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산부인과 한정열 교수팀이 서울시 남녀 임신 준비 지원 사업에 참여한 20~45세 임신 준비 여성 2274명을 분석한 결과, 19.48%(443명)가 난임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 5명 중 약 1명 꼴로 난임 경험이 있던 셈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난임이 이제는 일상에서 흔해졌으며, 우리나라의 극심한 저출산 시대에 따른 난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작 난임부부들을 지원하는 난임병원들은 난임지원금 미납으로 경영 위기를 맞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 9일 김재유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한 병원의 경우 지자체로부터 받지 못한 금액이 무려 10억원에 달한다”라면서 난임병원 지원금 미납금 심각성에 대해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메디포뉴스는 이경훈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의무이사(서울아이비에프여성의원 원장)을 만나 난임지원금 미수 문제가 생기는 원인이 무엇이고, 현재 미수금 규모가 어떠하며, 이를 해결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Q. 난임 지원금 미수 사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요?
A. 난임 지원금 문제의 경우 작년부터 이슈가 됐는데,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은 없고, 단순히 “난임 클리닉이 돈을 못 받아서 힘들구나” 정도의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계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난임 클리닉의 지원금은 생각보다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합니다. 진짜 문제는 난임클리닉에 오는 난임 부부가 정말 힘들다는 것에 있습니다.
쉽게 말해 난임 부부의 힘든 부분을 도와주기 위해서 돌을 하나씩 쌓아올리다가 행정적으로 파급이 되면서 이번에 난임클리닉 지원금 미수 사태가 터진 것으로,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지원금 미지급 문제의 첫 단추는 2022년에 이루어진 ‘2단계 재정 분권 조치’에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2001년까지만 해도 ‘난임’이라는 단어보다는 ‘불임 치료’라는 단어로 지칭되다가 2006년에 난임 관련 비급여 등이 너무 많아지고 불임 환자들의 진료비가 너무 비싸지니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도입됐습니다.
2006년도부터 시험관이나 인공수정에 대한 지원금이 국고에서 나오기 시작한 거에요. 이후 10년 정도 지나면서 명칭이 난임으로 바뀌고 난임 부부가 늘어나고 난임 진료도 많아지면서 국가에서는 직접 지원하는 형태에서 건강 보험으로 급여 방식을 바꾸게 됩니다.
다만, 난임 부부가 지불해야 하는 의료비 전체가 제도권으로 완전히 다 들어가지는 못하고, 60~70%는 건강보험에서 담당하되 나머지 30~40%는 비급여 형태로 남아있게 됩니다. 아마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위해 처음엔 할 수 있는 것만큼만 해보고, 상황 봐서 점차 확대하려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난임 시술에 비급여 항목이 존재하게 되고, 이에 대해 국가 지원금은 그대로 작동하게 됩니다.
그러다 재정 분권이라는 흐름 속에 중앙 정부가 담당했던 난임 지원금이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가게 되면서 우연인지 필연이지 모르게 난임 병원 미수금 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난임 지원금을 100으로 한다면 각각 국가 30%, 시 35%, 구 35% 비율로 매칭돼 난임 시술 지원금을 주던 시스템이 재정분권이 이뤄지면서 중앙 정부 비중이 시로 넘어가 시가 담당해야 할 비중이 65% 및 구 35% 비율로 마련해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 중 재정이 충분하지 못한 곳은 지원금을 제대로 주지를 못 하는 타임랙(time lag)이 발생하게 되는데, 지방 재정에 우선 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대부분 늦게라도 지불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의료비를 보조해주는 지원금을 주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환자한테 직접 주는 B2C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가 의료기관에 주는 B2B 방식입니다.
그런데 환자한테 직접 주는 방법은 뜨거운 감자와 같습니다. 직접적으로 주기 때문에 효과가 확실하지만 정확하게 줘야 되고, 잘못하면 민원을 정부가 직접 받아야 하는 단점이 있지요. 그래서 가능한 B2B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난임 지원금 미수금 사태가 발생한 겁니다.
난임 부부가 난임 클리닉에서 보조생식술 시술을 하게 되면, 시술 비용 중 지원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수금 처리로 지불하지 않고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난임 클리닉은 미수금을 모았다가 시술 종결 1달 이내에 보건소에 제공하고, 보건소가 이를 확인하고 미수금 또는 난임 지원금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런 복잡한 시스템에는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두 가지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우선 난임 부부 쪽에서는 지원을 받는 항목이 무엇인지 언제 지원 받을 수 있는지 무척 복잡해서 이해할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렸습니다.
난임 여성 본인의 돈을 지불한 뒤 서류를 모았다가 지원금을 받는 시스템은 간단한 구조이지만, 의료기관에서 지원금이 바닥나기 이전까지 비급여 부분 등에 대해 본인부담금을 청구하지 않다가 지원금이 없어지면 본인부담금 등을 청구하는 구조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더불어 의료기관에서도 환자별로 무슨 돈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등을 누적해서 갖고 있다가 보건소에 제출하고, 보건소는 그걸 또 확인했다가 매달 청구비용을 제공해야 하는 복잡한 시스템으로 인해 ‘지원금’이라는 돈이 걸린 만큼 명확하게 해줘야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되며, 그로 인해 행정업무가 증가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또 다른 문제점으로는 보건소의 재정이 좋지 못한 곳이 있다면 해당 지역에서 난임시술 등을 시행했던 의료기관들은 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에 있습니다. 작년부터 대두된 ‘난임지원금 미수’ 사태가 벌어지는 셈이지요.
