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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故 임세원 교수 추모하는 醫…정신건강복지법이 치료 부재 야기?

"적절한 시기에 치료받았다면 이러한 상황이 오지 않았을 수도"

12월 31일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47)는 진료를 마치고 나오던 중 환자 A씨(30)가 휘두른 흉기에 가슴을 찔려 중상을 입었다. 임 교수는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오후 7시경 사망했다. 

임 교수를 살해한 A씨는 조울증 환자로, 2015년부터 약 1년 반을 해당 병원에서 입원한 바 있으나 퇴원 후 외래 진료를 받지 않았다. 의료계에서는 2017년 5월 시행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이 환자의 입원 치료를 어렵게 하여 이 같은 사건을 야기한 게 아니냐며 조심스럽게 가능성을 제시했다.

현 정신건강복지법에서는 치료 · 요양이 필요하고 자 · 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의 비자의적 입원에 대해 △보호 의무자 2인의 동의 △서로 다른 의료기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인의 진단 △입원적합성 심사위원회 · 정신건강복지심의위원회 등 심의 절차를 거치도록 한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1일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을 두고 일부에서는 적절하게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의 공격성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 된 게 아니냐는 식의 추측을 제기한다."며, "정신질환자의 의료 이용 문턱이 더 낮아져야 한다. 정신 질환에 대한 적극적 치료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점에서 이를 어렵게 하는 사회적 인식 · 불합리한 제도 개선이 매우 시급하다."라고 했다.

같은 날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애도 성명을 발표하며 "의사에게 안전한 치료 환경을 보장하지 못하고, 환자에게는 지속적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정신보건의료 제도하에서 이러한 위험은 온전히 정신과 의사 및 치료 팀 스텝이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남아 있다."며, "본 회는 이러한 문제 · 해결책에 대한 섣부른 논의를 지양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완전하고도 안전한 치료 시스템 마련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8월 국회 토론회에서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정신보건이사는 "당뇨가 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우리는 당뇨를 위험한 병으로 보지 않는다. 정신질환의 경우 질병과 무관한 문제로 오해받는 게 안타깝다."며, 정신질환자 범죄가 정신장애가 원인인 마냥 보도하는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기사 내용이 곧 범죄자 낙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수많은 추모 · 애도의 성명이 1일에 이어 2일 발표됐다. 대한병원협회는 성명을 통해 "이번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면 의료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와 더불어 안전한 진료 환경 조성을 위한 전 사회적 관심 · 정책 당국의 구체적 · 근본적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의료법 개정을 통한 법률적 보완 조치와 정부 · 민간 공동주관하에 범사회적인 '안전한 병원 만들기' 캠페인을 벌여 의료기관 내 폭력을 근절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의원협회는 △일반 진료 현장에서의 폭행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 △전문가 의견이 제대로 반영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의사자로 고인 지정을 촉구했다. 대한의원협회는 "가중 처벌 법안을 응급실 외 일반 진료실에도 확대 적용하고, 위험이 예상되는 진료 환경 내 안전장치가 법적으로 마련돼야 할 것"이라면서,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병원 · 거리에서 묻지마식으로 남에게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정신과 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데, 이는 정신과 치료를 더 어렵게 만들고 환자 인권을 더욱 깎아내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가중처벌법 통과 ·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요구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은 환자에 의한 폭행을 원천적으로 예방 · 차단할 수 있는 장치와 안전한 의료 환경 조성을 위한 제도 마련을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폭행 위험 방지를 위한 △콜벨 설치 △CCTV 설치 △폭행 위험장소에 보안요원 의무 배치 · 경찰 배치 지원 △1인 근무제 지양 △인력 충원 등의 조치를 주장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 대한간호조무사협회도 공동성명을 통해 "원내 안전장치 · 응급실뿐만 아니라 진료 과정 중 발생하는 모든 폭행 사태의 처벌에서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 등 실질적 제도적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국회에 계류 중인 '일반 진료 현장에서의 폭행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하루빨리 국회를 통과해 미약하나마 이러한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 단체는 공동으로 '임세원법 제정 추진 국민청원'에 적극 동참하고,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진료 예절 캠페인 전개를 천명키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 치료를 중단한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지원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지원 방안의 주요 내용은 △퇴원환자 방문 관리 시범사업 도입 △정신과적 응급상황 대응 매뉴얼 발간 △지역사회 정신질환자 보건 · 복지 서비스 연계 강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등이다. 특히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정신의료기관에서 퇴원하는 환자 정보를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하고 △지역사회 정신질환자에 대한 외래치료명령제도를 강화하고자 했다. 

