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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다사다난한 정신과 병동, "빵에 칼을 숨겨오겠다"

편견으로 발현된 지역 이기주의로 교도소에 내몰리는 정신질환자

지난해 12월 31일 발생한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과 관련하여 안전한 진료 환경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으나 정작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은 개선될 기미가 없고 오히려 한 걸음 더 퇴보하고 있다.

편견과 낙인이 존재하는 한 정신과 치료는 진행될 수 없고, 치료가 필요한 정신과 환자들은 상태가 악화해 결국 교도소로 내몰리게 된다. 환자가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 정부 예산 지원을 비롯한 편견 해소가 절실한 시점이다.

29일 오후 2시 성균관대학교 히포크라테스홀에서 열린 대한환자안전학회 신년 포럼에서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준호 교수(이하 최 교수)가 '정신건강의학 환경 현황과 과제' 주제로 발제했다. 



◆ 정신과 환자의 흉기 위협, 외래 多 · 86%는 신고 無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604명의 전문의 · 전공의 회원을 대상으로 금년 1월 4일부터 진행한 폭행 실태 웹설문조사에서 임상 경력 기간 경험한 위협의 경우 △폭언 · 협박은 11.6회 △손찌검 · 구타는 2회 △흉기는 1.2회 △기타 위협은 5.3회로 나타났다. 

최근 1년간 평균 위협 횟수는 폭언 · 협박이 2.4회로 가장 많았다. 폭언 · 협박은 대개 개인의원에서 많이 발생하며, 중증 환자가 많은 종합병원에는 폭력이 더 심한 형태로 나타난다. 폭언 · 협박에서 외래 치료가 필요한 비율은 14.2%지만, 90%는 폭행 후 신고하지 않았다. 

손찌검 · 구타는 무려 99%가 신고하지 않았다. 신고 비율이 가장 높은 사례는 흉기 등 위험물로 위협한 경우로, 14%가량이 신고 조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폭언 · 협박 정도는 정신과에서 흔히 있는 일이며, 의사 대부분은 환자가 그럴 수도 있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심각한 협박이 발생해도 이를 문제 삼는 것 자체가 공감을 살 수 없기 때문에 보통은 감수하고 넘어간다."고 말했다. 

정신과 병동에서는 협박 · 폭행 등의 사건이 다사다난하게 발생한다. 최 교수는 한양대 구리병원에서 입원한 알코올 중독 환자 A씨(51)를 일례로 언급했다. 

알코올 중독 환자 대부분은 입원 시 의사와 거래하는데 의사는 거절 시 청와대 민원 등 보복을 두려워하여 요구를 승낙한다. 알코올 중독 · 우울감을 호소했던 A씨는 월 1회 외출을 약속하고, 2017년부터 1년간 입원했다. 우울감은 입원 2~3주 만에 호전됐으나 여전히 음주를 갈망하고 퇴원 준비가 아직 안 됐다는 이유로 A씨는 입원을 지속했다. 

A씨는 입원 2달 후 병동 안에서 대장 역할을 하며 간식을 안 준다거나 자신에게 막말했다는 이유로 타 환자를 폭행하고 액팅 아웃(acting out,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등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갈등을 분출하는 정신과적 증상)을 시작했다. 

최 교수는 "A씨는 갱(Gang, 패거리)을 구성하여 스스로 대장 노릇을 했다. 병원에는 이를 알면서도 직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통제할 수 없다. 외출 횟수는 월 1회 이상으로 증가했고, 물품 반입 요구도 늘어났다."며,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치료진과 제지하는 치료진을 구분하여 다르게 행동했다. 좋은 의사와 나쁜 의사를 구분하는 분리(Splitting) 시도가 발생한 것이다. 치료 후반에는 치료진에게 구두로 위협하거나 협박 편지를 보내고, 약물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퇴원을 앞둔 A씨는 외출 후 라이터 · 커피믹스 종이상자 안에 커터칼 두 개를 숨겨서 귀원하려 했으나 소지품 조사 중에 발각됐다. 이후 A씨는 타 환자에게 '빵에 칼을 숨겨오겠다'고 얘기했고, 해당 환자는 이를 의료진에게 알리며 무섭다고 호소했다. 결국 A씨는 알코올 환자 재활 프로그램인 '다시서기 동행'으로 퇴원했다.

