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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는 1분 1초가 중요…여성 건강권 위한 '미프진' 도입 시급

"낙태는 안전하게만 진행되면 그 어떤 수술보다도 안전"

최근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낙태를 포함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의 의료관계행정처분 규칙 개정과 관련하여,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위시한 낙태죄 폐지와 미프진 합법화 논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 가운데 약물적 중절 방법이 여성 건강을 좀 더 지켜줄 수 있는 방법으로 권고되고 있다. 전문가는 낙태를 여성의 자기선택권과 태아의 생명권 구도 프레임보다는 여성 건강권 측면으로 접근하여 타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약물적 방법을 도입해 여성에게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일 오후 1시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열린 '제1회 대한의과대학 · 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의료 인권 세미나'에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윤정원 여성위원장(녹색병원 산부인과)이 '국내 인공임신중절권 현황과 제도개선 방향' 주제로 발제했다.



윤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형법에 낙태죄가 규정돼 있기 때문에 인공 임신 중절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 자료가 없다. 결핵이나 에이즈 환자의 경우 매년 몇 명 발생하는지 국가 통계가 존재하지만, 낙태는 없다. 단지 표본조사연구를 통한 추정치만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2005년 · 2010년 진행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기준 연간 낙태 추정치는 34만 건으로, 당시 출생아 수가 4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010년에는 16만 8천 건으로, 2005년과 비교해 절반 이상이 감소했다. 가임기 여성 1천 명당 29.8명을 기록하던 인공임신중절률의 경우 15.8명까지 급감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윤 위원장은 "산부인과 의사들의 체감 수치는 이보다 훨씬 더 높다. 2010년 당시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 시술한 의사를 고발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금년에 조사한 인공임신중절 현황에서는 △낙태경험자는 21.0% △임신경험자 중 낙태경험자는 41.9%로 조사됐다. 임신경험자 10명 중 4명이 낙태를 경험한 것이다. 

형법 제269조에서는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백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며, 조력자도 동일 형에 처한다고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다.

윤 위원장은 "해방 후 1953년 제정된 형법에서 낙태죄가 처음 성문화됐다. 그런데 1960년 경제성장을 위해 국가가 인구 증가 억제 정책을 진행하면서 임신 중절을 허용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 모자보건법이다."라고 설명했다.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에서는 △본인 · 배우자가 우생학적 · 유전학적인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 ·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 준강간에 의해 임신한 경우 △근친상간인 경우 △임신이 모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윤 위원장은 "우생학이라는 단어가 남아 있는 법은 모자보건법이 유일하다. 태아가 기형일 경우 낙태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태아 사유는 이 법에 들어있지 않다."면서, "동 법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제한적 낙태법을 가진 나라에 속한다."라고 지적했다.

2011년 복지부의 낙태 사유 조사에 따르면 △원치 않는 임신이 35.0% △경제 상태상 양육이 어려운 경우가 16.4% △태아 건강 문제가 15.9% △미혼 15.3% △가족계획 11.8% △신체적 질병 2.4% △사회 활동 지장 2.1% △10대 임신 1.1%로 나타났는데, 사회 · 경제적 사유가 무려 81.7%의 비중을 차지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올해 실시한 조사에서도 모자보건법상 합법 사유는 2.9%에 불과했으며, 2005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단 4.36%만이 합법 인공임신중절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 위원장은 "대부분의 낙태가 모자보건법의 허용 한계를 넘어서는 사회 · 경제적 사유로 행해지는데, 이러한 결정이 여성이 처한 사회 · 경제적 요인을 감안하여 여러 고민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공감할 필요가 있다."면서, "사회 · 경제적 사유를 모자보건법에 추가하자는 접근이 있었으나 사회 · 경제적 사유를 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형법에 명문화된 낙태죄 폐지를 얘기할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강간을 당한 여성은 모자보건법에 의해 인공임신중절이 허용되지만, 실제는 일선 병원에서 거부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병원이 낙태 시술을 거부하기도 하고, 강간 피해를 입증할 법원 판결을 요구하기도 한다. 성폭력 전담의료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도 있다. 

