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명 처방 확대가 환자 안전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과 파킨슨병 환자 등 다약제 복용 환자는 약 이름과 외형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혼란은 물론, 복약 오류와 치료 연속성 저하를 겪을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특별시의사회(회장 황규석)는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과 함께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수급 불안정 의약품 대책, 성분명 처방이 해법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는 입법이 추진되자 이번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법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의료계와 환자단체, 노인단체, 정부 관계자들은 의약품 수급 문제와 성분명 처방의 적정성을 놓고 심도 있는 논의를 벌였다.
패널 토론에 나선 대한노인회와 대한파킨슨병협회 관계자는 성분명 처방과 선택분업 논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 임세규 사무처장은 “선택분업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노인의 생존과 안전 문제”라고 주장했다.
임 처장은 “다질환·다약제 복용이 일반적인 고령 환자의 경우 약 이름과 모양이 자주 바뀌면 혼란과 복약 오류 위험이 커진다”며 “노인들의 특성상 변화에 대한 대응 능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진료 공간과 조제 공간이 분리된 현재 구조는 약물 설명에 대한 연속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복약 오류와 약물 오·남용 위험을 높인다는 게 임 처장의 지적이다.
그는 또한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의 경우 병원 진료 후 약국까지 이동해야 하는 부담도 크다”며 “한 공간에서 진료하고 약을 수령할 수 있는 ‘원내 조제’는 고령자에겐 단순한 편의가 아닌 안전과 지속적인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인 만큼 건강 상태와 생활 여건에 맞춰 원내·원외 조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실제 노인 환자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심·폐질환, 전립선 질환, 골다공증 등 여러 만성질환을 동시에 앓으며 하루 수차례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병원 진료 후 약국까지 이동하는 것은 큰 부담이며, 상급병원이나 대형 의료기관은 접근성이 떨어져 장시간 이동을 감내해야 한다.
임 처장은 “이런 구조적 문제는 단순히 불편을 넘어 치료 지속성을 저해한다”며 선택분업을 통한 원내 조제 허용이 의료비 절감과 행정 효율성 측면에서도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노인들이 편안하게 치료받으면서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제도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심도 있게 논의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노인들이 혼란 없이 약을 복용하고, 노후에도 부담 없이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성분명 처방 강제화는 신중히 고려해 달라”고 촉구했다.
대한파킨슨병협회 한양태 대외협력이사도 성분명 처방 확대나 강제화가 오히려 환자 안전에 위협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한 이사는 “파킨슨병 환자의 대부분은 70세 이상 고령자로, 하루에도 여러 약을 장기간 복용한다”며 “성분명 처방으로 약이 바뀌면 치료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4년 파킨슨병 치료제인 레보도파 성분 의약품 변경 사례를 언급하며 “치료제 공급 중단 이후 동일 성분의 제네릭 의약품을 복용한 환자들 가운데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한 사례가 많다”며 “정부는 성분에 별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약 30%의 환자가 증상 악화와 임상적 부작용을 경험했고, 7%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같은 성분이라도 약의 이름, 외형, 복용감, 효과가 달라지면 손 떨림, 인지 저하, 우울·불안 증상을 동반하는 파킨슨병 환자에게는 극심한 혼란을 유발한다”며 “이는 복약 순응도와 치료 신뢰도를 떨어뜨린다”고 비판했다.
성분명 처방 확대가 환자 선택권을 넓힌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도 나왔다. 한 이사는 “환자가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구조는, 선택권이 아니라 책임 전가”라며 성분명 처방 의무화 재검토를 요구했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는 국민 건강과 직결된 중대한 사안으로,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에 맞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최근 성분명 처방 확대가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이미 대체조제 제도가 운영 중인 만큼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황 회장은 “의약품 정책을 재정 절감 논리로만 접근하는 것은 국민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며 “정부는 비용보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