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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이태원 참사, 잘못 묻기보다 원인 분석으로 한 단계 도약해야”

사고 한 달 뒤, 재난의료 전문가의 관점에서 본 이태원 참사

최근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돌아보며,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재난에 대비하고 대응하기 위한 재난의료에 대해 논의하는 장이 열렸다.


대한병원협회 국제학술대회 korean healthcare congress 2022(KHC 2022)에서 ‘10.29 참사를 계기로 한 재난의료의 과제와 대책’을 다룬 포럼 세션이 열렸다.

동군산병원 이성규 이사장이 좌장을 맡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다중밀집상태에 대한 논문을 작성했던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왕순주 센터장(대한재난의학회 전임회장)이 발제를 했다. 

패널로는 김인병 대한재난의학회 이사장,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응급의학과 이형민 교수, 참사 당시 가장 많은 환자를 치료했던 병원인 순천향대학교서울병원 응급의학과 조영신 과장이 참여했다.


발제를 맡은 왕순주 센터장은 “오늘로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한 달이 됐다”며, “다른 재난보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에 해당하는 다중밀집상태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왕순주 센터장은 먼저 ▲대규모 압사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발생한다. ▲군중 압박 사고는 예방하기 힘들다. ▲군중 압박 사고는 신속한 대응으로 가장 피해를 줄이기 어려운 재난이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군중 압박 사고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불가하다 등 군중압박 사고에 대해 알려진 거짓 정보를 바로잡았다.

이어 “다양한 종류의 재난 위험도를 분석하는 ASHE HVA라는 툴이 있는데, 여기서도 군중압박에 의한 재난은 항목에 포함돼 있지 않다. 여러모로 이번 참사는 예측 못한 재난이 맞다”고 말했다.

왕 센터장은 이번 10.29 참사와 관련해서 다양한 고려사항을 소개했다. 병원 입장에서는 이중파(듀얼웨이브) 현상으로 사고 발생 15~30분 후 경환자들이 찾아오는 첫 번째 파도와, 30~60분 등 다양한 시간에 찾아오는 중환자들로 두 번째 파도를 동시에 맞아 대처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장에서는 원칙상 살아 있는 사람 이송이 먼저지만, 시신을 길바닥에 방치할 수 없는 정서로 인해 시신 이송이 동시에 이뤄지려고 해 혼란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런 재난이 발생하면 재난지역에서 가까운 의료기관이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으며, 중증도에 따른 적절한 의료기관 분산이 실제로 잘 되지 않는데, 이번에도 그랬다고 말했다.

왕순주 센터장은 군중압박사고에 영향을 준 요인들을 설명하며, 군중압박사고와 관련된 공학적 접근은 키, 몸무게 등 다양한 사람의 특성과 환경의 영향을 구현하기 어렵고, 군중 심리, 위기 심리 등 사람의 심리에 따른 행동양식을 구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왕 센터장은 “안전의 3단계는 하드웨어(시설, 장비, 물품), 소프트웨어(법규, 제도, 지침, 운영), 휴먼웨어(인식, 문화, 심리)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는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 편이지만, 아직 군중압박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용어나 개념 정립이 안 돼 있는 상태로 3단계로 나아가야 할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새롭거나 덜 발생하는 재난, 사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보다는 과학과 실제적 구현이 중요하다. 재난 발생시에는 총괄적이고 과학적인 원인 분석으로 반드시 한 단계 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대한재난의학회 김인병 이사장은 “우리나라 재난 상황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소방이다. 이번 참사의 경우 서울시 기본 소방센터가 주축이 됐다. 초기에 10명 정도 가서 대응의 단계를 결정하고 중앙 응급의료상황실에 통보가 되면 각 시도 보건소의 신속대응반, 각 거점병원 대응반의 긴급의료팀(DMAT) 대응 등 2개의 시스템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상황을 쭉 보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서울순천향병원으로 환자가 몰린 것이 됐는데, 새벽 3시쯤에는 39명 정도 되는 환자들이 서울 시내 16개 병원으로 분산돼 나간 데이터가 있다”고 말했다. 

김인병 이사장은 “매뉴얼의 필요성이라고 할 수도 있고, 다수 사상자가 발생하는 재난에 대한 관심이 전체적으로 부족했다고 본다. 우리 모두의 인식 차이와 대비 부족이다”라고 말했다.

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이형민 교수는 “우리나라의 지침이나 매뉴얼은 다양하고, 세계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지침들이 실질적인 도움이 된 경우가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지침을 실제적인 단위에서 시행할 만한 인프라가 과연 완비가 돼 있었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재난에 대한 준비는 개인이 할 수 없으며, 국가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실무적인 단위의 예산 마련 등은 국가가 준비해야 한다. 동일한 재난은 없지만 동일한 실수는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형민 교수는 “현재 등록된 42개의 재난거점병원은 나라에서 재난 시 민간 병원 인프라를 사용하겠다고 지정한 것인데, 사용의 기준, 지원 체계, 관리가 미흡하다. 민간에 위탁하면서도 민간 전문가의 말을 듣지 않는다. 민간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난 대응의 측면에서 계속 발생하는 문제는 이번 사고에서도 그렇듯 근처 병원만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재난 현장에서 관리되지 않는 환자들이 빠져나와 근처 병원으로 가고, 병원진료체계가 붕괴된다. 가장 가까운 병원이 붐빌 것을 예상하고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사고 현장에 지휘소를 세우듯이 가장 가까운 병원에도 현장 지휘소를 세우고 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민 교수는 “사후 평가 측면에서는 최근 DMAT팀이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인데, 경찰 조사를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후평가라는 것은 어떻게 판단하고 개선해나갈까 생각하는 것이지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매뉴얼이라는 것이 우리의 족쇄가 돼버릴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의무감으로 참여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부터라도 전문가 평가단을 만들어서 전문가적인 시선에서 분석하고, 잘잘못이 아니라 개선책을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재난에 대한 정부의 연구 용역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부분이니, 과거 사례에 대한 연구 효용성을 분석하고 연구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사 당시 가장 많은 환자를 받았던 순천향대학교서울병원 응급의학과 조영신 과장은 당시 사고의 상황이 떠오르는 듯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조영신 과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다. 같이 진료했던 의료진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발언의 기회가 생기면 어떤 말을 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어느 의료진도 그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의료진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참사를 겪고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건 아직 우리나라가 재난에 여유 있게 대비하고 준비해두는 것들이 없다는 것 같다. 재난은 대비하기 어려운 것이고, 의료진은 재난에 대응하는 커다란 조직 중 하나에 불과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과장은 “누군가 저희 병원을 대놓고 비난하거나 모두가 저희 병원에 잘못했다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약간 그런 뉘앙스의 기사도 있었고 그래서 병원 내에서도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었다. 제가 직접 조사에 가지는 않았지만 병원 내 조사가 이뤄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재난이라는 것이 국가 내 모든 기관이 합심해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고, 의료라는 파트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사후 평가가 잘잘못을 따지고 결과로 평가하기보다 그 다음 단계를 대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업그레이드 되는 단계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좌장을 맡은 이성규 이사장은 “의료진들은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앞으로 이런 상황이 됐을 때 병원 시스템에서 더 잘 대응할 수 있는 대비책을 마련하고자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고 세션의 의의를 밝혔다.

이형민 교수는 “현장에 나갔던 의료진 중에서 아직도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다. 참사 당시의 상황은 재난의 특성을 포함해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이 작은 보람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재난 대응에 있어 작은 부분이라도 시스템적인 개선이 이뤄진다면 좋겠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날 고생했던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고, 그들이 큰 마음의 부담 없이 다시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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