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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⑫] 뇌전증의 공공의료관리 시급하다.

김흥동 (한국뇌전증협회 회장 ∙ 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과 교수)

코로나 펜데믹이 한참 기승을 부리고 있던 시기에 있었던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내가 치료하고 있는 환아의 큰아버지였는데 역시 뇌전증을 앓고 있던 환자였다. 환아의 부모님에 따르면 큰아버지가 갑자기 경련이 발생하였고 경련이 멈추지 않아 119에 연락하여 응급실로 향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송하는 과정에 여러 병원이 병상 사정상 받기가 어려워, 병원을 돌다가 1시간이 넘어서 병원에 도착했다는 거다. 도착 후 바로 응급조치를 시행하고, 중환자실로 옮겼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사망하였다고 한다. 아이의 부모님께서 무척 상심해하셨다. 이런 일이 아이에게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역시 가득하였다.

코로나 감염증을 지나오는 동안 코로나 감염으로 사망한 경우도 많지만, 코로나 이외의 다른 응급 환자들이 응급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사망하는 환자들 역시 적지 않다.

뇌전증은 우리 사회에서 환자들이 아직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고 있는 거의 유일한 만성질환이다. 환우들에게는 이 질환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닥치게 되는 사회적 편견이나 선입견들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전체의 70%에 이르는 뇌전증 환우들은 약물 치료를 통해 발작이 거의 완벽하게 억제된다. 약물 복용이 불규칙하거나 또는 건강관리가 잘 되지 않았을 때 발작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1년에 3~4회 정도, 발작 시간도 대략 2~3분 정도로 1년에 10분도 안되는 시간 동안의 증상 때문에 일년 내내 심각한 심리적 부담을 겪고 있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모든 만성 질환들과 같이 자신의 병을 밝히더라도, 사회적인 불이익이 전혀 없고, 발작이 발생하였을 때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면, 뇌전증 환자가 이를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실제 선진국에서는 본인이 뇌전증 환자임을 알리고 발작이 발생하면 어떻게 도와 달라는 표식을 팔찌 또는 목걸이에 간직하고 다니고 있다. 

뇌전증 발작을 하는 경우에도 최근 심폐소생술에 대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뇌전증 환자가 길거리에서 경련을 하면, 주변에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발작이 끝나면서 의식이 돌아오면 심폐소생술로 목숨을 구했다는 사연으로 뉴스에 나오고 선행 표창을 받는 등의 있어서는 안되는 일들이 공공연히 반복되고 있다.

올해 WHO는 뇌전증을 국가가 관리해야할 중요한 질환으로 선포하고, 각국의 보건 담당 행정부서에 이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우리나라의 뇌전증 환우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한국뇌전증협회도, 국제뇌전증협회의 한국지부로서 함께 참여하여 이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는 과정에 일조하였다.

우리나라의 뇌전증 환자의 수는 최대 50만명으로 추정된다. 한국뇌전증협회에서는 37만명의 뇌전증환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만성 뇌질환 중에 치매, 뇌졸중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질환이고, 치매 환자의 수가 대략 100만명 정도인 것과 비교해보면 무시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다.

치매 환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국가 예산이 연 1조원 가까이 책정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최근 3년에 걸쳐 뇌전증 진단 장비 구입에 지원한 예산 총 30억을 제외하면 정부 예산으로 뇌전증 환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정부에서 편성하는 예산은 연 1억이 되지 않는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할 보건 당국은 뇌전증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뇌전증 환우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대한뇌전증학회와 한국뇌전증협회는 정부를 상대로 지난 20여 년간 끊임없이 관심을 촉구해왔다. 과거에 간질로 불려 왔던 질환명을 과학적인 용어인 뇌전증으로 바꾸었고, 사회적인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방송, 소셜미디어서비스, 국회 청원 활동, 언론 노출 등 지속적인 활동을 해왔지만, 지금까지의 변화는 미미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환우들이 이 질환을 감추지 않고, 알리면서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게 되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정부 예산으로 이 질환에 대해 정확히 알리고 교육해야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동안의 활동에서 체득한 결론이다.

현재 국회에서는 뇌전증 환우들의 건강을 정부가 관리하도록 제도화하는 법안이 상정되어 있다. 국민의힘 강기윤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과 더불어민주당 남인순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보건복지위원회 법률심사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협회는 이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뇌전증이 치매, 심뇌혈관 질환, 자폐-발달 장애, 희귀질환 등과 같이, 법률적 기반을 통해 지원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뇌전증 질환 관리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37만명에 달하는 우리의 소중한 국민들은, 뇌전증을 않고 있다는 것을 계속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좌절하고, 어쩌다 발작이 발생하면 직장에서 해고되고, 능력과 관계없이 취업에서 탈락하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배우자감을 만나지도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결혼 했다가도 쉽게 이혼당하고, 장애를 가지고도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유치원이나 보육 시설도 이용하지 못하고, 무엇보다도 환우들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인 적정한 수준의 치료도 잘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37만명이나 되는 이런 인력 자원들이 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힘든 이 정도의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나라가 정상적인 나라인지 한번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뇌전증을 않고 있으면서도 세계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소크라테스, 줄리어스 시저,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황제, 도스토예프스키, 베토벤, 고호, 알프레드 노벨, 토마스 에디슨과 같은 위인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태어난다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심적인 부담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면서, 이런 모든 환경 제약을 뚫고 이러한 위인으로 성장하고 업적을 남길 수 있을지를 한번 생각해보면, 그저 참담한 생각만 들 뿐이다.

어쩔 수 없이 가지고 태어난 소수의 희귀 질환에 대해서도 점차 따뜻한 관심을 가지는 선진 사회로의 변화가 37만명이나 않고 있는 뇌전증 환우들에게도 적어도 선진국에 걸맞은 관심과 배려 그리고 맞춤형의 지원이 절실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뇌전증을 않고 있는 유명인들이 자신의 능력에 걸 맞는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기 위해서, 이 질환에 만연되어 있는 편견이나 무지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 보건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나서서 직접 관리하지 않으면 이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은 채로 앞으로도 10년, 아니 20년이 똑 같이 지나갈 것이다. 뇌전증이 공공의료로 국가에서 관리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뇌전증 관리∙지원법이 반드시 입법되어야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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