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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필수의료 지원 대책, 누구를 위한 것인가?

말로만 필수인 심혈관 응급의료체계의 민낯

지난해 7월 서울 대형병원 간호사의 뇌출혈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필수의료 지원대책’이 베일을 벗었다. 

12월 8일 보건복지부에서 개최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안 공청회’에 따르면, 중증·응급, 분만, 소아 환자가 거주지 인근에서 골든타임 내, 24시간·365일 상시 필수의료를 제공받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이를 위해 ①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체계’ 구축, ② 적정 보상 지급 (공공정책수가), ③ 충분한 의료인력 확보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큰 골자다.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체계’ 구축의 일환에는 전국 14개 권역심뇌혈관센터 수술, 시술 등 최종 치료 역량을 갖추도록 ‘중증응급의료센터’로 전면 개편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동안 응급의학과만이 응급의료 전달체계를 갖춘 배후진료과로 인정받던 현실에서 심혈관 중재시술을 ‘응급’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는 했으나, 현실적으로 한정된 자원으로는 동일한 응급의료 시스템을 갖추기 어렵다는 한계에 부딪히자, ‘응급전원협진망’이라는 대안을 내놓았다.

‘응급전원협진망’은 전체 응급환자의 5% 미만에 불과한 심뇌혈관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응급대응체제를 운영할 수 없으니 지역 전문의들간에 사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발적으로 ‘응급전원협진망’을 구성하라는 의미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상황을 의료진의 자발적인 네트워크에 맡긴다니, 뭔가 중요한 범죄 수사를 사설 탐정에게 맡기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의료인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환자를 살려내야 한다는 주문은 의사의 직업적 사명이다. 문제는 ‘의사 한 개인의 사명에 기대어 국민의 생명을 얼마나 오랫동안 붙잡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의 의지를 견고히 할 대책이 정부의 계획에 들어있는가’일 것이다.

정부는 지역 전문의로 구성된 네트워크 팀 단위의 보상을 위한 시범사업으로서 위의 자발적 협력체계를 구축하면, 성과에 따른 사후 보상을 정책수가로 보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권역심뇌혈관센터는 전체 응급 심뇌혈관질환자의 20% 정도를 담당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심혈관 중재시술 의사들은 응급 대기를 하면서도 수당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일할수록 보상이 적어지는 지금의 현실에서 시스템 운영방안, 병원 간 집행부나 연관 진료과, 소방 등 관련 기관의 조율도 다 알아서 해야 하며, 협진에 따른 책임소재까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이번 대책이 의료인의 직업적 사명 외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인 수가 보전과 응급 대기 보상이 없는 의료 현장에서 성과에 따른 사후 보상을 필두로 하는 정책수가는 그 대안이 될 수 없다.

그 외에도 정부는 전문의 순환교대 당직을 제안하고 있다. 전문의 순환교대 당직은 대부분의 심혈관중재의들이 찬성하는 제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현행 행위별 수가제도 하에서 순환교대 당직이라는 제도하에 환자를 강제 배정하는 것은 의료기관의 수익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환자에게는 역시 자기가 치료받을 병원과 의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의사에게는 주치의로서 의학적 소견을 환자에게 설명할 권리가 있다. 이처럼 여러 권리들 사이에서 환자 배정과 관련한 문제를 ‘응급전원협진망’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다소 순진한 견해이다.

이런 제도 변화와 관련된 법적 책임 문제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 국민을 설득하고, 정부 부처간의 행정 절차를 조율하고 제도적 지원책 (비용, 이송체제, 법규 등)을 정비해 뒷받침해줘야 한다. 

만일 순환교대 당직을 실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비현실적인 대안을 제안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응급대기를 하면서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는 모든 심혈관 중재의에 대해서 응급대기 수당을 포함한 현실적인 지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현재 정부에서 야간 응급 수술 보상 강화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뇌동맥류·중증외상 등 응급 수술‧시술 가산 확대 계획 역시 권역응급의료센터 40개소, 상급종합병원에 우선 적용 후 점차 확대하는 수순이 아니라, 응급시술을 하고 있는 모든 지역의 심혈관 중재의들에게 우선 적용될 수 있도록 보편화 방안이 함께 고려돼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응급 심혈관 중재팀 구성 및 운영에 대한 지원은 관련 수가의 인상 및 가산율 상향과 별도로 보장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원 및 보상의 대상이 직접 진료과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소아청소년과의 진료 붕괴의 현장은 비단 소아청소년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22년 순환기내과 전임의 수는 전국 49명으로 갈수록 그 인력이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심혈관중재시술을 전공하고자 하는 전임의 수는 절반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현재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 정도 수준의 심각한 인력 감소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이대로 가면 곧 10년 이내에 절대적인 의료 인력 공급부족으로 모든 역량을 인력 확보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과감한 정책 변화나 투자없이, 현재 기준의 비용·효과성에만 중심을 둔 정책으로는 필수의료인력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부디 정부와 우리 의료계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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