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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⑥] ‘국가 감염병 대응체계’와 ‘한의사’의 책무

안우식 (대한한의사협회 의무이사)

2019년 12월 처음으로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견되고, 이듬해인 2020년 1월 20일 국내에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나온 이후로 지금까지 3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한국과 전세계는 전례 없는 팬데믹의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국가적인 재난에는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살려내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책무임에도, 국민 건강을 지키는 한의사의 참여는 제한되는 일이 있었다. 국가재난의 비상시기에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2020년 코로나 발생 초기부터 한의계는 복지부 등 관련 정부부처에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데 적극 협조하고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지속적으로 개진한 바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대한한의사협회는 개원가, 대학병원, 학계,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들이 참여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한의계 TF’를 구성해 한의약적 치료 및 관리를 통해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기자회견을 개최하며 사태의 심각성과 함께 한의약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또한 △동네 병의원 지원체계에 한의의료기관 참여 △재택치료에 한의의료기관 참여 △모든 의료기관 신속항원검사 지원 등 3대 사항을 긴급 제안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정부는 한의계의 이 같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큰 고통을 겪은 중국이 중의학을 활용하는 자세는 이와 달랐다. 중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진료지침을 통해 중⋅서의학 의료진의 병행 진료를 권장하는 것은 물론 일부 항바이러스 양약치료제와 함께 청폐배독탕(淸肺排毒湯) 등 중의약 처방을 혼용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중의약관리국은 2020년 2월 7일, 감염여부와 관련해 미확진된 임상관찰기부터 중증환자에 이르는 전 과정의 치료 상황에 맞춰 중⋅서의 임상치료 효과분석을 토대로 청폐배독탕 처방을 권장했다. 이처럼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재앙 앞에서는 상호 의학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접목시켜 최적의 치료방안을 찾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인데, 한국의 의료 현장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실제로 중국은 적극적으로 중⋅서의 진료를 병행한 결과, 좋은 치료 성과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2020 동의보감 프리 컨퍼런스 포럼’에 참석했던 중국 상해중의약대학 홍원숙 교수는 “중국 상하이 코로나19 확진자 92%는 양약과 함께 중약탕제나 중성약을 병행치료 받았다”면서 “그 결과 중증, 위중증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현저히 줄었고, 평균해열 일수도 3일, 평균퇴열도 5일이나 단축됐다”고 전통의약의 치료효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는 한의약 치료에 협력적인 입장이었다. 2020년 2월 29일, 중대본 권준욱 중대본 부본부장은 정례 브리핑에서 “한의사를 포함한 모든 의료인이 힘을 모아 감염병 방역과 전염 차단을 위해 고유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고, 2020년 4월 13일, 보건복지부 김강립 차관(중대본 1총괄조정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한의계의 적극적인 지원 의지와 입장에 대해 감사함을 표명한데 이어 직역 간 협업을 위한 논의를 진척시켜 나갈 뜻이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브리핑 내용과는 달리, 정부의 눈치보기 행정은 이후로도 국민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한의사들을 참여시키지 않는 쪽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감염병의 확산을 맞아 정부의 정책 수립과 이행은 평상시와는 완전 달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급박한 코로나19에 적극적인 대응을 위한 한⋅양의의 협업과 관련해 “검토가 필요하다”, “논의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렇게 정부에서 한의사 참여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내리지 않아 일선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일하고 있던 한의사들이 바쁜 현장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2020년 10월 29일, 고영인 의원의 국감 서면질의에서 보건복지부는 “한의사의 코로나19 확진자 치료 및 진단을 위한 검체 채취는 면허 범위 이외의 치료행위에 해당할 우려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여전한 유보의 입장을 보였다. 반면, 2020년 11월 13일, “선별진료소에서 검체 채취를 한 공직한의사 및 공중보건한의사를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할 것인가”라는 서면질의에 중앙사고수습대책본부는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감염병 환자를 진단할 수 있고 역학조사관 업무를 할 수 있다”라고 밝혀 한의사의 참여 가능성이 열릴 수 있는 답변을 한 바 있다. 한의사는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감염병 환자를 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본, 중수본에서 발간한 코로나19 대응지침(10판)에 검체 채취는 의사, 간호사, 임상병리사가 채취하도록 되어있는 것을 근거로, 양의계는 한의사가 검체 채취를 수행중인 지역 보건소에 항의하는 행태를 보였는데, 보건의료 자원이 부족한 국가적인 위기에서 한의사는 이미 한방 급여 항목으로 인정된 비위관 삽관술 등 비인두의 더 깊은 곳까지 시술을 시행할 수 있음에도 정부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태도가 감염병 대처를 직역간 갈등으로 비화시키는 사태를 초래했다.

