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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시민·소비자·환자단체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반대

올해 2월 1일 정부는 응급의료·중중외상·중증소아·분만·흉부외과·중증심뇌혈관질환 등과 같이 의료소송 위험이 크고 난이도가 높은 진료를 하는 필수의료 의사 및 전공의 기피 현상이 심화하자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의 입증 부담 완화 및 신속하고 충분한 피해 구제를 전제로 의료사고 형사처벌을 완화하는 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2월 27일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을 공개하며, 관련 공청회를 개최했다.
 
제정안의 핵심 내용을 살피면 의료인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대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처럼 책임보험·공제조합에 가입하면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반의사불벌죄 특례).

또, 피해 전액을 보상하는 종합보험·공제조합에 가입하면 경상해와 필수의료행위로 인한 중상해의 경우에는 공소 제기 자체를 하지 못한다(공소제기 불가 특례).

이와 함께 일반의료행위로 인한 중상해의 경우에는 공소 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하되 필수의료행위로 인한 사망의 경우에는 형을 임의적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필수의료행위 사망 임의적 감면 특례).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의 내용

1. 책임보험 가입 시 반의사불벌죄 특례 
의료인이 책임보험에만 가입해 있으면, 환자에게 의료사고로 경상해 또는 중상해를 입혀도 환자가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경찰·검찰이 더 이상 수사를 할 수 없도록 했다.

2. 종합보험 가입 시 공소제기 불가 특례 
의료인이 종합보험에 가입해 있으면, 환자가 경상해를 당했을 때는 환자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경찰·검찰에 형사고소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환자가 중상해를 당했을 때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동일 규정이 2009년 위헌결정을 받은 전례를 고려해 경찰·검찰에 형사고소를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중상해가 필수의료행위로 발생한 경우에는 환자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경찰·검찰에 형사고소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3. 종합보험 가입 시 필수의료행위 사망 임의적 감면 특례 
의료인이 종합보험에 가입해 있으면, 환자가 필수의료행위로 인해 사망한 경우에는 경찰·검찰에 형사고소 및 판사에 의한 형사재판은 가능하지만 판사가 형사처벌을 임의적으로 면제하거나 감경할 수 있도록 했다. 

4. 12개 유형 이외 모든 중과실 의료사고 특례 
의료인이 의료행위 관련한 중과실로 경상해·중상해·사망 의료사고를 발생시켜도 ▲반의사불법죄 특례 ▲공소제기 불가 특례 ▲필수의료행위 사망 임의적 감면 특례 모두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진료기록·영상정보 조작을 비롯해 ▲의료분쟁 조정·중재 참여 거부 ▲무면허 의료행위·불법 대리수술 ▲예방 가능한 환자안전사고 ▲비의료행위 등 12개 유형에 대해서만 특례를 제외하도록 했다.

5. 모든 의료인 적용 특례 
반의사불법죄 특례를 비롯해 공소제기 불가 특례와 필수의료행위 사망 임의적 감면 특례 적용 대상자는 의료법상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 및 간호사로 정의해 모든 의료인이 포함되도록 했다.

6. 모든 의료행위 적용 특례 
반의사불법죄 특례와 공소제기 불가 특례를 비롯해 필수의료행위 임의적 감면 특례 적용 대상 의료행위를 의료인이 환자에 대해 실시하는 진단·검사·치료·의약품의 처방 및 조제 등의 행위로 정의해 미용·성형을 포함한 모든 의료행위가 포함되도록 했다. 

7. 사망 의료사고 임의적 감면 필수의료행위 범위 특례 
필수의료행위 사망 임의적 감면 특례 적용을 받는 <필수의료행위>를 “응급의료법률 제2조제1호에 따른 응급환자에 대한 의료행위등과 중증질환·분만 등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수 있거나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등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으로 정의해 필수의료행위 범위에 대한 의료계의 사회적 합의 불가능 상황을 고려하면 미용·성형을 제외한 모든 의료행위가 포함되도록 했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의 문제점
1. 위헌 소지가 있다. 
제정안은 중상해 교통사고에 대한 공소제기 불가를 규정해 2009년 위헌결정을 받았던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유사한 특례를 규정하고 있다. 

