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심화로 복잡한 심혈관질환 환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현행 의료체계가 중증도와 전문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중증 심장질환자에 대한 의료 자원 배분과 수가 체계의 불합리성을 비판하고, 악성고혈압·심부전·심근병증 등 고위험 질환을 ‘전문질환’으로 지정해 체계적이고 정밀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지난 18~20일에 개최된 춘계심혈관통합학술대회에서 ‘국민건강을 위한 중증, 난치 필수의료로서 심장혈관질환군의 위상제고’를 주제로 한 의료정책 세션이 개최됐다.

이번 세션에서 박재형 교수는 상급종합병원, 전문병원 등에서 중증 심장질환자에게 시행 시 심장 초음파는 고난도, 고시간, 고지식이 요구되는 만큼 별도의 수가체계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심부전, 판막질환 환자도 중증도로 분류해 구조전환에 있어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개인병원에서 전문 초음파 시행 후 전문의가 있는 상급종합병원 심초음파에서 여러 소견이 확인된 한 환자 사례를 소개하면서, “초기에 전문 심장내과 의사가 초음파를 시행했다면 치료 방법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박 교수는 “개인병원에서 시행한 심초음파와, 전문의가 시행한 심초음파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수가는 초음파 자격증을 갓 취득한 사람과 20년 이상 경험한 전문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며 “단순 구조가 아닌 움직이는 구조에 생리학적 평가까지 진행하는 고난도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점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령화로 인해 복잡한 심장질환은 증가하고 있고, 검사 시간은 점점 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박 교수는 “2024년 8월 심초음파 학회 조사에 따르면, 전문 심장 초음파는 영상 최소 32개, 최대 210개까지 촬영되지만 개인 병원의 전문 심초음파는 보통 15개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대학병원, 전문기관에서 시행하는 전문 심장 초음파는 별도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심부전은 일반 질환군에 속해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면서 “심부전 및 중등도 이상의 판막질환도 A군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이해영 교수가 심장혈관질환 중증분류 개선방안에 대해 소개하면서 “심혈관 질환의 중증 분류가 실제 의료 현장의 전문성과 필요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전문질환 지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고혈압, 심부전, 심근병증 등 고위험군 환자들에 대한 의료 접근성과 치료 효율을 높이기 위해 관련 질환을 ‘전문질환’으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고혈압 환자의 10%는 기존 약물로 혈압 조절이 되지 않는 저항성 고혈압 환자들로, 심장병 등 치명적인 합병증 위험이 크다”며 “이들에 대해 이미 치료 효과가 입증된 약물이 존재함에도 보험 체계의 미비로 인해 사용이 제한되고 있다”고 했다.
또 이러한 제도적 한계가 심혈관 치료 전반에 의료 왜곡을 초래하고 있으며, 전문질환 지정과 수가 개선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전문질환으로 지정되면 약제 사용과 병실 배정, 입원 기간 등에서 의료 자원 배분이 합리화되며, 이로 인한 진료 왜곡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질환 지정이 필요한 6개 질환군은 △악성 고혈압 △이차성 고혈압 △심부전 및 쇼크 △심근병증 패밀리 △고위험 부정맥 △중증 판막질환 등이다.
이 교수는 “예를 들어 F71(악성 고혈압) 및 F72(이차성 고혈압)는 전체 고혈압 환자의 10%를 차지하지만, 이들에 대한 엄격한 치료 접근이 보험 제도의 제약으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며, 이들 질환에 대한 전문질환 지정 및 관리체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희귀·난치 질환으로 분류되는 ‘심근병증 3대 패밀리’ 질환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교수는 “이 질환들은 그간 치료 약제가 없어 일반질환으로 분류되더라도 실질적인 문제가 크지 않았지만, 최근 효과적인 약제가 개발되면서 정확한 진단과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현재는 약값 절감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방이 아예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특히 ‘심부전 및 쇼크’(F630)에 대해 “상급종합병원인 서울대병원조차도 해당 환자에 대해 표준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는 비율이 50%에 불과하다”며 “6개월 내 재입원율이 36%에 달하는 중증 질환임에도 일반질환으로 분류돼 의료 자원이 효과적으로 투입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의료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특정 검사 및 입원 기준을 통해 전체 환자 중 97%는 일반질환에서 선별할 수 있으며, 나머지 3%만을 전문질환으로 분리해 집중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를 통해 과잉 진료 없이 고위험군 환자에게만 정밀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 교수는 “의료 정책은 환자의 생존율뿐 아니라 국가의 품격과 직결된다. 10%의 고위험 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국민 전체의 건강 수준을 높이는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정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다 현실적인 제도 개선을 위해 의료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