윤 위원장은 "낙태는 1분 1초가 중요한 시술인데, 재판 판결은 일반적으로 반년 내지 1년이 소요된다. 이를 가져오라고 하는 게 말이 안 된다. 사회 · 경제적 사유 추가도 비슷하게 생각해야 한다. 소득상태증명서 발급, 사회복지사 면담 등 낙태 사유 증명을 위해 요구되는 단계가 얼만큼의 장벽으로 작용할지를 생각했을 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폴란드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엄격한 낙태법이 존재하는 나라로 △강간 · 근친상간 △산모 생명 · 건강이 위독한 경우 등에만 낙태를 허용한다. 그런데 우파 정당이 2015년 집권하면서 이러한 사유조차 불법으로 규정하려는 낙태 전면 금지 법안이 상정됐다. 이에 폴란드 여성 인구의 4분의 1이 검은 옷을 입고 '검은시위'를 진행해 결국 해당 법안을 철회시켰다.

동 시위를 모티브로 우리나라에서도 검은시위가 2016년에 시작됐다. 당시 다나의원 C형 집단 간염, 수면 내시경 환자 성추행 의사 사건 등이 발생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자 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에 낙태를 더해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하는 의료법 개정 시도를 했다. 이에 여성 · 의료계가 크게 반발해 시위를 진행했고, 결국 2016년 11월 복지부는 낙태 처벌 강화 계획을 철회하면서 현행 규정대로 1개월 면허 정지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은 사익이고 태아의 생명권은 공익이기 때문에 사익이 공익에 우선할 수 없다는 취지로 낙태죄 합헌을 선고한 바 있다. 현재 낙태수술의 위헌 여부를 두고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지난 8월 17일 복지부는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의사 면허 자격정지 1개월 처분 내용을 담은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을 공포 · 시행했다. 

낙태죄 폐지에 대한 여론을 살펴보면 ▲2010년 산부인과의사회 회원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97.9%가 모자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90.6%가 낙태에 사회 · 경제적 사유가 포함돼야 한다고 답했다. ▲2017년 국민청원에서는 23만 명이 찬성했고 ▲리얼미터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51%가 찬성했다. ▲금년 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77.3%가 찬성했다.

윤 위원장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 태아 생명권 프레임으로 다룰 수 없는 게 여성 건강권이다. 낙태죄가 규정되면 낙태시술 거부로 여성이 실제 피해를 당하게 된다. 이를 건강권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2005년부터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 · 미소프리스톨(misoprostol)을 필수의약품으로 등재해 관리하며, 미국, 프랑스, 중국 등 61개국에서 승인돼 판매 중이다. 유엔경제사회이사회는 2016년 성적 · 생식 보건 권리에 관한 논평에서 "임신중지에 사용되는 약물을 포함해 필수의약품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모든 국가는 모성 건강 관리, 피임 정보 · 서비스, 안전한 임신중지 관리를 포함해 양질의 성 및 재생산 보건 관리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천명했다. 

윤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동 논평에 비준돼 있음에도 안 하고 있어서 왜 안 지키냐고 계속 지적받고 있다."면서, "안전한 낙태가 불가능하면 사회경제적 부담, 불건강 · 부정의가 가중된다. 2010년 불법 낙태 시술 단속으로 중국 · 일본으로 낙태 원정 간 사례도 있었고, 낙태 시술 거부 병원이 증가하면서 임신 중절 비용이 수십 배 증가했다. 낙태 시술을 알선하면서 성폭행한 사례도 있었다. 2011년에는 임신한 고3 수험생이 수능을 치른 후 낙태 수술을 하다가 사망하기도 했다."라고 언급했다.

임신 중절 수술은 '이른 시기'에 시행된다면, 편도선 수술이나 임플란트보다도 더 안전하다고 했다.

윤 위원장은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사회적 낙인으로 여성 건강에 위해를 미친다는 식의 프레임이 씌워져 있는데, 약물이든 흡입 시술이든 안전하게만 진행된다면 그 어떤 수술보다도 안전한 시술이다. 그런데 중절 자금을 모으기 위해 시간이 지체되고, 병원의 시술 거부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보니 시간이 지체돼 위험성이 늘어난다."라면서, "돈이 있는 사람은 해외에서 하면 된다. 결국 청소년이나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일수록 더 위험한 선택을 하거나 원하지 않은 출산을 하게 되고, 이는 다시 사회 · 경제적 지위를 악화시킨다."라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가 마련한 안전한 인공임신중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에서는 안전한 임신중절방법으로 흡입술과 약물적 방법을 권고하고 있다. 본 가이드라인에서는 미페프리스톤 · 미소프로스톨을 같이 복용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미페프리스톤을 구할 수 없는 경우까지도 언급하고 있다. 

