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는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것은 국가 보건의료체계를 뒤흔들고 국민의 건강을 위협함으로써 의료 대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원격의료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는 원격의료 관련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의견서를 29일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29일 보건복지부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 하였으며, 11월 29일까지 의견을 수렴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의협은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상세하게 반박했다.
무엇보다 “원격의료는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으로 원격의료는 국가면적 대비 의사밀도가 낮은 국가, 즉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국가에서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국토면적 대비 의사수(의사밀도)는 1㎢당 0.98명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국가이고, 이는 캐나다, 호주, 러시아의 100배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도서벽지, 노인 등 취약계층환자를 위해 원격의료를 성급히 추진할 것이 아니라, 왕진 등 일차의료와 연계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부 입법예고안 자체의 허술함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아래와 같이 원격의료가 허용되는 대상이 모호하고 현실과 동떨어지도록 규정됨으로 인해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
의협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대혼란과 의료접근성 악화 등을 지적했다.
“원격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이 출현하고, 왜곡된 진료 등 비윤리적인 진료행태가 만연할 것이 우려”된다며 지난 2000년 8월에 출현한 ‘아파요닷컴’ 사례를 제시했다.
‘아파요닷컴’은 몇 명의 의사를 고용하여 인터넷을 통해 이틀 동안 13만여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이 중 7만 8천여명의 환자에게 처방전을 발급했다. 당시에도 원격의료는 불법이었지만, 정부는 비의료기관에서 처방전을 발급한 것만을 문제 삼아 행정처분을 내렸을 뿐 비윤리적 의료행위를 제어할 어떤 수단도 갖지 못했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의협은 “과거보다도 인터넷 접근성, 특히 모바일 접근성이 증가되었고 반면 의료기관의 경영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비윤리적인 진료의 유혹에 빠질 의료기관들이 더 크게 늘어났다”며 “원격의료가 허용되는 경우, 정부의 예상과 달리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간과 거리의 제약을 없애는 원격의료가 허용될 경우 수도권 및 대형병원 쏠림이 가속화되어 동네의원과 대형병원이 외래 원격의료 환자를 두고 무차별적인 경쟁을 할 것”이라며 “지리적 접근성에 근거하여 운영되는 동네의료기관과 지방 중소병원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결과적으로 “취약계층 환자들의 의료접근성을 확대하겠다고 추진한 원격의료 때문에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붕괴되어 접근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동네의원을 방문하는 것이 의료접근성과 환자 건강을 위해 훨씬 효율적이다.
의협은 “정부는 원격의료를 통해 전자처방전을 받고 주변의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으면 취약계층 환자들의 의료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나, 전국에 걸쳐 보건기관을 포함한 의원급 의료기관이 약 3만여 곳이며, 약국이 2만여 곳임을 고려하면 동네의원이 없는 곳에는 약국이 없다고 가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동네의원을 방문하는 것이 의료접근성과 환자 건강을 위해 훨씬 효율적”이라며 “군인이나 재소자들도 현행법상의 의료인 간 원격의료의 내실화와 일차진료의사 연계시스템 등을 통해서 더욱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책임의 문제 등을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격의료를 시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의협은 “원격의료 책임의 문제와 관련하여 환자의 책임이나 장비의 결함을 입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결국 의사가 모든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선진국에서도 원격의료의 역할과 책임의 문제, 개인 프라이버시와 법적 책임 등 정보보안과 프라이버시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격의료를 시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형곤 의협 대변인은 “보건의료서비스는 국가 핵심산업이며, 고용창출효과가 높은 산업”이라며 “원격의료로 인한 의료체계의 대혼란과 붕괴는 고용축소, 국민의료비 증가, 국민건강보험의 붕괴를 초래하고, 나아가 국가산업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번만큼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한번 무너진 의료생태계는 절대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