필수의료행위인 경우 중상해에도 불구하고 형사고소 자체를 금지시킨 내용은 재판절차진술권 침해 등 위헌 소지가 있다.

2. 피해자 보호를 위한 핵심 정책은 담기지 않았다. 
의료의 특성상 피해환자의 증거 확보 및 증명 곤란을 해소하려면 입증책임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제정안 마련에 참고가 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규정된 입증책임 전환을 전제로 제정됐지만, ‘의료사고처리특례법’제정안의 경우 해당 제정안뿐 아니라 우리나라 어떤 법률에도 의료사고 관련 입증책임 전환을 규정하지 않는다.

3. 필수의료 회복이라는 제정 취지와 전혀 다른 의료인 특혜만 규정한다. 
정부는 응급의료·중중외상·중증소아·분만·흉부외과·중증심뇌혈관질환 등과 같이 의료사고 위험이 크고 난이도가 높은 기피하는 필수의료 진료과 의사 및 전공의의 형사책임 부담을 완화해 결론적으로 필수의료를 살리는 사회적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공개된 제정안은 모든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간호사의 미용·성형을 포함한 모든 의료행위를 대상으로 중상해·사망·중과실 의료사고까지 형사처벌 특례를 허용하고 있다. 

4. 특정 직군을 위한 특례의 입법례를 국내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고, 전문성이 필요한 의료행위의 특성상 의사에게는 일반인보다 고도의 주의의무가 요구된다. 

의료인뿐 아니라 위험을 수반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다른 직군의 경우에도 주의의무를 더욱 강화해 안전사고를 예방하려고 업무상과실을 일반과실에 비해 중하게 형사처벌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의료인에 대하여 업무상과실의 비고의성·비의도성을 근거로 형사책임 특례를 허용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과 같은 특별법을 제정할 이유가 없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고, 교통사고 방지 노력을 게을리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폐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제정안 또한 환자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고, 환자안전사고 방지 노력을 게을리하게 만든다는 동일한 비판이 제기된다.

5. 기존 의료인 특례제도에 추가 특례를 제공한다. 
‘의료분쟁조정법’ 제51조 경과실에 의한 경상해 의료사고 반의사불벌죄 특례를 비롯해 응급의료법 제63조 응급의료 관련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임의적 감면 특례와 의료법 제65조제1항제1호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의료인 면허취소 대상 제외 등 의료인에게 적용되는 특례제도가 다수 존재함에도 추가 특례를 제공한다.

6. 의료인의 보험 및 공제조합가입 추진은 많은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사안으로서 서두를 일이 결코 아니다.
의료인이 형사처벌 면책의 특례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책임보험 또는 공제조합에 가입해야하는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운영 중인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를 통해 의료인이 손해배상을 할 자력이 없거나 부족할 때 환자가 손해배상금을 우선 지급받을 수 있어 도입의 실효성도 낮다. 

현행 제도 내에서도 배상금 수령에 앞서 사고에 대한 입증이 무엇보다 어렵고 중요하기 때문에, 의료인이 손해배상 여력이 있는지 여부는 시급하고 본질적인 문제라 볼 수 없다.

◆제언
이처럼 정부가 이번에 입법을 추진하는 제정안은 환자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12개 유형의 이외의 모든 중과실로 발생한 의료사고’와 ‘사망 또는 중상해 결과가 발생한 의료사고’까지 공소제기 불가와 형의 임의적 감면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결국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이라는 제정 취지와 달리 의료인에 대한 특혜만 부여하는 특례법 제정을 중단하고, 환자피해 구제를 강화하기 위한 종합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핵심은 입증책임 전환이다. 

환자들은 의료사고 발생 시 사실 및 증거 확보를 위해 민‧형사상 절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증명 곤란 등으로 인해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고려해 피해자인 환자에 대한 입증부담을 경감하는 것이 중요하며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형사 소제기를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의료감정제도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제고하기 위해 의료중재원의 중요 결정권자인 상임감정위원에 의료인 배제, 복수감정 제도 도입 등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사고 발생시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과 위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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