미페프리스톤 1알(200mg)을 복용 후 24시간 후 미소프로스톨(프로스타글라딘)을 설하로 4알 복용할 경우 유산 성공률은 99%이며, 미소프로스톨을 단독으로 사용 시 4알(200mcg)을 설하로 복용 후 4시간 간격으로 2번 더 복용해 총 12알을 복용하면 94%의 확률로 유산에 성공한다. 우리나라는 미페프리스톤을 불법 약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미소프로스톨만이 존재한다.

스웨덴 · 핀란드에서는 90%를 상회하는 인구가 약물적 방법을 사용해 유산하고 있다. 윤 위원장은 "약물적 방법은 의료인 입장에서도 필요하다. 임신 주수가 낮더라도 수술 자체가 의료인에게 부담되는 방법이다. 약물적 방법은 이러한 부담을 피할 수 있고, 여성 건강을 좀 더 지켜줄 수 있다. 여성이 약을 먹으면 의사는 복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합병증 · 부작용을 안내해주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약물적 방법이 한번 도입되면 그 비중은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라고 말했다.

수련기관인 대학병원에서 인공임신중절을 많이 접할 수 없고, 전공의 수련과정 · 전문의 연수과정에 인공임신중절 시술 · 약물 매뉴얼 및 훈련 지침이 없다고 지적했다.

윤 위원장은 "이러한 상태에서 필드에 나갔을 때 의료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다."면서, "인공임신중절 후 상담 · 케어, 피임교육 등 제도적 장치도 없다. 합병증이나 부작용 보고도 할 수 없어 여성 건강 위험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다. 인공임신중절 관련 조사, 질 · 위생 평가, 이송체계, 관리 · 감독체계가 부재해 정부의 관리 · 감독과 의료인의 자정이 없는 의료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라고 지적했다.

각서를 받고 현금을 받는 식의 낙태 시술 과정이 환자 · 의사 관계를 왜곡하며, 환자 권리를 침해한다고 했다. 환자권리장전에는 △비밀보장을 받을 권리 △선택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듣고 자발적으로 동의할 권리가 들어있지만, 인공임신중절에서는 보장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낙태에 대한 사회 · 문화적 낙인도 심각하다. 윤 위원장은 "우리는 낙태가 불법화돼 있고 낙인이 찍힌 세상에서만 살아왔는데, 합법화된 외국에서는 공공의료시스템 내에서 임신중절을 무상 제공하고 있으며, 사립 의료기관은 일정 조건 하에 보조하기도 한다. 또, 합법화된 나라 대부분은 12주 내지 14주는 임부 요청으로 가능하게 해주며, 사회 · 경제적 사유를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유산유도약 도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중절 수술을 받는 여성은 5% 수준이지만, 이들조차도 약물적 방법이라는 선택지를 제공받지 못한다. 

윤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유산유도약은 들여올 수 있다. 모자보건법에 수술이라고만 적혀 있기 때문에 들여오지 못한다면 법을 개정하면 된다. 합법화와 별개로 이건 가능한 부분이다."라고 했다.

이어 윤 위원장은 "낙태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원치 않은 임신이 줄어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피임 교육이 잘 돼야 하고, 원치 않은 성관계 · 성폭력이 감소해야 한다."면서, "마지막 비상구를 열어놔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임신인공중절이 마지막 선택지일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을 위해 마지막 선택지인 비상구를 열어놔야 하며, 비상구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정부 · 의료인이 해야 할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낙태가 여성에게 폭력이 아니라 안전하지 못한 낙태가 여성을 죽인다고 했다. 윤 위원장은 통념 · 편견이 여성을 아프게 하고 트라우마를 준다면서, 인공 유산이 의료서비스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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