사실 의료기관도 환자처럼 외상거래를 한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난임시술 등을 환자에게 제공하고, 돈을 환자한테 받지 못하니까 국가에 청구해야 하는데, 국가에서는 해당 업무를 보건소에다가 넘겨버린 상황에서 보건소에서는 재정이 명확하지 못하니까 차일피일 미루다가 한꺼번에 주는 기괴한 체계를 갖춰버린 상황입니다.
문제는 돈을 띄엄띄엄 주게 되면 ‘time lag(시간지체)’가 걸리게 됩니다. 현물과 돈과 관련해 시간이 지체되면 이자가 발생하게 되고, 그 이자를 누군가는 감당해야 해 난임시술 등을 진행한 의료기관이 떠안게 됩니다. ‘난임지원금 미수’ 사태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난임지원금 미수’ 사태의 규모와 현황은 어느 정도인가요?
A. 난임병원들이 받지 못한 미수금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는 모릅니다. 알 수가 없어요. 이를 파악하려면 실태조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문제는 실태조사를 한다는 것은 각 병원마다 장부를 꺼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는 해당 지역의 보건소와 척을 지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A지역의 한 난임병원인 B병원이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A지역 보건소가 업무를 태만하게 했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이 B병원은 A지역 보건소에게 밉보일 가능성이 커요. 그렇기 때문에 수금 비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끙끙 안고 가는 거죠.
그나마 국회의원이 난임병원 미수금 관련된 이야기를 해 2023년도에 한 47억원 정도가 아직 지급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꽤 많이 지급이 안 되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추정을 하고 있는 정도가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난임지원금 미수’ 사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요?
A. ‘time lag’를 줄여야 합니다.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발생하는 ‘time lag’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가 핵심인 것 같아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난임지원금 미수’ 사태 등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됩니다. 문제는 정부가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번 ‘난임지원금 미수’ 사태 등을 해결 및 예방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여러 방법들이 제시됐는데, ‘time lag’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방안으로 “지원금을 없애버리고 모두 다 건강보험의 자본 비율을 낮춰버리자” 또는 “건강보험에 들어갈 수 있는 비급여 항목을 줄여서 다 건강보험으로 넣으면 되는 거 아니냐”라는 논리들이 있습니다.
위 이야기들은 대부분 건강보험에 부담이 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다면 모르겠지만, 의지가 조금이라도 약하면 건정심에서 우선순위를 근거로 반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선순위에 난임이 들어갈 가능성도 높지 않음은 물론, 설사 들어가더라도 난임 부부나 난임병원 등이 만족할 정도는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위 방안들보다는 ‘응급의료기금’와 같은 기금 신설이 괜찮은 아이디어일 것 같습니다.
응급의료기금이 없던 초반에는 응급실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서 응급실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응급의료기금을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응급의료기금은 초반에 기금을 만들기 어려웠었습니다. 그러다가 거둬지는 전체 교통범칙금의 20%를 응급의료기금에다 배정하는 법령이 생기면서 응급의료기금이 만들어졌는데, 응급의료기금이 만들어지니까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응급의료 보험금과 맞바꿀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응급의료기금이 건강보험으로 들어오면 응급의료 행위에 대한 보험 급여를 낮춰주더라도 건강보험 제정에는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건강보험 수급자들이 주는 금액(건강보험료)는 그대로 있으면서 별도로 응급의료기금이라는 국세를 지원하는 형태로 들어오면서 전체적인 파이가 증가하면서도 응급 의료의 질을 높아지게 되니 건강보험에서 ‘일석이조’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따라서 응급의료기금처럼 차라리 모자보건법 등에 난임진료 관련 기금을 만들고 키우면 건강보험에서 난임진료기금을 챙기는 대신, 난임시술 비용이나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하는 과정이 보다 수월하게 진행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Q. 그밖에 정부나 의료계 등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A. 저는 난임 환자들은 정말 아기를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임환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에게는 난임환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자원이 있습니다. 아기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한테는 시간을 주고, 아기를 가지려고 하는 사람한테는 충분히 자원을 줘야 합니다.
또, 저는 개인적으로 난임클리닉에 오는 사람 중 가장 아쉬운 사람은 나이가 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난소 나이가 안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난소에도 나이가 있습니다.
젊은 사람임에도 난소 나이가 40~50대 있으신 분들도 있고, 나이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난소 나이는 30~40대인 분들도 계십니다. 그중 가장 안타까운 건 20~30대의 여성임에도 난소 나이가 40~50대인 분들이 너무나도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특히, 20~30대 중 결혼을 아직 생각하지도 않으시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정말 내가 아기를 가질 수 있을까? 등에 대한 자신감도 경제적인 여유나 자유로움이 없어 머뭇거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한테는 적어도 ▲남성이면 남성의 정액 검사를 ▲여성이라면 난소 나이에 대한 정보를 드려 가임 정보를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결혼하고 나서 아기를 가지려는 사람들한테는 충분한 자원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