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필수의료 강화를 외치지만 정작 필수의료 최전선인 심장 분야는 여전히 법적 근거도, 제도적 지원도 없이 병원 재량에 맡겨진 실정이다. 중증 심장질환이 법과 수가 체계에서 빠진 사이 현장의 의료진들은 구조는 커녕 버티기도 어렵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4월 18일부터 20일까지 개최된 춘계심혈관통합학술대회에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과 심장혈관 중환자 치료’를 주제로 보험세션이 진행됐다.

이번 세션에서 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정욱진 교수는 ‘효율적인 심장혈관 중환자실 운영을 위한 병원의 방안’을 주제로 발표하며, 현재 심장혈관중환자실(ICU)의 법적 기반과 지원 체계가 전무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와 함께 주요 심장질환이 법률에 명시돼야 하는 ‘심뇌혈관법’의 개정과 ‘적합질환군 분류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이미 1967년 CCU의 도입으로 급성 심근경색증 환자 사망률이 26%에서 7% 감소했다는 근거가 나왔지만 현실은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상급종합병원 대부분이 CCU나 CVC를 운영하고 있지만, 정부 정책상 이들 병상은 여전히 ‘일반 중환자실’로 분류되고 있으며, 법적 근거 없이 병원 재량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급성심근경색, 급성심부전 등은 ESC 가이드라인에서도 명확히 ICU 치료가 권고되고 있지만, 정부의 입원기준 및 보상체계는 이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 교수는 “정부가 특정 중환자실에는 전담 인력 및 국고 보조금을 포함한 강력한 지원을 하면서도, 중증 심장질환을 치료하는 CICU에는 아무런 지원이 없다”며 “그 결과 인력 확보도 어렵고, 병원 내부에서도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의료기관 자율에 맡겨진 구조는 공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법적 제도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진료부서 간 균형 있는 자원 배분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특히 정 교수는 ‘심뇌혈관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심뇌혈관법)’의 구조적 한계를 꼬집었다. 2016년 제정 후 2020년과 2022년에 두 차례 개정됐지만 심부전, 중증 판막질환, 난치성 부정맥, 심근병증, 폐고혈압 등 주요 심장질환은 여전히 포함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심뇌혈관법에 심장병이 없다”면서 “현재 법에 의해 분류된 심뇌혈관질환은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 심근경색, 심정지 등이지만, 실제 중환자 치료가 필요한 심장질환의 50~60%는 법과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 교수는 적합질환군(A/B/N 분류체계)의 문제도 언급했다. 현재 상급종합병원은 적합질환군 A를 70% 이상 채워야만 가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중증 심부전 환자조차도 강심제 등 특정 약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B 또는 NG(Negative Group)로 분류되며, 이는 진료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에 정 교수는 병원 차원에서도 심부전, 판막, 부정맥 파트를 위축시키지 않고 지속가능한 중환자 진료가 가능할 수 있도록 “뇌졸중 환자가 stroke unit을 거치면 적합군 A로 인정되는 것처럼, 심장계 환자가 CCU나 CVC를 거치면 적합군 A로 분류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양정훈 교수는 ‘심장 중환자 치료의 최신 지견과 현실의 문제점’에 대해 발표했다.
먼저 양 교수는 한국에서 심장 중환자 치료를 담당할 수 있는 의사가 20명도 채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전문가 부족 문제를 언급했다. ECMO 등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전문인력의 수가 부족한 만큼 전문의사 인력 양성 및 제도적 지원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양 교수는 한국의 중환자실 시스템이 글로벌 기준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양 교수에 따르면 지난 해부터 중환자실 및 전담 전문의 수가 인상이 예정됐지만 여전히 심장내과 중환자실에 맞는 전담 전문의 조건이 불분명해 이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ECMO 등 중요한 치료 절차가 수가 미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양 교수는 임펠라 등 최신 MCS 디바이스가 환자 생존율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고, 세계 여러나라에서도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도입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임펠라는 심인성 쇼크를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장치다.
양정훈 교수는 심장 중환자 치료의 발전을 위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중환자실 운영에 있어 필요한 인프라와 시스템 구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인력 양성과 기술 발전이 뒤따를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또한 ECMO, MCS 등 고급 기술을 필요로 하는 치료를 제대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전담 전문의와 같은 전문가의 교육과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며, 이를 통해 환자 중심 치료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남대병원 순환기내과 김민철 교수는 “정부가 제시한 과제나 방안은 많이 봤지만 실무자 입장에서는 와닿지 않는다. 인센티브 등 유인책이나 강제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심장혈관 중환자실 전문의에 대해서도 “현재는 관련 법령이 없어서 외래보고, 시술하고 나머지는 다 중환자실에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고 전했다.
부산대병원 순환기내과 이수용 교수는 “24시간 내내 대부분 중환자실로부터 연락을 받고 있다. 시술 중간에도 중환자실에서 연락이 오면 뛰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상은 전혀 없어서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다”고 경험을 공유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미래 계획도 감사하지만, 지금 있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부산, 경남 지역의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 인력 유출이 심하고, 2차병원 중에는 인력 20~30% 빠져나간 곳도 있다. 결국엔 주말에 시술을 못하게 될 수 있다”면서 “상황 악화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건보공단 일산병원 심장내과 전동운 교수는 정부가 2차, 3차병원이 98% 회복됐다고는 하나 이는 통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통계만 보면 디테일이 안 보이기 때문에 통계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현실과 맞지 않으면 법이나 규정을 고쳐야 한다”고 전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오일영 교수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사업과 관련해 전공의가 없는 상황에서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오 교수는 “지금은 전공의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병원이 운영되고 있지만, 나중에 전공의들이 돌아오면 이들은 어디에 맞춰야 하냐”며 “구조전환사업에 대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