현재 퇴원 정신질환자 정보 연계 관련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며, 외래치료명령제 활성화 법안은 발의 예정으로 국회에서 협의 중이다. 지난 27일에는 응급실 내 의료인 폭행 방지를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진료 현장에서의 폭행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이번 故 임세원 교수 사건과 관련하여 보건복지부 ·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1일 회의를 열어 △일선 정신과 진료현장의 안전 실태 파악 △진료환경 안전 가이드라인 마련 및 이에 필요한 제도 · 재정 지원 방안 협의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 김지민 봉직의협회장은 협회 페이스북에서 △강제입원제도 폐지 및 사법입원제도 도입 △지역사회 내 돌봄 시설 · 인력 확충과 더불어 △환자 증상 악화 시 신속히 이송할 수단 마련을 촉구했다. 

김 협회장은 2일 메디포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건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정신건강복지법과 인과 관계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많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적절한 치료를 위한 법 · 제도적 개선을 정신과 의사들이 주장해왔으나 아직은 개선된 부분이 없다.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중증 정신질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는 게 어려워졌고, 지역사회에는 환자 돌봄 시설 · 치료 연계 시스템 마련 및 인력 확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의사 · 환자 안전을 위한 진료 환경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병의협 정재현 정책이사는 "예전에는 환자가 조현병 · 양극성 장애 증상이 조절이 안 된다고 판단되면, 폭력적 성향이 드러나기 전에 입원을 많이 시켰다. 그러다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이러한 환자를 쉽게 입원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환자 입원의 가장 큰 이유는 환자 가족 · 주변인 피해 방지이다. 0.1%도 안 되는 그 범죄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의사가 의학적 판단에 의해 입원치료를 자율적으로 하는 환경이 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다 보니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 정책이사는 "의사들은 환자가 폭력적이라고 해서 진료를 거부할 생각이 전혀 없다. 정신과 환자 입원 · 치료에 있어서 의사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해야 이런 문제가 안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정신과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을 찍어버리면 움츠러들어 진료권 밖으로 숨게 돼 병이 제어되지 않아 이상한 행동이 발현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범죄자라는 인식을 조장하는 행위를 언론이 지양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이승우 회장은 한 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로서 故 임 교수에 대해 애도를 표했다. 이 회장은 "A환자가 어떻게 병원에 흉기를 들고 올 수 있었을까? 혹여나 이 사건이 환자 상태 악화로 인한 것이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았다면, 이 같은 상황은 초래되지 않을 수 있다."며, "이번 사건으로 정신과 환자에 대한 편견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정신과 의사가 아닌 전체 의사 입장에서 보면, 의료기관에 흉기를 들고 오는 상황 · 인식 자체가 잘못돼가는 건 아닐지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방영된 JTBC 드라마 'SKY 캐슬'에서는 수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칼을 들고 의사를 위협하는 장면을 연속으로 내보냈다. 이와 관련하여 의협 측은 이번 사건이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며, 의료진에게 폭언 · 욕설을 하거나 진료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력을 써서 항의해도 된다는 식의 인식을 시청자에게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회장도 "의사를 위협하는 장면이 방영되는 것 자체가 사회의 그릇된 인식이 반영됐다는걸 방증할 수 있다. 그런 상황 자체가 안타깝다. 병원이라는 공간에 그런 일이 없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정부 · 의료계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며,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입원 치료가 좀 더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법에서는 퇴원 이후 보건소 등에서 관리를 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현장에서 과연 그런 지원이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신과 환자는 퇴원하면 끝나는 게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한편, 병의협에 따르면 故 임세원 교수는 병원이 외래 진료를 마감해도 늦은 시간까지 남아 진료실에서 환자를 돌봤으며, 환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 '보고 듣고 말하기'라는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70만 명의 생명사랑지킴이를 양성했다. 또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는 저서를 집필해 삶 · 죽음의 경계에 있는 많은 이를 구하고자 했고, 사건 당시에는 같이 일하는 간호사가 피신했는지를 살피기도 했다. 

故 임 교수는 사망하기 보름 전 자신의 SNS 계정에 "환자와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는 퇴원할 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새 가득 찼다. 그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고, 나 또한 그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 경험은 전공의들에게 전수돼 더 많은 환자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길 기원한다."며,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크고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는 글을 게시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故 임 교수의 발인은 1월 4일로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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