고 있다.
허 교수는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이 법을 만들었는데, 정작 자기가 결정하는 비율은 10% 미만이다. 가족에 의한 추정 · 대리결정이 80~90%에 육박한다."면서, "법정 양식을 지키는 10~20% 그룹은 대부분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 병원이다. 최근 윤리위원회를 설치한 서울 소재 대형 병원에 물어보니 내부 지침을 안 따라도 된다고 했다. 해봐야 골치만 아프며, 안 지켜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법이 공중에 떠 있는 상태이다."라고 지적했다.
환자에게 임종이 임박해오고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고통을 주는 행위여서 환자 · 보호자들이 꺼린다고 했다.
허 교수는 "임종기 이전인 말기에 연명의료를 결정해야 하는데,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해야 한다. 그런데 환자에게 이를 말하는 것 자체가 고통을 주는 행위라며 괴롭히지 말라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환자 의식이 점점 더 떨어지며, 의식이 떨어진 시점에서 의사 결정이 일어난다."면서, "생명에 대한 가치관을 얘기하는 환자는 거의 없다. 호스피스 전원을 희망하는 환자 대부분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위해 앰블란스를 타고 휠체어에 실려 온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 의료진 중 우리나라만 임종기 · 말기 구분을 한다고 했다.
허 교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말기와 임종기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우리나라 의사는 구분하여 결정한다. 일본의 경우 말기 · 임종기를 구분하지 않고 인생의 최종 단계에 결정하라고 돼 있다. 우리나라는 말기 · 임종기를 억지로 구분하게 돼 있는데, 의학 교과서에 정의조차 안 돼 있어 의사들이 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연명의료 관련 서식은 기본 4~5장을 작성해야 하며, 전산등록까지 마쳐야 한다.
허 교수는 "한 사람당 서식을 기본으로 4~5개를 작성하며, 전산등록까지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 1장이다. 우리나라만 너무 복잡하다."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연명의료정보 처리 시스템에 작성 · 등록해도 이행 기관에 입원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서울대병원에서 암 말기 환자가 전산등록을 마치고 요양병원에 입원했는데, 임종기가 임박했지만 요양병원이 등록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류 확인을 못 했다. 이 때문에 환자가 다시 서울대병원으로 실려 왔다."라고 말했다.
법정등록기관이 아닌 의료기관에서는 열람을 못 하며, 이행도 못 한다고 했다.
외국의 경우 대리 결정 시 서명을 요구하지 않고, 의사 부재 시 간호사가 의료인을 대표하여 양식을 유효하다고 인정할 수 있다. 양식을 단순화하여 현실에 맞게끔 접근하고 있으며, 대만의 경우 식물상태를 염두에 두고 법을 구현하고 있다.
허 교수는 "우리나라는 대만보다 18년, 일본보다 11년 뒤쳐졌다. 우리와 비슷한 문화를 지닌 일본을 살펴보면, 본인 결정이 어려울 때 환자 입장에서 뭐가 최선인지를 가족 · 의료진이 상의해 결정한다. 레시피가 단순하여 아무 쟁점이 없다."라고 했다.
끝으로 허 교수는 "우리는 연명의료결정을 추정 · 대리로 구분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가족 범위는 우리나라는 직계가족이지만 대부분 국가는 친족 관계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범위의 사람을 포함하며, 대리인 제도 등을 두고 있다."면서, "자기결정권에는 식물인간을 염두에 둬야 한다. 환자가 불필요한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를 염두하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