2022년 3월, 호흡기 진료기관이 아닌 의료기관에서도 ‘RAT(신속항원검사) 진행’과 양성 시 해당 의료기관은 ‘코로나19 정보관리시스템’을 통한 당일 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새 방역방침이 수립되었다. 한의사들은 새 방역지침에 따라 RAT를 실시했고, 양성으로 판단된 환자들을 코로나19시스템을 통해 절차에 맞춰 방역당국에 신고했다. 이 과정에서 한의사들은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코로나19시스템 사용 권한을 승인받았고, 양성으로 판단된 확진자를 신고한 뒤 관할 보건소로부터 환자에 대한 ‘확진 통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3월 21일, 질병청은 한의과 의료기관의 RAT를 제한하고, 코로나19 신고시스템의 사용권한을 가로막았다. 한의사는 감염법 예방법에 따라 감염병 환자를 진단할 수 있으며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그 권한이 제한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감염병예방법 제2조 제13호에 따르면 ‘감염병 환자’는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진단기준에 따라 양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진단 등으로 확인된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감염병예방법 제11조 제1항에 따르면 한의사는 감염병 환자를 진단했을 경우 보건소장에게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청의 발표 시점부터 코로나19시스템에 대한 한의사의 사용권한 승인신청은 모두 거부됐고, 확진자 신고도 마찬가지로 취소됐으며, 신고에 따른 후속절차, 보건당국의 확진자에 대한 격리통보 등도 거부되었다. 이는 2022년 3월 29일, 복지부가 코로나19 외래진료센터를 모든 의료기관으로 확대해 한의원도 외래진료센터로 신청할 수 있게 되어 한의사가 코로나19 관련 진료에 처음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기 직전의 일이다. 한의원에서도 코로나19와 그 외 다른 질환까지 대면 진료를 할 수 있도록 길이 열렸으나, 정작 RAT를 통한 코로나19 확진자 진단에는 배제되고 보건당국에 신고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코로나19의 국가적인 위기에 한의사의 참여가 제한된 현실에서도 대한한의사협회에서는 국민의 건강증진과 생명보호라는 의료인단체로서의 책무를 다하고자 코로나19확진, 확진 후 후유증, 백신 접종 후 후유증 등 전반적인 코로나19 환자를 한의사가 치료할 수 있도록 ‘코로나19 한의진료접수센터’를 운영했다. 최대 2만 건의 진료요청 전화가 몰릴 정도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고, 진료 만족도 조사 결과에서 응답자중 만족이 94.4%, 불만족이 0.9%였으며, 특히 응답자의 93.5%가 “향후 코로나19 같은 급성감염병 치료에 한의진료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답해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증상 유형으로는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격리기간 중 치료'가 96.2%로 가장 비중이 높았다. 코로나19 확진으로 격리된 환자가 추가적인 한의 치료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지난 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항체양성률 분석결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97% 이상이 코로나 항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끝자락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처럼 또 언제 다시 국민 건강을 위협할 팬데믹이 나타날지 모른다. 또한 연 이은 원숭이 두창 확진 사례 등 이제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영화에서가 아닌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팬데믹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게 됐다. 

팬데믹이 이제 끝이라는 보장은 없기에, 우리는 과거를 타산지석 삼아 미래를 충실히 대비해야 한다. 전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팬데믹을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양의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며, 반목과 질시는 피해야할 것이다. 감염병의 피해를 최소화하여 국민 건강을 보호하는 것은 의료인으로서 공통된 책무이다. 정부 또한 어느 직역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 국민 건강 보호를 최우선 목표로 두어 보건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또 다시 어떤 팬데믹이 우리를 위협하더라도,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게 모두가 힘을 모아 국민 건강을 지키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대한한의사협회와 2만 8천 한의사는 그 중심에서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할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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