◆ 일반인 강력범죄는 3만 5,139명, 정신질환자 강력범죄는 781명

故 임 교수 사건을 기점으로 수많은 임세원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조울증 환자로 알려진 故 임 교수 사건의 피의자 B씨는 해당 병원에서 30일가량을 입원하고 1년 후 악화된 상태에서 병원을 찾았다. 

최 교수는 "B씨의 행동이 워낙 거칠어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보호자는 치료를 포기했다. 대개 입원 후 보복이 가해지는 경우가 많아 두려운 보호자는 의사에게 매달린다."며, "이번 사건은 치료권에서 이탈한 환자가 있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이 때문에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故 임 교수는 생전 안전한 진료 · 완전한 치료를 강조했다. 그러나 대한조현병학회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기사는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조현병에 대한 포비아가 많다."며, "2003년 2월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의 경우 대부분은 방화범을 정신질환자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한쪽 팔 · 다리가 불편한 뇌 병변 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 외에도 유영철 · 김동민 · 정남규 · 채종기 · 정성현 등 이름이 밝혀진 극도로 잔혹한 범죄자의 정신질환은 전부 부정됐다."고 언급했다.

2017년 5월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면서 정신병원 자의 입원 · 비자의 입원 비중은 역전됐다. 지난해 4월을 기준으로 자의 입원은 62.9% · 비자의 입원은 37.1%로 나타났고, 전체 입원 환자 수도 2016년 말 6만 9,162명에서 2018년 4월 기준 6만 6,523명으로 3.8%(2,639명) 감소했다. 

호주 멜버른 대학교 패트릭 맥게리(Patrick McGorry) 교수는 지난해 7월 호주 일간지 '헤럴드'에 전 세계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호주의 정신건강 관리시스템에 대한 한 편의 글을 기고했다. 맥게리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모범이 되는 호주의 정신건강 관리시스템의 잘못된 퇴원 · 관리 문제를 지적했다.

맥게리 교수는 "호주에서는 매일 8명이 자살하고, 4백만 명은 매년 정신질환을 앓는다. 호주에서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69만 명이지만, NDIS(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 국립 장애 보험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10%도 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지역사회 정신건강관리에서 손을 떼고 투자를 중단하자 정신질환자는 응급실로 밀려들었고, 거리 · 감옥은 이들로 넘쳐났다. 응급실은 정신질환자에게 적합한 곳이 아니다. 초조하고, 자살충동을 느끼고, 정신병적 상황을 겪는 정신질환자는 응급실에서 우선 치료순위에서 밀린다."고 지적했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매우 낮은 수치를 기록한다. 2015년 정신질환자 강력범죄 통계를 보면, 전체 인구 5,152만 9,338명 중 인구 10만 명당 범죄자 수는 68.2명이며 강력범죄자는 3만 5,139명에 달한다. 반면, 전체 정신질환자 231만 8,820명 중 정신질환 범죄자는 인구 10만 명당 33.7명 · 강력범죄자는 781명으로, 일반인의 절반 이하 수준에 머문다.

최 교수는 "현 정신건강복지법은 환자 치료에 대한 과중한 책임을 보호자 · 의료진에게 부여한다. 그 결과, 관련 서류를 주말을 포함한 3일 내 구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39명이 무더기로 기소됐다. 이러니 보호자 · 의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신과 환자에게는 병원을 떠나서 재활을 위해 사회로 가는 탈원화 과정이 있다. 환자의 탈원화를 돕기 위해 지난해 3월 수원시에서는 6곳으로 나뉜 정신건강센터를 하나로 통합하여 팔달구 매산로 일대에 통합센터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매산초등학교 학부모 · 주변 상인들은 교내에 정신질환자가 난입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이유로 센터 설립을 반대하는 전단을 배포하고 현수막을 내걸었다.

매산동 주민이 수원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최근 수원지방법원은 주민 의견 청취 절차 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설립 결정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편견 · 낙인이 계속 있는 한 정신과 치료는 진행될 수 없다. 정신과 진료가 퇴보하고, 환자 · 일반인 간 조우가 없으면 편견은 쌓인다. 그렇게 되면 결국 환자가 갈 곳은 교도소뿐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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