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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사망 전까지 환자 걱정…애도 표한 의사들 "섣부른 논의 지양"

"고인 덕에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었던 여러 환자의 편지가 갈 곳 잃어"

12월 31일 서울 강북구 소재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하 A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하여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하 의학회)는 1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故 A교수를 애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완전하고도 안전한 치료 시스템 마련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나갈 것

의학회는 1일 발표한 첫 번째 성명서에서 "2018년 마지막 날 저녁에 날아온 청천벽력과 같은 비보에 모든 의학회 회원은 비통한 감정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우리가 이러한데 남편 · 아버지를 잃은 유족 심경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해온 동료 마음은 어떠하겠는지. 고인이 돌보던 환자가 받을 심적 충격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故 A교수를 잃고 크나큰 슬픔에 잠겨있을 유족 · 동료와 그 고통을 함께하고자 한다."고 입을 열었다.

故 A교수는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 자신이 통증으로 인한 우울증의 고통을 경험한 치유자로, 본인에게는 한없이 엄격하면서 질환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를 돌보고 치료하며 그들의 회복을 함께 기뻐했던 훌륭한 의사이자 치유자였다고 했다.

의학회는 "고인은 직장정신건강 영역의 개척자였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국형 표준자살예방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의 개발책임자로, 우리나라의 자살 예방을 위해서도 선도적 역할을 수행한 우리 사회의 리더였다."며, "의학회는 다시 한번 고인 ·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를 드리며, 별도의 추모 과정을 통해 고인을 뜻을 애도 · 기억하는데 마땅한 일을 하겠다."라고 했다.
 
진료 현장은 질병의 고통 · 슬픔을 극복하는 아름다움이 넘치는 희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재발 · 회복의 반복을 일선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치료 현장은 결코 안락한 곳이 아니라고 했다.

의학회는 "의사에게 안전한 치료환경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환자에게는 지속적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정신보건의료 제도 하에서 이러한 사고 위험은 온전히 정신과 의사 · 치료 팀의 스텝이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남아 있다."라면서, "이 일은 정신과 환자를 위해 일하는 모든 이가 겪을 수 있는 비극이었다. 의학회는 이러한 문제와 해결책에 대한 섣부른 논의를 지양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완전하고도 안전한 치료 시스템 마련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나갈 것"이라며 A교수의 명복을 기원했다.

다음은 고인이 사망하기 보름 전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글이다. 

얼마 전 응급실에서 본 환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신 선생님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긴박감과 피 냄새의 생생함과 참혹함이 주된 느낌이었으나 사실 참혹함이라면 정신과도 만만치 않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자기 삶의 가장 힘겨운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한가득 입원해 있는 곳이 정신과 입원실이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 상황에 부닥쳐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중에서도 정말 너무너무 어려운, 그분의 삶의 경험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분이 다른 의사들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그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 이렇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 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새 가득 찼다. 

그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 또한 그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

의학회는 "과연 예쁜 상자를 샀는지 모르겠다. 고인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찾을 수도 있었던 여러 환자의 편지는 갈 곳을 잃었다."라고 덧붙였다.

◆ 학회 홈페이지에 추모 공간 개설, 현황 조사 · 정책 방안 논의 · 추진할 것

2일 발표한 두 번째 성명서에서 의학회는 "비보를 전해 들은 지 3일째다. 이 시각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부검이 진행 중이다. 너무나 슬프다. 그리고 이 슬픔은 조만간 화로 바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라고 인간의 기본적 감정을 거스를 수는 없다. 다만 그 화의 에너지가 헛되이 사용되지 않고, 고인의 유지를 이어갈 수 있는데 사용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했다.

△안전한 진료 환경을 조성하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 ·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유족 입장이 고인의 동생을 통해 전달됐다고 했다. 유족은 이 두 가지가 고인의 유지라고 생각하고 선생님들이 이를 위해 애써줄 것을 부탁했다.

의학회는 "고인의 유지를 이어나가기 위해 앞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면서, "현 이사장인 서울대의대 권준수 교수 · 차기 이사장인 한양대의대 박용천 교수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학회 홈페이지에 추모 공간을 개설해 전 회원이 임 교수를 애도할 수 있게 했다. 동시에 안전하고 완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현황 조사 · 정책 방안을 논의 ·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의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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