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의사 제도는 군의관으로 배치되지 않은 의사 인력을 의료인력이 부족한 도서 벽지에 근무하게 함으로써 무의촌을 해소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것이다.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이하 농특법)에 규정되어 있는 바에 따라 공중보건의사는 현재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의료원, 국공립 병원 등의 공공병원, 공공보건의료연구기관, 검역소, 교정시설 외에도 정부지정 민간병원이나 의료취약지 민간병원, 응급의료지정병원 등 민간병원에 함께 배치되어 있다.
2022년 기준 의과 공중보건의사는 1,718명이며 이 중에서 1,436명의 공중보건의사가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의료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는 전체의 약 84%에 해당하는 수이며 나머지 16%의 공중보건의사는 교정시설, 병원선, 국가보건기관, 응급의료기관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 공중보건의사들의 근무지역 중에서도 특별히 적은 수가 근무하는 지역이 있는데, 섬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이하 섬보의)와 민간병원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이하 병공의) 등이 이에 해당된다. 각각의 수를 살펴봤을 때 현재 섬보의의 수는 93명, 병공의의 수는 84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공중보건의사의 생활은 배치기관과 근무지역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육지의 보건소 및 보건지소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들은 통상적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비슷한 근무 방식을 따르고 있으나 병공의들과 섬보의들은 현저히 다른 방식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병공의 및 섬보의 서로 간의 생활패턴에서도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원칙에 벗어난 근무를 공중보건의사들에게 강요함에 따라 발생하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모습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를 향한 끊임없는 개선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다.
공중보건의사의 공식 신분은 임기제 공무원이며, 보건복지부 국가공무원이다. 다만 근무지 배치가 완료되는 순간부터 실질적으로는 소속기관의 지방공무원으로 취급받아 시장군수의 지휘를 따르도록 되어 있다. 각종 권리 및 책임에 있어서도 농특법 및 공중보건의사 운영지침에 예외로 규정된 사항을 제외하고는 해당 시군의 조례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가공무원으로서의 규정과 지방공무원으로서의 규정이 충돌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나, 개별 지자체에서 급여가 지급되고 근무 여건이 지자체에 묶여 있어 지방공무원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중보건의사의 법적 급수는 과거 공익법무관과 같이 5급이었으나 김대중 정부 이후 전문직 대체복무자들의 계급규정을 삭제함에 따라 현재는 공식적인 법적 급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중보건의사는 보건지소장 직위를 맡고 있어 5급에 준하는 대우를 기대할 수 있는데, 이는 지자체의 보건소장이 대부분 4급 공무원이며 보건지소 소속의 팀장이 6급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건소장과 보건지소 팀장이 지자체에서 오래 근무한 경우에, 업무적으로 깊은 관계가 형성되어 보건소장이 공중보건의에 대한 명령권을 팀장에게 위임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 공중보건의사의 처우가 7급 혹은 그보다 더 낮게 취급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공중보건의사의 신분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일부 지자체, 특히 도서지역이나 병공의들이 연관된 곳에서는 그러한 체계가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섬보의들의 사례부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 현실이 매우 열악함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에서 올해 8~9월에 시행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도서지역 보건지소는 공중보건의사 2인 체계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들은 근무지 이탈금지 명령에 따라 근무시간이 아닐 때도 섬을 이탈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였으며, 공중보건의사 운영지침에 따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정규근무 외에 야간 및 주말에도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를 강제 받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각각의 공중보건의사는 2주 간격으로 10일의 정규근무(주말포함)와 7일의 당직을 포함한 야간근무를 하고 있었으며, 4일의 휴무일을 제공받고 있었다. 당직수당과 초과근무수당은 근무시간에 비하여 10%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고, 함께 근무하는 동료가 섬에 머무르지 않는 상태에서는 연, 병가의 사용이 어려웠다. 야간에 신변이 위협받는 경우가 있었다고 대답한 공중보건의사가 대다수였으며, 공무원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공중보건의사도 다수 있었다.
병공의들 또한 섬보의 못지않게 매우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민간병원은 24시간 운영이 되어야 하는 응급의료기관에서 봉직의사를 채용함에 어려움이 있어 부득이하게 공중보건의사가 배정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경우 공중보건의사 운영지침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응급실 업무가 주를 이루어야 하나, 병원의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그 외 부적절한 업무들에 공중보건의사들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소 4-5인의 의사를 확보하여 순환근무를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나, 2-3인의 공중보건의사만으로 응급실을 순환 근무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연, 병가에 제한이 생길 뿐 아니라 근무강도와 노동시간이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에 달하게 된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봉직의의 절반도 되지 않는 급여를 제공하면서 그 이상의 과도한 근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병공의들은 다른 공중보건의사와는 다른 신분적 차이를 갖는다. 국가 공무원인 동시에 지방 공무원이기도 하고, 근로기준법에 해당하는 근로자(95다 28731판결)로도 볼 수 있다. 여러 법과 규정이 충돌하게 되고 그 가운데서 병공의들은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다. 병공의가 근무지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지자체와 보건복지부에 해결을 요청하여도 이러한 규정들이 충돌하여 양측 모두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섬보의와 병공의는 대표적으로 공중보건의사 제도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다. 그 수가 많지 않아 기본적인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어도 해결될 여지가 잘 보이지 않고, 개인과 협의회 차원에서 처우 개선과 지침 강화를 호소하여도 그저 무관심하고 심드렁한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다. 어쩔 수 없다는 답변과 함께 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농특법이 제정된 1980년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의료수준과 보장범위는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그 법안이 규정하는 제도 자체는 썩 변화하지 못했고 공중보건의사들의 권리 또한 나아지지 않았다.
공중보건의사의 신분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근무범위를 규정하는 세부적인 지침이 우선적으로 개발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근무 환경에서 이들의 기본 권리가 어느 정도까지 침해되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공중보건의사 수가 20년 전보다 절반 이하로 감소했고, 이후에도 더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고령화 등으로 인해 업무는 늘어나는데 인력은 점차 줄어들기에 근무 여건은 더욱 악화될 것이고, 앞으로 인권 사각지대에 놓이는 이들의 수는 훨씬 많아질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조금씩 고쳐 나간다면 충분히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듯 지금은 적은 힘으로도 고쳐 나갈 수 있지만 나중에는 더욱 많은 자원과 노력으로도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료 취약지역의 주민이 의료혜택을 고르게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명감으로 공중보건의사들은 각자의 근무지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중보건의사들은 각자 살던 곳을 떠나 도서벽지의 주민들을 위해 땀 흘리며 헌신하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불편을 해결해 나가는 것은 궁극적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더욱 질 높은 보건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이야 말로 이들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재정비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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